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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동요

~ 섬집아기 ~

by 강신옥

일과를 마치고 책상에 앉으면 음악을 들으며 글을 읽곤 한다. 음악 선율이 흐르니 무덤덤한 마음에 글이 더 잘 흡수된다. 오늘은 동요와 함께했다. 자주 듣는 동요 중에 들을 때마다 바닷가 섬마을이 눈에 선하고 노랫말 한 소절 한 소절이 가슴에 스며드는 노래가 있다. 차오르는 애틋한 모성애에 마음이 젖어들곤 한다.


가사는 1946년 이전에 쓰였고 곡까지 붙여 나온 때는 1950년 경이라 하니 아주 오래된 옛날 동요임에도 이 AI시대에도 왜 우리의 심금을 울릴까! 우리 모두 엄마 없이 혼자 남은 아기가 되기도 하고 아기 혼자 두고도 어쩔 수 없이 일하러 가는 부모가 되기도 하기 때문에 공감의 울림이 크다.


은은하고 부드러운 하모니카 선율이 울컥해진 마음을 쓸어내려주기도 한다. 때로는 읽던 책을 멈추고 노랫말을 따라 부르며 고요한 바닷가 섬마을을 서성이곤 한다.

한인현 작사 이흥렬 작곡의 ‘섬집아기’라는 동요이다.


섬집아기

한인현 작사

이흥렬 작곡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 잠이 듭니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 찬 굴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아기를 혼자 두고도 일을 나가야 하는 엄마

알아듣지 못해도 이런저런 말로 아기를 달래면서도

편치 않은 마음 억누르며

어쩔 수 없이 일을 나왔을 엄마의 애절한 현실에

지난날이 떠올라 가슴이 아려온다.

혼자 남은 아기를 돌봐 준 이들이 있었으니

늘 보고 들어서 친근한 햇살, 바람, 물결 소리가

자장가가 되어 허전함을 토닥여주니

포근해진 아기는 혼자서도 저절로 잠이 들고 만다.


아기를 혼자 두고 온 엄마는

일을 하면서도 아기가 눈에 밟혔으리라

엄마 주위를 맴도는 갈매기 울음소리

엄마는 집에 혼자 있는 아기가 겹쳐 보였다.

행여 아기가 울고 있지는 않은지 불안해졌다.

결국은 일을 다 끝내지 못하고

아기생각에 마음이 급해져서

빨리 걸을 수도 없는 모랫길을 갈팡질팡

달려온다. 애틋한 모성애 여운이 가슴을 파고든다)



칠 남매 낳아 기르며 잠시도 아이를 남의 손에 맡겨 본 적 없었다던 친정엄마도 섬집아기 동요의 엄마였다. 아직 아이들이 어릴 때 나도 아이들을 남의 손에 맡긴 워킹맘이었다. 점심시간 밥을 한 숟가락 뜨는 순간 집에 있는 아이들은 밥을 먹었는지 울컥하며 목이 메던 때가 있었다. 퇴근하면 제일 먼저 물어보는 가슴에 남은 말이 ‘밥은 잘 먹었냐’이었다. 꼬리를 무는 미안함과 아쉬움을 달래느라 바닷가 서성이듯 노래를 자꾸 듣는다.



언젠가 5학년 음악시간이었다.

섬집아기 노래를 배워서 부르는데 앞에서 보니

정말 어떤 아이가 고개를 끄덕끄덕이며 졸고 있었다. 나는 차마 깨우지 못했다.

나중에 물어보니 그 아이는 노래가 정말 자장가처럼 들렸다고 한다.

또 어떤 개구쟁이 아이는 노래를 부르며 눈시울이 붉어지고 있었다.

아마 아기가 눈에 밟혀 모랫길을 달려오는 엄마를 보며

일하며 자신을 키우고 있는 엄마가 엿보였나 보다.


모성애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마찬가지였다

언젠가 유튜브에서도 보았다. 프랑스 바스티유 광장에서 열린 한국전통음악 축제에서 울려 퍼진 ‘섬집아기’ 노래가 한글도 잘 모르는 프랑스사람들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오열하는 프랑스 엄마들 모습은 보는 이들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동요는 어린아이들만을 위한 노래가 아니었다. 시들해져 가는 어른들에게 아이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한다. 순간적이지만 동심으로 돌아가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게 한다. 무기력해져 가는 어른들을 일으켜 주기도 한다.


굴바구니 다 채우지 못하고서도 모랫길을 달려오고 있는 엄마!

언제 어디서든 일하다가도 아이를 위한 일이라면 만사 제쳐두고 달려오는

예나 지금이나 영원한 엄마 모습이 아닐까!


(~엄마랑 아기랑 함께 하는 국화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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