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모습을 보여준 사람

~ 누구나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천사 ~

by 강신옥

퇴직한 친구가 말했다.

“ 퇴직하고 나니 편하긴 한데 솔직히 행복하지는 않아.”

집에 오면서 그 말의 의미를 곱씹어 보았다. 왜 편한데도 행복하지 않을까.

밥 먹듯 쓰는 말인데도 오늘따라 의미가 애매모호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 노트북을 열었다. 검색창에 ‘행복’이라고 쳤다.

어학사전에서는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이라고 정의하고 있었다. 무엇이든 대답하는 지식인에게 질문을 했다. 000 지식 검색창에서는 행복(happiness)에 대한 가장 인기 있는 정의는 ‘주관적 안녕감(subjective well-being)’이라고 했다. 안녕(安寧)이란 평안하다는 의미인데, 즐거움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특별한 사건이 없는 편안한 상태를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친구가 특별한 사건도 없고 편안한데 왜 행복하지는 않다는 것일까? ’라며

‘ 행복 ’에 대해 음미해보았다.


생각해보면 행복의 의미가 나이에 따라 달라졌다.


아주 어릴 때는 그저 신나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초록으로 충만한 숲길을 산책하는 것보다는 놀이동산이 행복했다. 매일 밥을 먹다가 어쩌다 자장면 한 그릇만 먹어도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좀 더 성장해서 2030 세대가 되었을 때는 성취감이 곧 행복이었다. 원하는 곳에 합격을 하고 돈을 모아서 집을 사고 내 차를 사며 현실적인 목표를 이루어가는 것이 행복이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런 것들도 그리 오래가는 즐거움이 아니었다.

내 집을 마련해도 내차를 사도 며칠 지나면 그냥 원래부터 있었던 것처럼 익숙해져서 더 이상 기쁨도 즐거움도 아니었다.



퇴직도 하고 더 나이가 들고 보니 지식 검색창에서 일러준 대로 특별한 사건이 없는 날 편안함을 느꼈다. 이만하면 행복하다고 체념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저녁기도를 할 때면 나와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나와 연결된 모든 사람들에게 아무 일이 없었다는 것에 감사를 드린다. 정말 특별한 사건이 없었다는 것에 평안을 느낀다. 나이 들어서 어쩔 수 없이 너무 소극적이 되었나 싶기도 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할 때는 특별한 사건 없이 편안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분명 내면에 ‘기쁨’이 스며들었다. 삶에 생기도 얻었다.

'행복’이라는 말에 오롯이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가끔씩 들려보는 곳이 있었다. 1급 지체장애 아저씨와 할머니가 사는 집이었다. 아저씨는 스스로 걷거나 앉지 못하고 누워서 일상생활을 하셨다. 누가 옮겨주지 않으면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아저씨였다. 언어전달도 원활하지 않았다. 익숙해져야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처음 아저씨를 교회에서 뵈었을 때에 불쌍하다고 애써 웃으며 손을 잡아주었지만 속으로 사실 조금 두려웠다. 선뜻 다가갈 수 없는 외모였다. 눈만 퀭하니 크고 볼이 쑥 패진 얼굴이었다. 말할 때마다 입도 돌아갔다.



하지만 대화를 나눌수록 아저씨는 정말 해처럼 밝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다가가고 싶은 친밀감이 느껴졌다. 아저씨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내가 오히려 아저씨께 왠지 모를 에너지를 얻는 기분이었다. 친모인 백발의 할머니가 아저씨를 돌보고 계셨다. 다행히 할머니는 90 연세에 비해 건강하셨다. 인자하고 웃는 얼굴이 아저씨와 닮아서 우리 외할머니 같았다. 아저씨의 식사와 시중을 할머니는 거뜬히 감당하고 계셨다.



주말 오후에 아저씨를 자주 찾아가 보곤 했다. 내가 아저씨와 할머니를 찾아가는 것은 경제적인 도움을 주거나 가사도우미의 역할을 해주거나 아저씨를 돌보기 위함이 아니었다. 생활비는 정부 보조금이 지급되고 있었고, 살림살이도 할머니가 물샐틈없이 하고 있었다. 힘으로 내가 아저씨를 들어 옮겨줄 수도 없었다.

아저씨를 만나러 가는 날은 뭔가 드리고 싶은 마음이 우러나서 종종 간식이나 반찬거리를 조금 가져갈 뿐, 얼마나 뭘 사들고 가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아저씨와 할머니를 찾아가서 그저 함께 놀다 오곤 했다. 일주일간 있었던 일을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아저씨는 고마워했다. 아저씨가 할 수 있는 일은 온종일 누워서 라디오를 듣는 일이었다. 할머니도 온종일 아저씨 시중을 드느라 외출을 할 수도 없었다.


