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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느 날 갑자기 Feb 08. 2018

남의집 재즈오빠 1

재즈가 흐르는 밤...  전야제 즈음

'재즈'를 듣게 된 건 스무 살 무렵이었다. 말 잘 듣는 애들보단 적어도 음약 취향이 분명하거나, 대화 이후 소설 한 권 읽은 듯한 여운이 남는 사람들을 좋아하던 시절이었다. 


힙합, 펑크, 레게 등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 친구들이 주변에 꽤 있었는데, 재즈는 곧잘 어른 흉내를 내는 친구 소개로 알게 된 후 자주 듣게 되었다. 평론가, 악기 수집가, 앨범 가게 사장 등 직업은 다르지만 취미로 재즈를 연주하는 분들을 소개받았고, 합주실에 모여 재즈를 들으며 긴 수다를 떠는 시간이 많았다. 


신현필 호스트의 거실 한 켠, 피아노 위 풍경


재즈의 불규칙한 리듬, 즉흥연주만큼의 자유분방한 사람들과의 대화란 그것이 문학이든 정치든 경제든 짝사랑에 관련한 갈증이든, 깊이는 있지만 삿대질은 없는 특유의 유연한 공기가 주변에 깔리는 것이 좋았다. 나이나 성별이 뭐가 중요하냐며 이야기에나 집중하라는 그들의 태도. 스무 살 무렵, 재즈에 대한 첫인상은 그랬다.   


색소포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신현필 호스트와의 인연도 마찬가지. 아는 지인이 기획한 음악 레지던스 프로그램인 '화엄음악제'에서 만나 자연스럽게 '남의집 프로젝트' 호스트까지 하게 된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기 때문. 드라마틱한 에피소드 하나 없이 그냥 친해졌다.



집 사진 좀 보내줘요



 신현필 호스트의 거실 한 켠(최근에 산 LP라며 들려주었음)



남의집 섭외 단계에선 집 사진을 주고받는다. 사진을 보며 풀어나갈 이야기의 감을 잡기도 하고, 대략 인원이나 어떤 주제가 좋을지 슥슥 기획의 스케치를 그려 나간다. 거실 한가운데 놓여있는 그랜드 피아노.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재즈. 집주인이 여행을 떠나면 홀로 남겨지는 거실. 자주 떠나게 되는 여행. 노곤한 피로와 쓸쓸한 연애 이야기. 아... 고독한 색소포니스트. 그렇게 콘셉트가 정해졌다. 


남의집 재즈오빠, 어때요?



결국 공간은 집주인을 닮기 마련이고, 말 그대로 동네에 이런 오빠 한 명쯤 있을 것 같은 '남의집 재즈오빠' 콘셉트가 결정되었다. 시간이 쌓이듯 자연스럽게. 쉽지만 가볍지 않게. 때로는 예상할 수 없게. 있는 그대로. 


그래. 신현필 호스트의 성격답게-



신현필 호스트는 업계에선 꽤 알려진 뮤지션이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크고 작은 무대에 서는 사람. 다큐나 라디오에 종종 나오는 사람. 산과 여행을 좋아해서 동네에선 그냥 산악인으로 알려진 사람. 필카 사진을 많이 찍는 사람. 솔직한 돌직구를 잘 날리는 사람. 대화가 편안한 사람. 그리고 넓은 인간관계보다 아는 사람에게 잘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 밖에 뭔가 더 있겠지만... 


바쁜 일정임에도 불구하고 영상 편지를 부탁했는데, 이렇게 직접 찍어 보내주었다. 아마 남의집을 위한 최초의 영상편지이지 않을까 싶은데, 오히려 계속 신경 써줘서 고맙다는 말을 할 정도였으니,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을 할 수밖에....

원래 이렇게 영상편지를 남기는 걸로 알고 계셨던 듯(사실 처음이에요)


남의집을 함께 준비하다 보면 호스트 성격이 나오기 마련. 신현필 호스트가 낯선 이를 대하는 마음을 알 수 있었달까. 가령 무심한 듯해도, 그 어떤 부탁도 다 들어주고야 마는 그런 호스트. 


일본 공연 일정에도 재즈 관련 LP를 스무 장 정도 사두었다는 이야기와, 벽에 걸 그림을 샀다는 소식을 전해주기도 했고, 바닥에 앉다 보면 불편할 테니 방석을 얼마나 주문해야 할지라던가, 술은 어떤 종류가 편할지, 어떤 메뉴가 좋을지 계속 고민하며 준비하고 있었다. 이건 크고 작은 무대를 많이 준비해봤던 베테랑이라기보다, 본디 사람을 살갑게 챙기는 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주인이 자주 자리를 비워 
홀로 남겨진 뮤지션의 집 풍경이란 이렇다



거실에 놓여있는 그랜드 피아노. 청소 했음.
TV 대신 모니터가 놓여진 주방. 다 치워놓았음.
방음시설이 된 작업실. 평소와 비슷할 거 같음.


비록 청소를 매우 깨끗이 한 걸로 예상하지만, 그렇다고 평소에 크게 어질러 놓는 성격은 아닌 듯했다. 가구가 많기보다 적당히 필요한 가구만 놓아두는 걸 좋아한다는 이야기도 했으니까.  


단지 '남의집 재즈오빠'라는 타이틀로 낯선 타인을 뮤지션의 사적인 공간에 초대한다는 건 용기가 필요했을거다. 정도의 차이겠지만 적어도 뮤지션에겐 더 어려운 일이라는 것 쯤은 알 테니까. 무대가 아닌 자신의 집에서 연주를 한다는 것. 익숙한 관객이 아니라 낯선 타인이 등장한다는 것. 무대 조명이 아닌 스탠드 조명 아래서 낯선 얼굴을 마주봐야 하는 것. 그 수많은 상상들.   


솔직한 심정으로 고백하면 '남의집 프로젝트'가 은근 두렵고 설렌다고 이야기했었다. 그리고 얼마나 용기를 내고 성실하게 준비를 해 주었다는 것도. 그리하여 브런치를 통해 '남의집 재즈오빠'의 전야제 같은 시간을 글로 남겨놓아야 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찾아가는 게스트와 준비하는 호스트의 모습을 지켜본다는 것. 그것은 남의집 크루만이 경험하는 일종의 추억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미묘한 추억이 '남의집 프로젝트'를 둘러싼 안개같은 비하인드가 될 듯 하다.


다음 편은 본격적인 위례 신도시에서 펼쳐진 '남의집 재즈오빠' 바로 그 날에 관한 이야기다. 여기서 반전은, 분명 두렵지만 설렌다는 신현필 호스트의 집에 대부분의 게스트 분들이 새벽이 되어서야 돌아갈 만큼. 뜨겁고 깊은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다. 


아.. 과연 어찌 된 일인가. 


남의집 재즈오빠 2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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