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을 산책하다가 벤치에 앉자 어디선가 가을바람을 타고 달콤한 향기가 날아왔다. 솜사탕 향기였다! 근처에 계수나무가 있다는 증거이다. 일어서서 근처를 둘러보았다.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조금씩 노랗게 물들어 가는 아름드리 계수나무가 서 있었다. 가을을 줍듯 계수나무 잎을 한 장 주워 올렸다. 하트 모양 잎을 코끝에 가까이 대고 흠향하며 계수나무 추억 속을 걸어 들어가보았다.
국민학교(초등학교) 때였다.
계수나무도 모르면서 노래 속에서 계수나무를 많이도 만났다.
쉬는 시간에 친구랑 둘씩 짝을 지어 ‘반달’이라는 동요를 부르며 숙달된 손 유희를 했다. 달나라에 가면 계수나무가 있는 줄 알았다. 짝이 되어 줄 것을 서로서로 요청하고 반갑게 응대하며 노래와 함께 손 유희를 하고 나면 한결 친밀해진 느낌이었다.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생각하면 저절로 노랫말이 흘러나오고 기억의 회로를 가동하기도 전에 손이 먼저 기억을 해서 자동으로 손유희가 나올 정도이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달나라에 가면 계수나무도 있고 방아를 찧는 토끼도 있으리라 믿었다. 언젠가 우주선을 타고 달나라 여행을 하는 꿈을 꾸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미국의 우주선 아폴로 11호를 타고 ‘닐 암스트롱’이 가본 달에는 계수나무도 토끼도 방아도 없었다.
달나라와 계수나무!
달에는 아무것도 없는 암흑의 세계였지만 수없이 불렀던 노래가 이미 가슴 깊이 스며들었기에 내 기억 속 달에는 여전히 계수나무가 있었다. 아마 평생 달 속에서 계수나무를 상상하고 추억할 것 같다.
실제로 계수나무를 만난 것은 어느 학교에 근무할 때였다.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하던 교장선생님은 이런저런 지시사항보다는 읽으신 책이나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감동받은 일들을 소개하는 일이 더 많았다.
10월 어느 날 직원회의 시간이었다.
솜사탕 향기가 나는 나무를 만났다고 하셨다. 동화 속 나무 이야기를 하시는 줄 알았는데 그 나무가 바로 교정 화단에 있다는 계수나무였다. 더구나 나뭇잎이 하트 모양이고 실제로 솜사탕 향기가 난다고 하셨다.
하트 모양의 나뭇잎에 솜사탕 향기가 나는 나무, 계수나무!
그때부터 계수나무와 눈으로 마음을 주고받으며 친해지기 시작했다.
이른 출근길, 아직 잠에서 덜 깬 교정에 들어서면 나무에서 달콤한 향기가 나는 것이 신기해서 계수나무 아래를 조금이라도 거닐다가 교실로 올라갔다. 또 하루 일과를 마치고 텅 빈 교정을 나가는 퇴근길에도 가을 햇살에 물드는 하트 모양의 솜사탕 향기가 좋아서 머뭇거리다 아쉬워하며 발길을 돌리곤 했다.
짧은 순간이지만 출퇴근길마다 하트 모양의 달콤한 계수나무를 쳐다보는 것이 잔잔한 기쁨이었다. 하트 모양의 나뭇잎과 솜사탕 향기 때문에 정이 들었던 계수나무였다.
다시 그 그리움의 계수나무를 만난 것은 더 나이 들어서 공원 산책길에서였다.
퇴직 후, 아침저녁 출퇴근으로 종종걸음 치던 생활에서 벗어나서 산책을 하면서 자연과 벗이 되어가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가을 햇살이 따사롭던 어느 날 오후, 공원을 산책하다 벤치에 앉아 쉬고 있을 때였다. 온몸으로 진동하는 핸드폰에 반가운 이름이 떴다. 더구나 너무 뜻밖의 소식에 잠시 세상이 멈춘 것 같았다. 학부모와 담임교사로 만났지만 생각의 치수가 맞아서 퇴직 후 가끔씩 만나서 회포를 풀던 엄마가 전해준 소식은 그날 저녁 공중파 TV 메인 뉴스에도 떴던 승전보였다. 언론탄압으로 현직에서 퇴출되었던 아이의 아빠가 법원에서 승소를 했을 뿐만 아니라 명예회복까지 한 승진의 복직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사필귀정!’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대한민국 언론계의 전설인 학부모가 그동안 겪은 억울함과 고초의 가슴앓이 시간들을 조금이나마 알기에 속에서 뜨거운 것이 치솟아 울컥했다. 평생 상처 입은 피해자로 살아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하늘은 역시 진실의 편이었다.
그날, 통화를 끝내고 쳐다본 가을 하늘은 유난히 더 맑고 푸르렀다.
절규 같은 한숨을 내쉬며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는데 어디선가 달콤한 솜사탕 향기가 바람결에 날아왔다. 공원 근처에 솜사탕 아저씨가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저만치 앞에 나무줄기에 ‘계수나무’라는 명찰을 단 나무가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어쩜 이렇게 타이밍이 잘 맞았을까!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저널리즘의 본령을 지키느라 탄압을 받고 있던 학부모를 계수나무도 알고 있었는 듯, 축하라도 하는 듯 솜사탕 향기를 발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날따라 계수나무의 달콤한 향기가 코를 지나 가슴속까지 스며들고 있었다. 쓰디쓴 고통의 시간을 보낸 그 학부모에게 정말 이 달콤한 향기가 닿을 수 있길 기도하는 마음이었다.
그날, 벤치에 앉아서 바라본 계수나무는 이 눈치 저 눈치를 보며 자신의 이익을 저울질하기보다 비록 강자는 아니지만 사실과 진실을 말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향기를 전해주는 것 같았다.
남이 부러워하는 큰 열매는 없지만 향기로 말을 하는 계수나무처럼…….
계수나무!
세상 물정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시절, 노랫말 속에서 만났다. 친구들과 놀면서 배우고 달나라를 상상하면서 꿈을 꾸게 했던 나무였다,
세상살이에 정신없이 바쁠 때, 오며 가며 그 나무 아래에서 하트 모양을 배우고 향기를 맡으면 삶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지곤 했다.
내 삶이 가을처럼 초록에서 단풍으로 물들어갈 때, 계수나무는 나 아닌 타인의 삶도 돌아보게 했다. 누군가의 아픔과 슬픔을 대신하지는 못해도 상처 입은 누군가에게 계수나무의 달콤한 향기 한 움큼이라도 보내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