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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신옥 Jun 21. 2023

인생수업료로 낸 감동구매

~ 같은 상황 다른 삶 ~

자주 들리는 동네 마트가 있다.

마트에 들어서면 그 넓은 매장 내 손님 수가 한눈에 들어온다. 가득 찬 물건이 없다면 손님 수만 보면 절간이라 해도 될 정도이다. 하지만 이 마트는 밖에서 느끼기엔 손님이 북적되는 왁자지껄한 분위기다. 바로 채소과일코너 아저씨 때문이다.           

마트에 들어서기도 전에 목소리로 먼저 아저씨를 만난다. 


동네 마트가 가까워지면 도로변 소음에도 묻히지 않고 울려 퍼지는 채소과일 코너 아저씨의 확성기 소리는 마디마디 힘이 있다. 왠지 지나는 길에라도 마트를 들려보고 싶게 한다. 그날그날 세일하는 채소 과일 품목과 가격 외치는 소리에 발길이 붙들려 들어갈 때가 종종 있다.           



그리 크지도 않고 반지하에 있어서 손님이 뜸하다. 

주변에 대형할인 마트도 있고 이름난 재래시장도 있어서 규모로 봐서도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그나마 신속한 배달 때문에 유지가 되는 것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마트에 들르면 거의 누구나 채소 과일을 한 두 가지씩은 장바구니에 담을 수밖에 없게 된다. 바로 사람의 발길을 끌고 마음을 움직이고 손을 내밀어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게 하는 채소과일 코너 아저씨 때문이다.           


마법과도 같은 영업전략이다.

밖에서 들리는 우렁찬 목소리와는 달리 정작 아저씨는 160cm 정도의 키에 깡마른 체구이다. 햇빛에 그을은 까무잡잡한 피부는 아저씨의 목소리에 한층 더 힘을 싣는다.           


언제나 거의 텅 빈 마트, 카터를 밀면서 코너를 지날 때마다 사뭇 다른 분위기다.

하등의 눈길도 주지 않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는 00 코너 아저씨, 늘 보는 사람 대하듯 덤덤하게 바라보는 코너담당 정리하는 점원들, 자동화된 생산라인처럼 규격화된 계산원들의 말, 나도 그들과 별반 다를 봐가 없다. 전혀 불편함을 모르는 무관심의 편리함에 익숙해져 있다.           



아저씨는 평범하면서도 남달라 보인다. 

채소코너 아저씨는 출입구에 손님이 들어서면 벌써 멀리서도 활기찬 목소리로 “어서 오십시오”라고 한옥타브 올려서 인사를 외친다. 손님이 채소 과일 코너로 오지 않고 다른 코너로 가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저씨는 잠시를 가만있지 않는다. 쉴 새 없이 채소 과일 상품들과 가격 소개를 되풀이한다. 특히 그날 세일 상품이나 새로 들어온 상품들 선전에 열을 올린다. 무관심한 듯 카트를 밀고 다니며 다른 물건을 고르면서도 아저씨의 선전이 귀에 들어올 수밖에 없다. 


드디어 카트를 채소과일 코너로 향하게 된다. 

손님이 별로 없어서이지만 아저씨의 눈과 입은 손님을 따라다닌다. 일일이 몸이 따라오지 않아도 내가 지나가는 곳의 채소 과일을 더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선전한다. 수박 곁을 지나고 있으면 “오늘 수박 00에서 새로 가져온 싱싱한 것인데 완전 설탕입니다. 원래는 얼마인데 얼마 할인해서 얼마에 가져가버리세요.” 아저씨의 선전에 발길이 멈추면 아저씨는 바로 손님 가까이 오신다. 주위를 맴돌며 구체적으로 상품 선전에 박차를 가한다. 여러 가지 레시피까지 첨부하면서 구미를 부추긴다.           



그래도 예정에 없던 충동구매가 될까 봐 마음 흔들리지 않으려 꼼짝하지 않으면 한 발짝 더 다가와서 한 두 개씩 덤으로 끼워주거나 가격을 더 할인해 준다. 구매하지 않으려 단단히 별렀던 마음이 웃음으로 무장해제되고 만다. 우격다짐 강매로 여겨지지 않는다. 득템 한 기분으로 결국 사고 만다. 충동구매라기보다 감동구매하고 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마트에서 물건보다 삶을 사서 오는 듯하다.

어쩌면 지금쯤 아저씨는 뒤돌아서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지도 모른다. 고도의 영업전략일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난 항상 아저씨의 치열한 삶의 모습에 값싼 수업료를 냈을 뿐이라고 고개를 숙인다. 쉬이 사라지지 않는 아저씨 삶의 한 단면에 침체된 내 삶의 한복판을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다. 몸도 마음도 시들시들해져 가는 나에게 정신을 차리라고 ……. 몸으로 직접 보여주는 삶의 설교 한 편이다.          




손님 없는 장사, 같은 상황인데도 코너마다 다른 삶을 본다.

속이 말이 아닐지언정 단 한 명의 손님을 위해서라도, 아니 눈에 보이지 않는 밖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까지 외쳐대는 활기찬 아저씨의 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소리라기보다 질기고도 연민스러운 삶. 그 자체이다. 슬퍼하고 괴로워하고만 있을 수 없이 살아내야 하기에 삶인가 보다.      



오늘은 인생수업료로 예정에 없던 느타리버섯을 샀다. 

아저씨의 레시피대로 느타리버섯 양념해서 밀가루 묻히고 계란물 입혀 부침개를 했다. 저녁상이 한결 풍성해졌다. 삶이 맛을 냈다.


(같은 듯 다른 돌들이 쌓여가는 탑, 쉬지 않고 도는 물레방아를 보며 우리 삶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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