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학은 못 해도 문제 해결을 잘하는 천사 ~
청아!
이름만 떠올려 봐도 폭염을 식히는 청량음료를 마신 듯 마음이 맑아지는 아이다.
Sky캐슬 드라마를 만들어낸 강남은 아니지만, 학구열이 강남 못지않은 곳에 있을 때였다.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다해서 오는 아이들이어서 학습지도는 어렵지 않은 학교였다.
하지만 청아는 달랐다. 학원도 잘 다니지 않았다. 5학년인데도 수학 기초학력이 부족해서, 드러내 놓고 말은 안 해도 내심 ‘수학 학원이라도 좀 다니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야단은 치지 않지만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주고 싶었다. 방과 후에 남겨서 수학을 가르치면 자기가 못하는 것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선생님을 고생시켜서 미안하다는 장문의 일기를 써오곤 했다. 나는 일기 검사를 하면서 자기 코가 석자인데 나를 걱정하는 청아 때문에 혼자서 웃을 때가 많았다.
수학은 그렇다 치더라도 글씨라도 바르게 쓰면 좋겠건만 청아가 쓴 글씨는 한참 조합을 하며 들여다봐야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아무리 컴퓨터 시대여서 직접 글씨 쓰는 일이 줄어들었다고 해도 의사 전달은 되어야 글씨인데 청아의 글씨는 차원을 달리했다. 전혀 힘이 실리지 않는 자유로운 글씨체였다.
나도 솔직히 마음 한편으로는 컴퓨터 시대니까 걱정을 덜하면서도, 그 정도가 심하니 지금이라도 바로 잡아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책임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형식적으로 무조건 통과의 의미로 도장을 찍는 것은 교사로서 직무유기인 듯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할 정도였다.
아무리 말해도 자기는 이미 글씨체가 몸에 배어서 그렇다고 웃기만 했다. 지금 고쳐주지 않으면 영영 못 고칠 것 같아서 강도를 좀 높여볼 때가 있었다. 다시 해오라고 확인 도장을 찍어주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러면 청아는 도장을 내 손에 쥐어주면서 “아, 그냥 빨리 찍어주세요”라며 도장을 찍으라고 애교작전을 폈다. 어떻게라도 고쳐보려고 마음을 굳게 다잡으면서 버티면 할 수 없이 다시 써 오는데 그나마 좀 나아져서 뜻은 알 수는 있었다.
정성이 갸륵해서 최고의 칭찬 도장을 찍어주면 자기도 내 손등에 칭찬 도장을 하나 기어이 찍어주고 헤헤 웃으며 자리로 들어가곤 했다.
다행인 것은 청아는 공부 못하는 것에 대한 열등감이 없었다. 자기가 공부를 못하는 것을 인정은 하지만 주눅도 들지 않고 걱정도 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초긍정이었다. 항상 밝게 웃고 교사와 이야기하기를 좋아했다.
나 역시 공부 못하는 청아를 보면서도 앞날이 전혀 걱정되지 않았다. 스스로 행복하고 주위를 밝게 만드는 것도 능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학을 못하고 글씨가 악필이라고 야단을 칠 때에도 “행복한 청아야!”라고 부르며 야단을 쳤다.
그런 청아에게 일이 생기고 말았다.
방과 후 다른 아이들처럼 학원을 다니지 않으니 학교 도서관에 들리는 날이 많았다. 청아는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늘 청아의 독서습관을 칭찬하곤 했다.
어느 날 아이들이 모두 돌아간 교실에서 혼자 업무를 보고 있을 때였다. 도서실 선생님이 연락이 왔다. 청아가 다쳤다는 것이다. 우리 반 남자아이 민이가 청아를 놀리고 달아났다. 민이를 좇아가다 민이가 놓아버린 문손잡이에 부딪쳐서 청아가 이를 다쳤다는 것이다. 바로 보건실로 연락해서 보건 선생님이 학교 앞 치과로 지금 데려갔다는 것이다.
정말 가슴이 ‘쿵’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심쿵’이라고 하나보다. 다리까지 떨렸다. 치과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동안 보건 선생님이 나에게 연락을 하셨다. 양쪽 부모를 불러서 의논을 해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학교 안전공제로만 해결할 수 있을지 양쪽 부모가 합의를 해봐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때때로 현재 치료뿐만 아니라 성장 후에 생길 수 있는 치료비까지 요구하면서 문제가 복잡해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정말 난감했다. 무상급식이 되기 전이라 한 학급에 3명 정도 무상급식 혜택을 줄 때였다. 아버지도 안 계시고 엄마 혼자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생활보호 대상자여서 민이는 무상급식 혜택을 받고 있었다. 경제적으로 무척 어려운 것으로 짐작이 되고 있었다. 청아도 그렇게 넉넉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연락을 받고 민이 엄마는 동네 친구라며 어떤 아주머니랑 함께 먼저 도착했다. 아마 응원부대로 따라온 것 같았다. 청아 엄마는 회사 퇴근 후에야 도착할 수 있다고 연락이 왔다. 청아 엄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안전사고만 나면 부모들의 감정싸움으로 번지고 그 사이에서 교사는 양쪽의 원망을 들으며 시달리는 모습을 종종 봐왔다. 이런저런 불안으로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동안 민이 엄마와 친구라는 아주머니는 둘이서 큰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 아이들이 놀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뭐.”
