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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isa Jun 09. 2024

빨간 매니큐어를 바르기로 했다

축! 브런치 작가


[브런치 스토리]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키보드 위의 손을 보고 있었다.

탄력이 없이 얇아진 피부에 튀어나온 핏줄의 선은 너무 선명하다.

굵어진 마디 따라 휘어진 방향으로 쑥쑥 거리며 통증이 느껴지던 게 벌써 몇 년 전인 듯한데 

한 번도 약을 바르거나 치료를 해주지 않았던 서러운 손이다.

흔하디 흔한 핸드크림조차도 제대로 발라줘 본 적 없던 손이다.

얼굴엔 단장을 하며 이것저것 차례대로 좋은 걸 다 발라 주고 나서도, 

손에는 뭘 그다지 정성을 들이지 않아 사철, 평생, 고무장갑을 껴고 일해 본 적이 없는 늘 맨손이다.


졸면서 공부하며 책에 줄을 치던 손, 청춘의 창공에 뭉게구름 그림을 그리던 손, 결혼반지를 낀 손, 삼시 세끼 식사를 준비하던 손, 자식을 낳고 길러 낸 손, 매일 청소를 하고 걸레를 빠는 손, 망치와 공구를 사용할 줄 아는 손, 컴퓨터와 서류와 커피잔을 들고 나른 손, 떼 묻은 지폐를 벌어들인 손, 세상과 수없이 악수를 하던 손, 높은 계단 안전대를 잡고 오르내리던 손, 주고받고 먹고 마시고 만들고 부수고 잡고 버리고 놓친 손, 두 손 모아 기도하던 손, 눈물을 훔치고, 화장을 하고, 바닥을 짚고 일어서던 손.


내 몸 가장 가까이에서부터 가장 멀리까지 내가 원하는 것들을 다 이루어 주었다.

나의 생각을 단 한 번도 거절 없이 실행한 완벽한 바보, 충직한 머슴이다.

언제 어디서나 가장 먼저 사용한 억측스런 연장이다.

깨어 있는 한시도 쉬어 본 적이 없다.

울퉁불퉁 마디가 휘어진 비뚤이다.

흉터와 뒤틀림 짝짝이 못난이, 나로부터 도저히 도망갈 수 없는 무수리다.


그 손을 보면 눈물이 난다. 

나는 그 손으로 이력서를 쓰고 편지를 쓰고 일기를 쓰고 시를 썼다.

또! 그 손으로 브런치에!  너무 늦은 글을 쓴다.



“ 세상아 ~~~~~!!!

  나~~!!!   

  브런치 작가 되었어!!!  “


그 손으로 가족에게 전화를 하고, 친구에게 카톡을 하고, 어딘가 알리고, 축하를 받고,… 아니!

혼자라도 소리를 지르며 기쁨에 방방 뛰고도 싶은데! 

마음속엔 어떤 탄성이 소리치고 있는데!

꿀 먹은 벙어리 마냥 

하염없이 손을 보며 멍 때리고 있는 이 엉뚱한 적막감.


ESTJ 자부심이 일취월장하던 30년의 시간이 훌쩍 지난 지금 나는, 또 다른 나 INFJ가 되었다. 

그렇게 확고했던 나라고 생각했던 내가, 내가 아닌 정반대의 나와 대적하며 매일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 INFJ/ ESTJ]의 관계는 지옥과 같은 갈등 관계이다. 갈등이 매우 자주 일어나며 서로 노력을 하더라도 그 노력이 오히려 지속적인 갈등을 초래한다. 몇 번의 무의미한 시도 후, 극단적인 경우 서로의 관계를 포기하고 관계를 깨트리고는 드디어 해방되었다고 느끼기도 한다.’


'[INFJ특징] 양면이 끊임없이 갈등한다.

한쪽은 고독과 고요한 평화를 갈망하는 반면, 다른 쪽은 사회적 연결의 따뜻함과 친밀함을 갈망한다.'


사람의 근본이야 바뀌지 않는다지만 MBTI의 성향 테스트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살아온 방식에 따라 또는 자신이 지향하는 세계의 염원에 따라 두드러지는 성향은 바뀔 수 있다는 연구자들의  객관적 충고를,… 

믿어지지 않는 나를!,... 몇 번이나 재 테스트를 해 본 시간이 많이 흐른 후, 또 다른 내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설마 나에게까지 오는 행운이 있을라고?  세상엔 뛰고 나는 글 쓰는 재주꾼들 천지인데,..!


‘ 기대를 접어 둔다. 설렘도 접어 둔다. 실망하지 않는 가장 유일한 방법임을 나의 방식대로 깨달아 오며 산 덕분이다. 휘둘리지 않으려 마음을 잡아두는 연습을 한 탓이다.’


무심한 척! 담담히! 느긋하게! 열어본 일주일 후의 이메일!   

연락을 받은 지 2주가 지난 오늘에 사 브런치에 첫 새로운 공개 글을 쓴다.

연극이 끝난 뒤의 여운처럼, 내게도 적막한 감동이 나를 위로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브런치가 내게 부여해준 기대와 상상에 한없이 감사하며 용기를 가진다.

그토록 갈망하던 따뜻한 연필을 잡는 손이 되고 싶었던 꿈!

내손에 묻혀 있는 사명을 찾기 위한 여정을 이제 시작한다. 


단정하게 연필을 깎는다. 

더 단정하게 손톱을 깎는다.

거칠고 볼품없는 양손을 오래오래 비누로 닦는다.

부드러운 크림으로 어루만진다.

구부러진 손가락을 가지런히 펼쳐놓는다

매니큐어를 바른다 

내가 결혼했을 때,

딸이 결혼했을 때, 

그리고 오늘,

세 번째 바르는 매니큐어다.


이제부터 함부로 손을 쓰지 않아야지.

고운 손으로 글을 써야지.

따뜻한 나무 연필을 쥐어야지. 

손에 온기를 잃지 말아야지!

빨강 노랑 파랑 생각의 교차로에 늘 흐르는 손을 두어야지.


" by 엘리사    

 나는 오늘부터! 

 빨간 매니큐어를 네 손톱에 바르기로 했어! "




                                                   - 빨간 매니큐어를 바르기로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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