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갑자기 두통이 너무 심해서 응급실로 실려 갔는데 검사 결과 종양으로 의심이 되었다. 안동 병원에서 대구에 있는 대학 병원으로 가서 다시 검사를 하라고 했다. 자식이 아프면 부모는 열 배 더 아프다. 친정 동생은 정신이 없고 힘들어했다. 워낙 착하고 속 깊은 조카여서 그 와중에도 부모를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고 환자인 조카가 운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더 아렸다. 엄마와 딸이 서로 안쓰러워했다.
대구에 있는 대학병원에서도 종양으로 확인을 받았다.
종양이 크면 다시 서울에 있는 대형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검사 결과 종양이 1.2cm였다. 종양이 그리 크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수술도 서울까지 오지 않고 검사한 병원에서 가능했다.
오늘 수술을 받았는데 수술이 잘 되었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대학병원이라 왜 그리 중환자들이 많은지, 침대차에 실려서 병원 복도를 오가는 중환자들을 보면서 그나마 이 정도라도 얼마나 다행인지, 우굴거리던 원망 불평을 가라앉힐 수 있었단다. 병원 밖에서는 건강한 사람들만 보고 살았는데 대학병원 안에 들어오니 딴 세상이었다. 온통 중환자 세상 같았단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잊어버리고 살아온 건강에 대해서 그나마 이 정도라도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는 동생의 말에 나도 일침을 맞았다. 여기저기 아프고 약해진 몸이지만 이 정도만 되어도 그나마 다행이라 감사했다.
우리 삶에는 행복과 불행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감당하기 힘든 낭패감 앞에서 '그나마 다행'이기만 해도 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시름을 놓는다. 동생도 조카도 '그나마 다행'을 붙잡고 다시 일어설 수 있으리라 믿는다.
어디에 기준을 두느냐에 따라 우리는 얼마든지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며 안도하고 다시 힘을 낼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은 안절부절못했던 우리를 다시 일으켜주는 회복탄력성이 되었다. 더 나아가서 로또 복권에 당첨되지 않아도 아무 일 없는 평범한 일상만으로도 감사할 줄 아는 소확행을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