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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신옥 Apr 15. 2024

저 시가 아니었다면

~ 성공비법이 된 시 ~

가까운 지인이 하는 방앗간을 갔을 때 일이다.

재래시장 한 모퉁이에 자리한 작은 방앗간이다. 떡 만드는 기계, 고춧가루 빻는 기계, 기름 짜는 기계들 사이로 사람이 지나다니기도 협소한 장소이다. 좁은 공간을 봐도 분주한 분위기를 봐도 영 어울리지 않게 시가 써진 액자가 벽에 걸려 있었다. 윤동주시인의 서시였다.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이렇게 정신없이 바쁜데 언제 저 시를 쳐다본다고’ 전시용인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도 워낙 좋아하는 시라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언제 봐도 가슴이 절절해져 오는 시이기에 뭔가 사연이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코드가 맞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반가움도 있어 물어보고 싶었다.



 기계소리 때문에 손나팔을 만들어 외쳤다.

“사장님, 서시를 엄청 좋아하시나 봐요?”라고 했더니 활짝 웃으며 한마디로 잘라

“우리 집을 부자 만들어 준 시지요”라고 확답을 하신다.      

 


 나중에 들으니 사연인즉 이랬다.

그가 시골을 떠나 지방 중소도시로 나와 방앗간을 하게 된 때는 40대였다.

나이 마흔이 넘도록 시골에서 소작농으로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커가는 삼 남매를 교육시키기도 벅찼다. 생활비며 교육비며 빚만 늘어갔다. 막다른 골목에서 마지막 있는 힘을 다해 시작한 일이 바로 이 방앗간이었다.      

 


 빚을 더 보태서 재래시장 안에 위치한 작은 방앗간을 인수했다.

처음으로 해보는 일이었다. 방앗간을 넘겨주는 전(前) 사장님에게 떡 만드는 일로부터 시작해서 기름 짜는 일, 고춧가루 빻는 일 등을 배워야만 했다. 집안 형편을 전해 들은 전(前) 사장님이 성공비법을 알려주셨다. 떡을 할 때는 좋은 쌀만 하면 남는 것이 없으니 나쁜 쌀도 좀 섞어야 하고, 국산고춧가루도 적당히 표 나지 않게 수입고춧가루를 섞어야 하고, 참기름도 수입깨를 섞어서 국산참기름으로 해도 사람들이 일일이 확인할 수가 없다고 했다.(지금 시대에는 말도 안 되는 비법이다. 아마 부정부패가 난무하던 그 옛날이니까 가능한 비법이리라 생각한다.)     

 


 천만다행이었다.

지인은 전(前) 사장님의 비법을 따르지 않기로 작정했다. 개업선물로 들어온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벽에 걸었다. 그것을 방앗간 사훈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가슴에 새겼다. 전(前) 사장님 방식대로 하지 않고 완전한 비법을 택하기로 결심했다.           

 


 양도 질도 철저히 원칙대로 해나갔다.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정말 처음 얼마간은 남는 것이 없었다. 저 ‘서시’ 때문에 사업 망하는 것 아닐지 불안하고 두렵기도 했다. 전(前) 사장님 말씀이 옳았다는 유혹이 손짓했다. 그래도 서시를 보면서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다지고 또 다지곤 했다.           

 


 한 달 두 달 날이 갈수록 먹어 본 사람들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前) 사장님 때보다 더 맛있고 떡이고 기름이고 고춧가루고 빛깔도 좋고 양도 더 많다고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점점 단골이 늘어나고 근처 대형교회나 사업처에서도 행사용 떡 주문이 밀려들어왔다. 사장님 부부는 주문이 많아서 잠을 못 잘 정도가 되었다. 결국 양심을 지켜주고 부자를 만들어 준 시가 되었다. 많던 빚도 다 갚고 집도 사고 자녀들도 대학교육을 다 시키고 결혼까지 시킬 수가 있었다.      

 


 사장님은 일흔이 넘으셨다.

사람이 평생 돈만 벌면서 살 수는 없다고 하셨다.

이제 주문이 밀려 잠도 못 자고 손이 많이 가는 떡은 그만두었다. 출퇴근 시간을 정해두고 기름과 고춧가루만 하신다. 신앙생활 하시면서 노년의 여유를 즐기신다.      

 


 저 시가 아니었다면 자기가 부자 될 수 없었다고 한다.

자기 인생 성공비법이 된 서시라고 한다.     


 서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서시대로 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누군가의 삶에 길잡이가 되고 힘이 된 서시였다.


             ( 산책길에 고결한 수선화 앞에서 머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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