“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무슨 책임을 지냐.” 라며 사실은 나 들으라고 자기편을 합리화하는 말을 마구 쏟아놓고 있었다.
일일이 대항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 나는 일단 입을 다물기로 했다.
지금 이 순간 다친 아이를 걱정하는 일이 가장 급선무이어야 하는데 우리 어른들은 비용과 책임전가만을 계산하고 있는 현실이 나를 더 불안하게 하고 무기력하게 했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지만 나는 책상에 엎드려 거둬놓은 학습지를 검사하면서 나름대로 처리 방안을 모색하고 있었다.
나는 그리 좋지 않은 내 머리를 굴리지 않기로 했다. 단순하게 정면으로 처리하기로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책임질 일이라면 책임을 지리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청아 엄마가 도착했다. 보건 선생님과 치과에 갔던 청아, 민이도 왔다. 나는 숨을 고르고 입을 열었다. 일단 동네 친구 아주머니는 아무 관계가 없으니 가시라고 했다. 나이에 눌렸는지 조용하면서도 단호한 내 어조에 눌렸는지 아무 말 없이 나갔다. 큰 산을 하나 넘은 것 같았다.
정식 일과는 마쳤지만 학교 내에서 일어난 일이니 끝까지 아이들을 잘 돌보지 못한 것에 대해 양쪽 부모님께 진심으로 사과를 드렸다. 그러자 청아가 나섰다.
“선생님 잘못 아니어요. 우리가 장난치다가 일어난 일이에요.”
이번에는 민이가 울면서 말했다.
“제가 먼저 잘못한 것이어요. 제가 가만히 책 읽고 있는 청아를 놀려서 따라오게 했어요. 내가 그만 도망치느라 문을 놓아 버렸어요."
두 아이가 모두 울면서 자기들 잘못이라고 하니 엄마들이 숙연해지는 분위기였다. 민이 엄마도 다른 말이 필요가 없게 되었다.
민이 엄마가 진심으로 사죄했다. 혼자서 아이 둘을 키우는 자기의 어려운 사정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청아 엄마에게 사죄하면서 자기의 어려운 형편을 너그럽게 봐 달라고 간청을 했다. 청아 엄마도 경제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청아 할머니에게 살림을 맡기고 맞벌이를 하고 있는 사정을 털어놓았다.
서로 자기가 더 가난하고 어려운 형편이라고 주장하니, 중간에서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는 학교 안전공제회를 통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치료비의 실비라도 서로 부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 날 우리는 모두가 퇴근하고 어두워진 학교를 서로 붙들어주고 웃으며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헤어질 때 청아 엄마는 혼자서 살아가는 민이 엄마의 어깨를 두드려주면서 힘내라고 했다. 민이 엄마는 울컥해서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어른들을 감동시키고 화해를 이끌어낸 것은 아이들이었다.
역시 청아의 거침없는 순수함이 일을 해결해준 열쇠였다. 청아는 자기가 치과 치료를 받으면서도 그날 달아나다가 이마를 문에 부딪쳐서 혹이 난 민이를 늘 걱정하고 미안하다고 했다. 청아의 치료가 끝날 때까지 청아의 이를 볼 때마다 미안하고 안쓰러웠다. 치과 치료여서 시일이 좀 걸리긴 했지만 청아의 치료가 잘 되었다. 민이와 청아는 더 친해졌다. 뿐만 아니라 양쪽 엄마들도 친해졌다.
수학적인 계산은 못하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은 남달랐던 청아였다. 글씨는 예쁘게 못쓰지만 청아의 마음은 정말 이름처럼 맑고 예뻤다.
나는 지금도 청아를 생각하면 마음이 맑아지며 가슴이 뭉클해진다. 아마 청아가 엄마를 닮았나 보다. 어른들이 알아서 할 일에 나선다고 청아를 야단치지 않고, 기특해하며 볼을 비벼주던 청아 엄마도 남달라 보였다.
맛있는 것 만들어 먹고 싶어서 요리사가 꿈이라던 청아였는데…….
분명 어딘가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으리라 믿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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