아저씨는 라디오를 통해서만 세상에 대해서 듣고 아는 것이었다. 날씨, 사건 사고 등 세상살이를 라디오로 알 수 있었다. 내가 미처 접하지 못한 소식들도 아저씨를 통해서 듣고 알 때도 많았다.



더운 여름에 방 안에서 얼마나 답답할까 생각하며 들린다. 아저씨는 남들은 땀 흘리며 고생하는데 자기는 이렇게 시원하게 선풍기 바람 앞에서 가만히 누워서 지내니 미안할 정도로 감사하다고 했다.

추운 겨울에도 마찬가지였다. 남들은 찬바람 맞으며 출퇴근하는데 자기는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서 지내니 죄책감이 들 정도로 감사하다고 했다. 비록 몸을 직접 움직이지 못 하지만 아저씨의 생각만큼은 제대로 움직이고 참 반듯했다. 바르고 건전했다.

여기저기 종교단체에서 도움의 손길을 주고자 했지만 아저씨는 전도를 목적으로 동정을 받는 것을 부담스러워하셔서 거절하셨다. 남에게 필요 이상으로 신세 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깔끔한 성격이셨다. 그 내면의 당당함이 나에게도 부담을 덜어주었다.



바빠서 몇 주간 찾아가지 못했다. 한 달여 만에 아저씨를 찾아간 어느 날이었다. 밖에는 연둣빛 신록과 산수유, 개나리 벚꽃이 릴레이를 하며 피고 지고 있는데 온종일 집에 누워만 지내는 아저씨가 말은 하지 않아도 얼마나 서운해할까 미안했다. 가는 길에 아파트에서 개나리 몇 가지를 꺾어서 가져갔다. 지금 한창 피고 있다면서 ‘봄의 선물’이라고 내밀었다.



아저씨와 할머니의 얼굴이 개나리꽃보다 더 환하게 웃음꽃으로 만발해 있었다. 내가 준 개나리 선물 때문인 줄 알았다.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아저씨도 보여줄 선물이 있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할머니가 서랍에서 뭔가를 꺼내서 아저씨에게 주었다. 무슨 증서로 보였다. 나라에서 더 큰 혜택을 받게 되었나 보다 짐작했다. 아저씨가 보여준 것은 나를 부끄럽게 하고 놀라게 했다. 그것은 장기기증 증서였다.



아저씨가 신이 나서 설명하셨다. 이제 할머니도 90이 넘었고 자기 나이도 60이 넘었는데 자기가 살아온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장애인이라는 것 때문에 여러 사람들로부터 늘 사랑을 받기만 하니 빚진 삶이었다고 했다. 자기 삶이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자기도 세상에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아저씨는 대학병원에 신청을 해서 자기 몸에서 남에게 줄 수 있는 건강한 장기를 검사를 했다.



평생 공부를 하지 않아서 시력이 2.0으로 너무 좋았다며 껄껄 웃으셨다. 사지는 못 움직이지만 신장, 간 등 남에게 줄 수 있는 것은 건강했단다. 아저씨는 건강한 장기들은 자기 생명이 끝남과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 기증하겠다는 서약을 하고 증서로 받아왔다는 것이다. 대단한 일이 아니라,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밖에 없었다고 했다.



아저씨는 원래도 늘 긍정적이셨지만 그 일이 있고 나서야 정말 행복해하셨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는 뿌듯함과 편안함이 느껴졌다. 자신의 눈이나 장기로 누군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 기쁘고 행복할 수가 없다고 했다. 죽음도 두렵지 않다고 했다. 지금 하늘나라에 간다고 해도 여한이 없다고 했다. 아저씨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이제야 정말 행복하다고 하셨다.

얼마 전 할머니는 하늘나라로 가시고 지금 아저씨는 요양원에서 생활하고 계신다.



아저씨는 철학자도 아니고 종교지도자도 아니었지만 그 어떤 설교 못지않게 행복이 무엇인지를 전해주었다.

쾌락을 행복으로 착각하지는 않았는가. 많이 가지고 많이 받는 것을 행복으로 목말라하지는 않았는가. 그저 먹고 놀고 편하면 행복하리라 기대하지는 않았는가.


행복의 모습도 보여주었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겉모습에 연연하지 않았다. 무수한 사람들의 백안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만의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항상 감사의 잔잔한 기쁨이 있었다.

누구나 행복할 수 있다는 것도 보여 주었다. 설령 몸이 건강하지 못해도…….


몸은 편한데 행복하지 않다는 친구에게도 허전한 마음을 달래줄 위로가 필요한 것 같았다.



더위가 물러간다는 처서가 지나니 아침저녁 바람 끝이 서늘하다. 이 가을, 우리 모두 잔잔한 기쁨이 스며있는 행복의 열매를 거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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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버 이미지와 이미지 : https : // pixabay. 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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