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

~ 작심삼일일지라도 ~

by 강신옥

올해의 마지막 날이다.

오후에 마트를 가느라 아파트 경내를 걸었다. 세밑 한파에도 의연하게 서 있는 겨울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하던 초록들이 다 떨어지고 빈 가지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공허해 보인다. 가지 사이를 오가는 찬바람에 푸석푸석해서 으스러져가는 잎사귀 몇 개가 나뭇가지 끝에서 떨고 있다. 나이 들어 몸도 마음도 예전 같지 않게 사그러져가는 나를 보는 듯했다. 그래도 올해도 무사히 살아왔음에 감사하며 따뜻한 마음으로 마트에 가서 가족들을 위한 조촐한 만찬거리를 사 왔다.



저녁 설거지를 끝내고 오늘도 안방 내 작은 원목 책상에 앉았다.

찬송가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으며 숨을 고른다. 마음이 평온해진다. 하루하루 살아온 수많은 날들이 겨울나무 빈 가지처럼 새해를 위해 비워지는 느낌이다.



비워진 마음에는 먼저 감사가 스며들기 시작한다.

매일 하루를 끝내며 쓰는 감사일기, 오늘의 첫 줄도 같은 말,

‘온 가족 무탈함을 감사합니다.’였다. 하루를 살고 되돌아볼 때마다 가장 감사한 소확행이었다. 그렇다고 일 년 내내 가족이 만사형통은 아니었다. 때로 아플 때도 있었고 예기치 않은 일로 힘들 때도 있었지만 세상에는 행복과 불행만 있지 않았다. 항상 ‘다행’도 있었다. 나이 들수록 은은한 감사 맴도는 다행을 좋아하게 되었다. 감당 못할 정도의 낭패는 아니었기에 매일매일 감사일기 첫 줄이었던 ‘온 가족 무탈함을 감사합니다.’를 모으니 한 해가 감사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철마다 때를 따라 값없이 누려온 햇살과 바람과 비를 통해 내가 고생하지 않고도 늘 풍족하게 먹고 즐기며 여기까지 지내왔다. 성경에 사무엘선지자가 했던 말 ‘에벤에셀하나님(하나님이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을 떠올리며 감사의 고개를 숙였다.



송구영신이다.

이미 고인이 되신 친정엄마가 몸으로 남겨주신 말이다. 엄마는 평생 12월 마지막날이면 한 해도 빠짐없이 대청소를 하셨다. 집안 먼지를 털어내고 쓸고 닦고 정리정돈을 하셨다. 밤에는 감사기도를 하셨다. 하룻밤 자고 나서 새해 첫날이면 온 가족이 예배를 드렸다. 친정엄마는 그렇게 송구영신을 기억하게 해 주었다.


매일 같은 해가 떠오르기에 묵은 해가 어디 있을까마는 우리는 마음으로 저무는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다. 좋지 않은 기억들, 게을러져 늘어지던 일상, 지키지 못한 계획들을 정리하고 새로 시작해 보고 싶은 마음인지도 모른다. 작심삼일일지라도 내 삶에 다시 희망을 불어넣고 싶은 마음에서 올해도 송구영신을 읊조리며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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