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에 살던 엘리제는 우연히 남의집 일기를 쓰게 되는데...
Episode 2
가자!
남의집으로
'슬프고 실용적인 전쟁'
전쟁 같은 나날이었다. 매일 반복되는 야근과 경쟁, 힘들 때면 서랍 속 영양제 입에 털어 넣고. 다시 전쟁을 준비해야만 하는 뭔가 비극적이지만 실용적인 전쟁! 그렇다. 이 슬픈 시트콤의 주인공은 대한민국의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엘리제의 이야기다.
물론 스펙터클 시트콤 장르처럼 즐거웠던 순간들도 많았다. 뭐 직장이란 나름의 깨알 재미도 있고, 운이 좋을 경우 유쾌하고 진취적인 사람들과 더 넓은 세상을 즐길 수도 있다. 욕심을 부린 만큼 능력을 인정받고, 일 자체의 재미도 있고. 가령 일에 지쳐 무기력해 질 땐, 야근 중에 노래방에 간다던가. 힘이 빠질 땐 팀원들이 단체 마사지샵에 간다던가. 다 같이 흐르는 계곡 물에 발을 담그고 닭백숙을 먹는다던가 하는. 인생의 스펙트럼을 요리조리 넓히는 재미도 분명 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엘리제는 무심히 직장을 그만두었고, 퇴직금으로 마당 딸린 집을 구한 다음. 집순이의 길을 걷게 된다. 평일 오후 3시. 커피를 느긋하게 내려마시며 다음 달 각종 세금을 걱정하는 일상을 누리게 된 것.
대체 왜. 엘리제는 꽤나 즐겁고. 심지어 힘든 경쟁을 즐기는 성격을 가졌음에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것일까. 이유는 아래와 같다.
옛 동료의 데스크 자리에 붙어 있던 글귀가 생각났다. 사람이 머무는 자리엔 차마 말하지 못한 에고Ego들이 붙어있기 마련.
항구에 묶여있는 배는 안전하지만
그것이 배의 운명은 아니다
늘 그렇듯, 익숙함은 의심하지 않는다. 모든 질문은 의심에서 출발한다. 이 와중에 자유경제 시점에서 보면 업의 형태는 뉴미디어를 타고 예상할 수 없는 변동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당신은 누구일지도 모른다'라는 강연이 늘어났으며, 서점에선 '우리는 대체 왜 이러는가'를 말하는 심리학 관련 서적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불안의 시대를 살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사람들은 스스로 성장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아 그래. 한 번쯤은 인생에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으로 살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지. 그럴싸하지만 사실 어느 정도 일을 하면, 자아실현 욕구의 단계가 스멀스멀 찾아오긴 하는 거 같긴 하다.
그래. 난 복순이니까
밥은 굶지 않고 살겠지..!
함민복 시인의 '긍정적인 밥'을 자주 읽던 무렵이었다. 퇴사를 하자마자 운 좋게도 전략 컨설팅 의뢰가 들어왔고, 이후에도 브랜드 전략, 기획, 콘셉트 등에 관한 일이나 신규 비즈니스 모델을 의뢰하는 일도 간간히 들어왔다. 규모감이 워낙 달라서 시행착오도 겪긴 하지만 카피라이팅 건이나 네이밍에 관한 일들도 가끔 와서 세금은 아직까지 밀리지 않고 있다. 직장에 다닐 동안, 공부해온 심리학과 뇌과학을 점목한 커뮤니케이션 툴과 사업 아이디어 스케치도 그려나갔다. 긴 호흡으로 할 예정이라 서두를 필요도 없기에 조금은 느긋한 시간들을 보냈다. 그런데 말이지. 다 좋은데 어디선가 느껴지는 고독. 무리생활의 시너지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고독과의 싸움이 가장 컸다. 그럴 때면 마당을 쓸고 또 쓸고. 하염없이 쓸다 보니 주변에서 친구들이 놀러 오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응 그래... 마당으로 갈게'
예상했던 결과는 아니었다. 마당에서 마땅히 할 일이 없다 보니 '마당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하나에 며칠을 쏟아 붙기도 하고, 인공지능과 시냅스 그리고 음성인식에 관한 호기심부터 전반적인 뇌과학 그리고 앞집 할머니의 손주가 얼마나 찾아오는지. 이 동네 상권은 어떤 카테고리가 생겨나고. 축소와 확장의 포인트는 무엇인지. 줄 서는 카페엔 어떤 특징이 있고. 왜 옷의 통은 거치고 브랜드 로고도 덩달아 커지는지. 왜 TV 대신 모바일 속에서 더 짧아진 동영상을 보는지. 이런 패턴들을 보는데 대다수의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틈만 나면 새로운 전략 툴도 만들고 몇몇 클라이언트의 프로젝트에 실험도 해보며 수정을 거듭했다. (물론 지금도) 이와 상관없이 새로운 이웃이 된 앞집 할머니들은 대추나무 열매를 쉽게 따는 법과 겨드랑이에 빗자루를 끼고 빠르게 마당을 쓰는 법을 알려주셨다.
어찌 되었든 집순이가 아닌 남의집순이로 살라는 운명의 수레바퀴는 움직이기 시작했고, 남의집 프로젝트는 또 하나의 생활 패턴이 될 것이다. 사실 좋은 건 팀원 즉, '남의집 크루'가 생겼다는 것이다.
요즘 문지기를 지켜보며 드는 생각. '음... 과외선생을 해도 참 잘했을 거 같군' 이라는 생각이 들만큼 그간의 노하우를 잘 알려주고 있다. [남의집 관찰일기 1부]에서도 말했듯, 가내수공업 단계들을 전수받고 있는 셈. 그리하야 당분간 가내수공업의 '있는 그대로를 경험'할 예정이다. 왜냐. 핵심은 가내수공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의집 프로젝트의 핵심은 '집'이다. 의도한 공간 또는 상업적인 공간이 아니라 그 사람을 닮은 집.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에서 나누는 이야기들.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연대감. '이건 겪어봐야 안다'가 정확한 가치에 걸맞은 프로젝트다. 포인트도 물론 거기에 있다. 한 번 와 본 사람은 너무 좋아서 다시 찾에 되는 '남의집 프로젝트'
누군가에겐 익숙한 공간, 누군가에겐 낯선 공간의 미묘한 결합이 어떤 에피소드를 만들어낼지. 내 공간에 낯선 사람들이 수줍게 인사할 때의 표정이라던가. 낯선 집에 방문할 때의 초인종이 얼마나 설레게 할지. 사람들이 만나 끊임없이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낼지. 예상할 수 없는 흥미로운 플랫폼. 그 플랫폼의 새로운 페이지를 만들게 된 것.
함께할 '남의집 크루'는 아직 서로를 알아가는 단계이고, 노력 중이다. 해야할 일도 많고. 가야 할 길도 멀겠지만. 아마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관점이 피어나기 시작하는 '남의집 프로젝트'의 확장판. 일단 이러한 만남도 이유가 있을 듯 하여... 그냥 믿기로 했다. '따로 또 같이' 말이다.
**참고사항
여기서 표현하고자 하는 '사랑'은 메타포Metaphor로서의 사랑을 의미하며, 신뢰와 지지를 기반으로 한, '사랑의 팀워크'를 이제 [남의집 프로젝트]에서 경험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간단한 소개를 끝낼까 한다.
모두 은근히 건강하고. 미묘하게 행복하시길.
-남의집 엘리제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