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 나가서 활동하기도 힘들지만 이 더위에 하루 세끼 밥을 해 먹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니다.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 가스 불을 사용하다 보면 에어컨도 맥을 못 춘다. 차라리 나가서 시원한 냉면이라도 사 먹고 싶지만 꺾일 줄 모르고 있는 코로나 확산세를 보며 불안해서 어떻게든 집밥으로 밀고 나가고 있다.
거기다 아들이 직장에서 휴가를 받아 집에 왔다.
직장 근처에서 혼자 생활하다 어쩌다 집에 오면 아들은 손님이다. 직장생활에 고생도 했을 것이고 아무래도 외식을 주로 했기에 집에 왔을 때라도 집밥을 먹이고 싶은 것이 엄마 마음이다. 그렇다고 끼니마다 별식을 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된장국 하나라도 한 끼 한 끼 밥을 신경 쓰게 된다. 솔직히 늘 함께 있는 남편보다 더 신경이 쓰인다.
아들은 이런 내가 또 신경이 쓰였나 보다.
한 끼라도 밥을 챙기는 일로부터 나를 쉬게 해주고 싶어 했다. 코로나만 아니면 외식을 하면 되는데 거리두기가 강화되고 있는 지금 외식은 불안했다. 있는 대로 그냥 집에서 먹자고 해도 아들은 외식을 불안해하는 나를 생각해서 기어이 한 끼라도 쉬라고 포장 배달을 시켰다.
아들은 우리가 자주 먹어보지 않던 별미를 시킨다고 보쌈 족발 세트를 시켰다. 아들이 주문하는 통화를 옆에서 들으며 나는 다시 한번 아파트 이름을 강조시켰다. 동네는 다른데 비슷한 이름의 아파트가 있어서 가끔 택배사고가 있기 때문이었다.
배달을 기다리며 나는 억지로라도 아들 덕에 식사 준비에서 해방된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최근 브런치 작가가 출간한 책을 보며 간간이 식구들이 나누는 대화를 거들기도 하며 배달을 기다리고 있었다. 음식이 도착할 시간이 되어서 아들은 결재할 카드를 미리 준비하고 식구들은 모두 빈 식탁에 앉았다. 분명 도착할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무 기별이 없다.
남편이 확인 전화를 하려고 해도 나는 말렸다. 주말 저녁이라 배달이 밀려서 그럴 것이니 재촉하지 말고 다시 책도 보고 할 일 하며 기다리자고 모두들 식탁에서 다시 거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때 음식점에 등록된 남편 전화로 연락이 왔다.
사장님이 화가 나서 “왜 배달을 받지 않느냐”라고 항의를 했다. 아직 도착하지 않아서 기다리고 있다고 하니 분명 배달을 갔는데 벨을 아무리 눌려도 소식이 없다고 배달원한테서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이름이 비슷한 다른 동네 아파트로 간 것이다. 음식점 사장님이 배달원에게 다시 확인 후에야 배달원의 실수라며 다시 연락이 왔다.
사장님은 시간도 많이 지체되었고 막국수도 불었을 것이라며 사과하는 의미로 음식 값을 삼천 원 깎아주겠다고 하셨다. 전화를 받는 남편도 얼떨결에 알았다고 했다.
엄마를 편하게 해 주려던 아들이 민망해할까 봐 말은 안 했지만 속으로는 배달음식으로 저녁을 허락한 것이 내 불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 덕에 편해 보려던 마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니까 말이다.
음식이 오길 다시 기다리며 뭔가 마음이 편치 않았다.
돈을 내고 시켜 먹는 음식이라지만 코로나에 힘들어할 사장님과 헬멧을 쓰고 폭염 속을 달려올 배달원이 떠올랐다. 코로나로 힘들어하면서 손님 띄울까 봐 깎아 주는 것은 아닐지, 혹시 깎아 주겠다는 3천 원이 배달비에서 깎는 비용은 아닐지, 배달원이 사장님한테 혼나는 것은 아닐지, 배달원이 우리 아들 또래의 아르바이트생은 아닐지…….
중얼거리듯 나 혼자 말하고 아들은 묵묵부답이었다.
실수한 것은 사실이지만 고의적인 것도 아니고 속이고 있는 것도 아니니 얼마든지 이해해 줄 수 있었다. 앞 다르고 뒤 다른 것도 아니고 사장님이 진심으로 사과도 하셨으니, 좀 늦었다는 것, 국수가 좀 불었다는 것이 뭐가 그리 대단한 잘못인가. 그냥 넘어가야 맛있는 저녁식사가 될 것 같았다.
잠시 후 배달원이 도착했다.
이 무더위에 헬맷도 미처 벗지 못하고 올라온 배달원을 보자 그저 마음이 짠했다. 진짜 우리 아들 또래로 보였다. 카드 결제하면서 3천 원을 할인해주겠다고 했다. 아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묵묵부답이었던 아들도 내 마음과 이심전심이었나 보다. 아들도 “괜찮다.”면서 더운 날 두 군데나 다니느라 고생했다며 그냥 정가대로 결재를 하라고 했다. 고개를 숙여 죄송하다고 사과하던 배달원의 얼굴이 웃음으로 확 밝아졌다. 나는 얼른 냉동실에 있던 아이스크림을 하나 꺼내 주었다. 아이스크림까지 받고, “맛있게 드세요.”라고 활기차게 인사를 하고 돌아가는 배달원의 뒷모습에 우리도 폭염이고 코로나고 잊어버렸다.
삼천 원의 행복이었다.
손님의 입장을 헤아려 사과의 의미로 삼천 원이라도 깎아주겠다던 사장님도 고마웠고, 삼천 원 할인을 받지 않았을 뿐 정가대로 지불했으니 사실 좋은 일 한 것도 아닌데 삼천 원덕분에 우리는 부자인 것처럼 마음이 넉넉해졌고, 배달원도 겨우 삼천 원이지만 사장님께 손해를 끼치거나 자신이 손해를 보지 않아서 기운에 찬 목소리로 인사를 할 수 있었다.
모처럼 아들이 사준 족발 보쌈으로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배달원도 사장님께 혼나지 않았으리라 믿고 싶다. TV프로였던 ‘만원의 행복’이 아닌 ‘삼천 원의 행복’이었다.
삼천 원으로라도 마음을 주고받았던 것이다.
삼천 원의 행복으로라도 세상 살 힘을 얻고, 헬맷을 쓰고도 폭염 속을 신나게 배달하길 응원해 본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