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시간 도로 교통 사정을 종잡을 수 없어 여유 있게 출발한 탓에 약속 시간 40분 전에 도착했다. 약속한 대기업 빌딩 앞에 왔지만 대기 장소가 필요했다. 지인이 올 때까지 기다릴 마땅한 장소를 물색하느라 빌딩 근처를 배회하고 있었다.
분명 같은 나라 사람들인데 나 스스로 이방인 같았다.
출근 시간대라 거리에도 근처 카페에도 상점에도 온통 젊은이들 뿐이다. 언젠가 갔던 홍대 거리에서 느꼈던 세대차가 주마등처럼 스친다. 실외 쉼터를 찾았지만 어색하긴 마찬가지였다. 야외에도 빨리 출근한 듯한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그들마저 앉을 곳이 부족해서 커피 마시면서 서서 대화 중인 사람들로 가득했다. 나직나직 한숨 섞인 직장 스트레스도 뿜어져 나오고 유쾌한 웃음소리도 터져 나오는 젊은이들 사이에 비집고 앉기가 어색했다. 시간이 아까워서 독서라도 할 수 있는 방해받지 않을 여유 공간을 찾아야 했다.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어슬렁거리는 내 모습을 힐끗힐끗 쳐다보기도 한다.
뭇 눈길도 부담스러운 그때였다.
한창 이야기를 나누던 3040으로 보이는 한 젊은이가 무리에서 몇 걸음 나와서 내게로 다가왔다. "어딜 찾으세요?" 뜻밖의 목소리에 놀라 주춤했다. "아닙니다. 누굴 기다리는 중입니다." 얼떨결에 대답하고 거기서 끝날 줄 알았다. 그는 다시 빌딩 통유리 속 모퉁이에 있는 카페를 가리키며 " 적당한 곳 없으시면 저기 좀 앉아서 기다리셔도 괜찮습니다."라고 꿀팁을 주었다. 횡재를 만난 듯 얼른 그곳으로 들어갔다. 직원전용 개방된 무인카페였다. 군데군데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팀이 있긴 했지만 한적했다.
둘러본 근처 어느 곳보다도 여유로운 공간이었다.
푹신하고 넓은 소파에 앉으니 긴장도 풀리고 아주 편안했다. 등받이에 기대어서 창밖을 보니 나를 안내해 준 젊은이가 눈에 들어왔다. 참 남달라 보였다. 우리 아들 또래로 보이는데 참 잘 자랐다 생각되어 눈을 떼지 못 하고 바라보게 되었다. 바쁜 아침, 잠시 동료와 함께하는 금싸라기 틈일텐데. 아무 관계도 없고 당장 이익도 없는 나이 든 나에게 눈길을 주고 신경 써준 여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몸에 밴 여유와 친절이 아니고는 나올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엉겁결에 거듭 고맙다는 말은 했지만 표현이 부족했다.
유리창 너머에서 그 젊은이를 바라보며 사람의 진면목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꾸밀 사이도 계산할 사이도 없이 막다른 순간에도 낯 모르는 사람에게도 나올 수 있는 모습이 평소 그 사람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진짜 그 사람인지도 모른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사소한 말 한마디도 내면에 배어 있던 것이 차올라서 나오는 것이리라.
약속 시간 일찍 도착한 덕에 낯 모르는 젊은이에게 삶의 한수를 배웠다. 덕분에 푹신한 소파와 탁자를 무료로 즐기며 젊은이의 배려를 되새김질하는 글도 쓰고 브런치 글도 읽었다. 그는 오늘 내가 만난 천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