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90세 천사 ~~
올해 90세인 친정엄마가 나에게 한 말이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길 막히기 전에 미리 친정에 왔다 가는 나에게 친정엄마가 몇 번이고 되풀이한 말이다. 멀리 안동까지, 왕복 10시간의 피로가 싹 날아갔다.
퇴직하고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었다. 직장 생활할 때는 자주 들었던 말이다. 그때는 무심코 들었던 말이다. 이제 그 말 한마디가 새삼스럽게 들렸다. 내 시간의 소중함을 알아주는 것이 그렇게 고맙게 들렸다. 퇴직을 했다고 할 일이 없어진 것이 아니다. 할 일이 바뀌었을 뿐이다. 시간이라는 틀에 채워지는 내용이 달라졌을 뿐이었다. 여전히 내 삶은 진행 중이다. 역시 친정엄마는 딸의 일상을 다 꿰고 있으니 내가 여전히 바쁘다는 것을 훤히 짐작하며 알고 있었나 보다.
사실 평소에 얼마나 자주 오는 것도 아니고 겨우 명절이나 생일에 찾아오는 딸인데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내서 오는 것이 당연하다고만 생각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한 수 더 떠서, 이제 직장에 매인 몸도 아닌데 뭐가 그리 바빠서 자주 오지 않느냐고 서운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들 할 말이 없다. 늘 마음 한 구석에, 나이 들어서 혼자 생활하는 엄마에 대한 죄책감이 있으니까 말이다.
엄마는 오롯이 혼자서,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보내기에 내 시간의 소중함까지 알아줄까!
엄마는 절대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고 애를 쓰신다.
친정엄마는 피곤해도 낮에는 잠시도 늘어져 눕지 않는다. 그래야 밤에 깊은 잠을 잔다고 했다. 정말 엄마는 밤에 도중에 깨지도 않고 아주 단잠을 자는 듯했다.
심심하다고 낮에 마냥 TV를 틀지도 않는다. 낮에는 할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엄마가 보고 싶은 프로그램은 일과를 마치고 저녁때 쉴 겸해서 보는 것이라고 했다. 이웃집에 가서 시간을 보내지도 않는다. 엄마 시간도 낭비고 남의 시간을 뺏는 것이란다. 공원을 산책하고 나서도 공원 정자에서 조금 쉬었다가 집으로 오신다. 정자에 모인 할머니들이 권하는 윷놀이를 하지 않는다. 나중에 사소한 것으로 말싸움으로 끝날 때가 많다는 것이다.
요만큼의 건강이라도 남아 있을 때에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죄를 짓는 것 같다고 했다.
나이가 들어도 시간을 의미 있게 쓰려고 하는 엄마였다.
다행히 친정엄마는 90 연세에도 아직 혼자 손수 밥을 해 드시고 살림도 꾸려 가신다. 노인이라 어쩔 수 없이 체력도 고갈되었고 한쪽 귀도 잘 들리지 않는다. 그래도 엄마는 나이 들어서 오는 노화를 일단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시도 쉬지 않고 무리가 되지 않는 움직임을 계속하신다.
엄마의 주된 일과는 하루에 몇 번이고 시간만 나면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것이다. 보통 하루에 대여섯 번을 성경을 소리 내서 통독을 한다. 성경 통독이 끝날 때마다 가장 위에 맏이에서부터 막내 집까지 칠 남매와 손자 손녀들, 외손자, 외손녀들을 차례대로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를 한다. 근처 공원을 산책하고 성경통독과 기도를 반복하는 것이 낮의 일과이다.
엄마는 다른 사람의 시간도 소중하게 생각한다.
