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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신옥 Jun 28. 2024

못난이 참외의 행복

~ 거래를 초월한 마음 ~

 밤 10시가 넘었다.  

외출했다가 귀가하는 늦은 밤길이었다. 지하철역 모퉁이에서 나이 지긋해 보이는 아저씨가 참외를 팔고 있었다. 주차가 힘들었는지 노란색 참외도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어둡고 후미진 곳이었다. 종종걸음으로 귀가를 재촉하는 사람들 시선을 잡기엔 밤이 너무 깊었다. 잘 팔리지도 않아 보이는데 아저씨는 사람이 지날 때마다 “ 오늘 아침에 가져온 달고 맛있는 00 참외 사가세요.”를 반복한다. 참외를 가득 실은 용달차 앞을 지나치는 사람들을 향해 호소하는 듯한 아저씨 목소리를 못 들은 척 외면하기가 겸연쩍어 발길을 멈추었다.      

 


 대여섯 개 담긴 참외 한 봉지를 오천 원에 샀다.

내가 한 봉지 산다고 뭐 별 도움도 되지 않겠다 싶을 정도로 참외가 많이도 남아 있었다. 만 원을 내고 거스름 돈을 받으며 나도 모르게 속에 있는 말이 나오고 말았다. “ 많이 파세요. 밤도 늦은데 언제 다 팔까요? ”라고 속내를 보이고 말았다. 주제넘은 말이 아닌지 찔끔했다. 다행히 어둠 속에서도 흰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주름진 아저씨 얼굴에 미소가 번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 예, 예, 고맙습니다.”라며 아저씨가 정중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해서 당황스러웠다. 짧은 말 한마디지만 녹록지 않은 삶의 순간에 뭔가 진심이 스치고 있었다.      

 


 내가 참외를 사고 있는 줄도 모르고 앞서가던 남편이 다시 되돌아와서 참외 봉지를 건네받느라 잠시 주춤거리는데 참외 아저씨가 “ 저기요.”라며 다급하게 부른다. ‘혹시 거스름돈에 착오가 생겼나?’하며 되돌아갔다. 그게 아니라 아저씨가 참외 두 개를 덤으로 주셨다. “ 여기저기 부딪쳐서 흠집이 있어서 못난이 참외이지만 맛은 마찬가지입니다.”하신다. 뜻밖이어서 사양을 해도 말씀이 고마워서 드리고 싶다고 성화였다. 할 수 없이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받았다.      

 


 어둠 속이라 얼굴은 보이지 않아도 사람의 마음은 느껴지는가 보다.

밤이 늦도록 장사를 하고 있는 모습에 왠지 한 봉지라도 사줘야 할 것 같았다. 동정은 아니었다. 누구에게나 녹록지 않은 삶이기에 동병상련이었을 뿐인데…….      



 넣어 갈 주머니가 없어서 아저씨께 덤으로 받은 참외 두 개를 양손에 들고 걸었다.

어두운 밤길에 노란빛이 더 돋보이는 못난이 참외는 군데군데 어디에 부딪친 흠집이 불빛에 드러나 보였다. 상처의 흔적 때문에 정가로 팔리지 못한 참외다. 덤으로 받았기에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정감이 온기로 스며든다. 혹시 떨어트리기라도 할까 봐 소중하게 가슴에 대고 걸었다. 코 끝으로 스며드는 참외의 달콤함에 더위도 피곤도 잊어버렸다. 아저씨는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을 때마다 이 못난이 참외를 한 두 개씩 덤으로 주는 듯했다. 아저씨에게 수입이 되지 못하지만 받는 사람에겐 못난이가 아니라 감동 한 소절씩 안겨주는 귀한 선물이었다.            

 


 마음이 담긴 말 한마디 한 대가로 받은 못난이 참외 두 개에 오히려 무기력해지던 내 마음이 살아나고 있었다. 어둠에 묻히려던 하루가 다시 밝아지고 있었다. 참외를 들고 오는 내내 참외의 달콤함이 코끝으로 스며들었다. 삶에 단맛을 더해 주고 있었다. 노란 못난이 참외 두 개가 어두운 밤길에 전등이 되어 주고 있었다. 주위를 더 환하게 밝혀 주는 참외가 길동무가 되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들어서도 나이 지긋한 참외 아저씨의 말이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여기저기 부딪쳐서 흠집이 있어서 못난이 참외이지만 맛은 마찬가지입니다.”라는 말이 메아리처럼 울린다. 아저씨는 그냥 해본 말인데 내가 너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까? 우리도 살다 보면 이리저리 부딪쳐 상처 입을 수밖에 없다. 상처 입은 못난이지만 다른 사람을 더 달콤하게 해 줄 수 있는  을 갖게 되었지도 모른다. 상처 입은 사람만이 상처 입은 사람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우연이 얻은 못난이 참외가 한 조각 기쁨으로 하루를 채워주었다.     

 


 다음 날 온 식구가 함께 참외를 먹었다.

대가를 치른 참외는 거래였지만 못난이 참외는 마음이었다. 어느 참외나 참외 맛은 같지만 덤으로 받은 못난이 참외는 한 조각 한 조각이 살맛 내는 이야깃거리였다. 아저씨 말씀처럼 군데군데 상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맛까지 못나지는 않았다. 그 달콤함이 잠시나마 피로회복제였고 일상을 지켜주는 힘이었다.       

 


 잘난 것 없는 나도 여기저기 상처투성이인 못난이 참외와 닮았는지도 모른다.

못난이 참외를 보며 힘을 내 본다. 못난이 참외이기에 거래를 초월한 행복 한 조각 덤으로 줄 수 있었다. 그래서 못난이 참외도 행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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