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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현 Sep 28. 2020

K-블루의 풍경

오지호의 미술읽기

남향집, 80x65cm, oil on canvas, 1939,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파란색에 대하여

  봄철만 되면 황사로 뒤덮인 누런 하늘 덕에 여름이 오면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파란 하늘이 감사하게 된다. 하늘의 파란색은 정말 우리 삶에서 다양한 영감을 주는 색상이다. 건강하게 하루를 살기 위한 맑은 공기와 깨끗한 자연의 지표이기도 하며 건강한 정신인 신뢰를 상징하는 색상이기도 하다. 파란색이 전하는 다양하고 긍정적인 이미지 덕택에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색상으로 뽑히기도 하였다. 이것은 가장 우리의 일상에 파란색이 익숙하고 친근한 색상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국 근현대 미술에서는 유화 물감의 도입되며 이전 수묵담채의 기법에서와는 다르게 새파란 색상이 화폭에 등장하였다. 그리고 이를 가장 잘 활용한 미술가 중 하나는 오지호이다. 오지호의 그림에서 파란색은 한국의 풍경에 잘 어울리는 청명함으로 빛이 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그의 캔버스를 물들인 그 파란색에 대하여 깊은 인상을 남긴다.



한국의 자연을 탐구하다

  오지호는 파란색 중에서도 채도가 높은 파란색을 잘 활용하였다. 그리고 그의 높은 파란색만큼이나 강직한 성품을 가지고 작품 활동을 전개한 미술가 중 하나이다. 오지호는 1905년 전남 화순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의 가르침인 넓고 새로운 세계로 날기 위하여 휘문고보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그림 유학을 떠났다. 그는 가와바다 화학교와 동경 미술학교를 거쳤으며 그곳에서 그의 수승인 후지시마 타케지를 만났다. 후지시마 타케지는 무생물의 대상에도 감정을 이입하여 대상 속의 생명력을 그림에 표현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는 조선 학생들도 일본 학생들과 편견 없이 대했기에 오지호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조선 유학생들이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 후지시마 타케지의 철학은 당시 서구 미술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인상주의 화파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후지시마는 1913년 조선에 관광을 온 이후 감상문을 발표하였는데, 그가 인상적으로 본 것은 조선의 맑고 명랑한 빛에 의한 풍경이었다. 그는 빛을 통하여 화려한 원색의 풍경을 선보이게 해 주었으며 순수한 감각에 도취되어 바라보았던 것이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1935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심사위원으로 왔을 때도 변하지 않았다. 오지호에게 그의 화풍의 영향은 마지막까지 지속되었다. 오지호와 일본 유학을 함께한 김주경 역시 오지호에게 큰 영향을 준 미술가이다. 김주경은 1932년 고려미술원에서 만나 함께 유학길에 올랐으며 귀국한 이후에도 만주에 함께 스케치 여행을 가기도 하고, 늘 함께 풍경을 그리거나 함께 전시를 하고, 또 미술교사의 일자리를 소개해 주는 등 20여 년간 함께한 미술 동지였다. 김주경 역시 그의 예술세계에서 자연에 대한 미적 탐구는 주요한 주제였었다.

   오지호는 미술 활동 이외에도 빨치산 활동을 비롯하여 1969년 국문학자들과 한국어문교육연구회에서 국한문을 지속해서 혼용하여 사용하자고 주장하는 활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광주에 미술 연구회를 조직하여 활발한 활동을 보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활동이 그의 미술에 적극적으로 반영되지는 않았다는 것은 그의 미술에서 아쉬운 점으로 남아있다. 오지호는 늘 미술 교사 시절 학생들에게 이야기하였던 미美는 진眞이고 진은 미라는 것을 그의 평생 삶에 실천하려고 하였으며 마지막까지 지속된 오지호가 그린 우리의 생생하고 아름다운 풍경이 그 증인이다.     


추경, 32x46cm, oil on canvas, 1982,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올곧은 생명의 추구

  오지호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미술가로 광주로 낙향하여 초가집을 짓고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하는 삶을 통하여 마지막까지 그의 사상을 실천하였다. 급진적인 그의 사상이 미술에 적극적으로 반영되지는 않았지만, 그의 건강한 삶의 태도는 작품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그의 미술의 태도는 배우는 시작 지점에서 일본의 영향과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늘 자연의 아름다움을 직접 느끼고 삶에서 몸소 체현하는 물아일체적인 삶의 태도로 한국의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추구한 것은 본받을 만한 태도이다. 그가 자연에 천착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자연을 경험하는 것은 곧 생명에 대한 체험이기 때문이었다. 국한문 혼용을 지속하자는 그의 활동은 변화하기보다 과거에서 기인한 현상의 유지 및 발전을 위한 그의 태도와 같다. 사실상 한문에 다각도로 기대어 국문이 활용되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날 언어는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과거에 비하여 적어진 한문의 빈자리를 영문으로 채우고 있고, 진중한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지만, 여전히 한문이 혼용되며 국어의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고 또, 다방면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은 그의 노력이 차지하는 것이 크다. 오지호의 풍경에서 느낄 수 있는 자연도 사실 이런 존재이다. 자연 역시 변화를 거듭하며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으며 지켜야 하는 존재임과 동시에 개발의 물결에서는 보호하기 힘든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늘 보수적인 입장에서 대하는 것이 자연을 위한 것이다.


오지호의 파란색

   오지호의 미술은 한국에 서양화가 유입되던 시기에 선보인 미술로 선구자적인 입장에 있다. 그가 한 평생 자연을 예찬하며 청명한 파란색을 활용하여 그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은 분명 한국의 미술로 가치가 있으며, 그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오지호는 그의 글을 통하여 그의 회화론은 생명이 충만한 자연의 이상적인 모습을 구현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오지호는 자연의 형상과 색을 통하여 생생하게 그 모습을 캔버스에 기록한 것이다. 그리고 그의 파란색은 그의 생의 마지막으로 갈수록 밝고 순수한 색을 지니며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그 오지호의 그림에 등장하는 맑고 새파란 색의 빛은 도심에서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하지만 그의 강직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성품에서 비롯된 풍경화를 통하여 우리의 자연이 주었던 아름다움을 기억하고 또 그 자연은 우리가 지켜야 하는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한 것이다.     


꽃-델피니움, 60.5x42.3cm, oil on canvas, 1981,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추광, 54x61cm, oil on canvas, 1960,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이 글은 월간 비자트와 중기이코노미에 기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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