근처에 자녀가 셋이나 살고 있는데도 엄마는 되도록 자녀들 신세를 지지 않고 스스로 일을 처리하려 한다. 엄마도 모르게 돈이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허락할 수 없다며 세금 자동이체를 거부했다. 지금도 전기세 수도세 등을 계산해서 직접 은행 가서 낸다. 자녀들이 시장을 봐준다고 해도 직접 보고 골라 사는 재미가 있다며 대형마트보다는 직접 재래시장을 돌며 장을 본다. 단골 상인들과 정을 나누고 소통도 하며 장을 본다. 나는 얼마나 할 말이 많아서라기보다 몸이 어떤가 해서 전화는 자주 한다. 목소리만 들어봐도 어느 정도 몸 상태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그날 일과를 주로 이야기하신다.
항상 이렇게라도 움직이며 살 수 있음을 감사하며 전화를 마무리한다.
자녀가 부모를 위해 쓰는 시간을 당연하다고만 생각지 않고, 소중한 시간을 내주는 것을 알아주고 고마워하는 엄마다. 그런 엄마가 나 또한 참 고마웠다.
“ 이제 집에서 뭐해?”
“ 집에서 뭘 하길래 그리 바빠? ”
퇴직 후에 자주 듣는 말이다. 상황을 일일이 설명할 수도 없는 질문이다.
직장에 나가던 시간이 텅 비어 있고 모두 남는 시간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심지어 집에 있는 사람은 갑자기 전화해도 부르면 달려 나올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 때도 있다.
물론 퇴직을 하고 나니 가장 큰 변화가 시간을 자의로 조정하며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시간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사실 모든 퇴직자가 얼마나 바라던 바인가. 뿐만 아니다. 그동안 하고 싶어도 참고 미뤄두었던 일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오죽했으면 퇴직을 하기 전에 하고 싶은 일들 목록을 미리 만들어보고, 그 일을 할 수 있는 자유의 몸이 된다는 것에 제대를 기다리는 군인처럼 가슴 설렜다.
퇴직을 하고 보니 직장 생활하던 시간을 통째로 나만을 위해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삶이라는 것이 참 잡다하고 사소한 일의 연속이었다. 집에 있다고 해서 절대 노는 것이 아니었다. 왜 사람들은 직장에 나가지 않고 집에 있으면 시간이 많고 논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요즈음 사람들은 누구나 다 나름대로의 생활이 바쁘다.
시간!
그것은 각자의 생활이다. 각자의 삶이다. 각자의 생명이다.
하루 24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공평하게 주어진 선물이다. 집에 있든, 직장에 있든 하루 24시간은 각자에게는 다 소중한 삶인 것이다. 집에 있는 사람의 시간이라고 해서 절대 함부로 할애해서 써도 되는 값싼 시간이 아니었다.
“ 바쁜데 시간 내서 와줘서 고맙다.”라는 친정엄마의 말처럼 누가 되었든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내준 것에 대해 당연히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이 주체가 되어서 선택하며 시간을 쓸 때는 자유를 느낀다. 바쁘고 힘들어도 삶의 의미와 만족감을 느낀다. 별 것 아니라도 자기 시간을 당연하게 할애하고 강요당할 때에 우리가 분노할 수밖에 없는 것도 시간이라는 것이 삶이기 때문인 것 같다.
친정엄마를 만나러 가고 오는 시간!
그냥 도착만을 기다리며 갔다면 내가 주체가 아니기에 시간낭비이고 지루했을 것이다.
그 시간도 내가 주체가 되니 즐거웠다.
나는 내 시간의 주체가 되기 위해 기차여행을 좋아한다.
짧으면서도 의미심장해서 내가 여행할 때 자주 읽는 ≪어린 왕자≫도 다시 읽었다.
핸드폰에 올라온 브런치 작가들의 글도 읽고 흔들리는 손가락으로 댓글도 달았다. 답장이 오고 가니 그 시간도 소통의 시간이었다. 자꾸 밀리고 있던 영어회화도 몇 회 만회했다. 차창 밖 가을 하늘을 보며 찬송가를 들으니 잊고 있던 하나님도 만났다. 그러다 머리가 무거워지면 7080 통기타 노래를 들으며 끝없이 이어지는 초록을 따라 산천초목 속을 달리니 그야말로 그 시간도 내 시간이고 지루할 사이도 없이 오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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