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묵의 미술읽기
인간, 지구를 떠나 우주로 향하다
2019년 우주 탐사선 보이저 2호에서 전해 온 소식은 태양권이 숨 쉬는 폐를 닮았다는 퍽 낭만적인 소식이다. 이 태양계 내에 지구 이외의 다른 곳에 어떤 생명체가 살고 있을까 하는 호기심과, 지구 바깥의 세상은 어떻게 생겼을까에 대한 물음표가 드넓은 우주로 우리의 시선을 향하게 하였다. 그리고 1969년, 지구인이 지구를 떠나 우주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 많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영감을 전해 주었다. 그리고 이제 대한 흥분과 호기심은 시각 실험을 하는 옵아트와 같은 장르로 미술이 발전하였다. 그 중심에는 파리 비엔날레에 선보여 큰 호응을 얻었던 GRAV와 B.M. P. T 그룹이 있었으며 그룹에서 활동했던 대표적인 미술가들은 한국에도 많이 알려진 다니엘 뷔랑과 프랑소와 모렐리 등이 있다. 그리고 당시 이러한 고민을 하고 있던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한국의 미술가도 있었다. 한묵은 1961년, 홍익대학교 교수라는 안정적인 자리에서 그만두고 47살의 다소 늦은 나이에 프랑스로 향하였다. 프랑스에서 그는 1년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프랑스 미술계를 둘러보기만 하였다. 한국에서 앵포르멜 경향이 보이는 추상 미술을 주로 하던 그는 도불 당시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이성자, 이응노, 남관이 기하학적 추상으로 화단의 주목을 받고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변화하였다. 한묵은 나아가 인간이 달에 착륙한 역사적인 사건을 목격하며 자신의 작품의 소재를 시각을 넘어선 시간과 공간으로 확장시켰으며, 이러한 관심사와 당시 유행하던 화풍이 더하여 한묵만의 새로운 그림이 탄생하였다.
아틀리에 17 (Atelier 17)의 한묵
한묵이 활동하던 당시의 프랑스에서 판화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었다. GRAV 그룹은 그들의 작품을 서명 없이 판화 혹은 오브제로 제작하여 저렴한 가격에 대량 판매를 시도하는 전위적인 활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나아가 프랑스의 슈퍼마켓에서도 판화 작품을 판매하기 시작하였다. 이처럼 판화는 새로운 매체로 조명을 받으며 대중들의 관심을 이끌고 있었다. 따라서, 파리에는 여러 판화 공방이 존재하였는데, 그중 아틀리에 17은 영국 출신의 에콜드파리의 미술가 윌리엄 헤이터가 1933년에 설립한 공방으로 그가 개발한 한판에 여러 색상을 올린 뒤 찍어내는 단판 다색 판화를 가르쳤다. 그리고 헤이터는 피카소, 칼더, 미로, 앙드레 브르통, 아메데 오장팡, 마르셀 뒤샹, 몬드리안 등과 같은 미술가들과 공방에서 교류하며 열린 분위기로 운영되었으며, 공방의 공간 역시 파리에서 나아가 뉴욕에서도 활동을 하였다. 한묵은 1968년부터 아틀리에 17을 방문하기 시작하였으며 그곳에서 새로운 기술 습득 이외에도 여러 미술가들을 만나 활동을 시작하였다. 헤이터는 다양한 매체를 혼합 사용하는 것을 시도하였으며 따라서 다양한 매체에 대한 실험이 지속되는 공방이었다. 아틀리에 17에서는 판화 중에서도 주로 금속을 소재로 한 판화를 많이 다루었으며 한묵은 이곳에서 판화는 물론 회화 작업에서 돋보이는 나선형의 조형을 그리기 위한 자나 컴퍼스 사용도 이곳에서 처음 시도하였다. 프랑스에 도착하여 3년간 신작을 선보이지 못한 한묵은 아틀리에 17을 드나들며 새로운 매체를 수학한 것은 물론, 인간이 달에 착륙하던 그 순간 프랑스라는 타지에서 자신이 느꼈던 감정과 고민들을 그의 시각 언어로 본격적으로 풀어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멕시코, 스웨덴, 브라질 등 다양한 나라에서 그의 작품을 선보였다.
새로운 차원으로의 여행
한묵의 우주에 대한 관심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소리와 생명으로 표현 범위를 확장할 수 있게 해 주었다. 한묵은 인공적인 것의 활력을 강조하였으며 그것이 현대의 시대감각이라고 언급했듯이 과학에 호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1970년대 아틀리에 17에서 발현되는 그의 조형적 특징인 나선과 방사형, 동심과 같은 과학에서 유래한 기호들을 작품에 과감하게 도입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타지에서 본 달에 도착한 우주인의 모습은 본인이 처한 상황 상 보다 깊은 감화를 받는 내적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기호는 한묵의 회화적 언어가 되어 화면을 구성하였으며 한묵이 생각하는 우주의 모습이 되어 역동적으로 펼쳐졌다. 계단식으로 이어가는 나선형들과 회오리처럼 지속되는 패턴, 균형을 이루며 확장되는 모습에서 다양한 역동성을 체현하게 한다. 또한 이러한 조형 요소들은 생명력이 느껴지고 있으며 태엽 혹은 모터가 작동하는 듯하며 그 소리 역시 들리는 듯하다. 그의 조형 요소들은 자연물과 인공물의 어느 경계에선가 이루어지고 있는 운동과 같으며 오늘을 살고 있는 이 순간의 어느 차원에서 실제 이러한 운동이 일어나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가 활용하고 있는 색상 역시 마찬가지이다. 과감한 보색의 활용과 색조 대비는 그림의 역동성을 더하고 있다. 또한 색조에서 느껴지는 동양적인 색채는 그의 그림의 정체성을 확인시켜 준다. 그는 이러한 조형을 통하여 현실의 감각을 직시하고자 하였으며 시대의 형상을 구축하고자 하였다.
한묵의 기하학적 추상은 미술사에서도 흥미로운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그가 추구한 기하학적 추상은 한국에서 많은 미술가들이 그리지 않았고, 당시 한국에서는 추상 미술 이후의 민중 미술 등을 비롯하여 다양한 기법의 미술들이 성행하고 있어서 옵아트라는 화파를 형성하지는 못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회화에서 보이는 조형적 실험은 다소 특별하게 다가온다. 묵묵하게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한묵이 전개한 한국적 옵아트는 여전히 열심히 움직이며 펼쳐지고 있는 듯한 형상으로, 오늘날 반도체와 기술이 강점이 된 한국에 특별한 미술가로 기억될 수 있다.
*이 글은 월간 비자트와 중기 이코노미에 기고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