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
소위
고층 아파트 피뢰침 꼭대기에 서서 하늘을 본다.
신이 무섭지 않은 인간들이
층층이 탑을 쌓은 곳
그의 발이 아슬아슬하게 피뢰침 끝에 닿은 채 부들부들 떨고 있다.
손으로 하늘을 떠받치지도 못하고
발로 땅을 디디지도 못하면서
인간들은 신을 무참히 비웃었다.
수많은 피뢰침들을 세워 놓고
부끄러움과 두려움 마저 몰래 숨겨 놓았다.
날카로운 피뢰침이 그의 발을 뚫고 지나간다.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핏물이 피뢰침을 타고 발밑으로 흘러내린다.
살고자 하는 욕망이 서커스장 호랑이들의 불붙은 수염 위로 번뜩이며 타오른다.
서커스가 끝나도
관객이 떠나가도
곡예사는 피뢰침 꼭대기에서 끝내 내려오지 못한다.
죄지은 인간들이 탑을 쌓고 사는 곳
그 위에서 마지막 순수가 죽어간다.
죄를 숨기는 인간들을 대신해
속죄의 피를 흘린다.
고층 아파트 피뢰침 꼭대기에 서서 땅을 본다.
신을 사랑하지 않는 인간들이
층층이 탑을 쌓은 곳
그의 눈이 어린 소년의 새까만 눈에 닿은 채 부들부들 떨고 있다.
마지막 숨을 토하며 소년의 눈 속으로 추락한다.
소년의 눈은 그가 되고 그의 심장은 소년이 되어 멎는다
소년은 마침내 또 다른 제물이 되기로 정해진다.
신은 용서한 적이 없다.
수많은 피뢰침을 세워놓고 잘난 척하는 인간들을
신의 분노는 끝나지 않는다.
거짓과 위선의 피뢰침을 무너뜨리고
두려움과 부끄러움으로 바짝 엎드려 빌기까지는
오늘도 까만 눈의 소년이 끌려간다
죄를 숨긴 인간들이 탑을 쌓고 사는 이곳
맨꼭대기로.
출처 Pixabay
시에 부쳐
하늘을 찌를 듯이 높게 솟아 있는 고층 아파트들
그보다 높이 다닥다닥 세워놓은 피뢰침들을 본 날이었습니다.
문득 신의 분노를 피하려는 인간의 두려움, 죄의식을 목격한 것만 같아 부끄러웠습니다.
그럼에도 신의 경지를 넘어서고자 하는 인간의 끝없는 욕심에 환멸이 느껴졌습니다.
며칠 사이 무차별적인 폭우가 쏟아졌고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어쩌면 인간들은 신에게 끊임없이 분노를 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무고한 누군가의 희생이 모두의 죄를 대신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하니 두려웠습니다.
이제라도 인간의 탐욕과 위선을 버리고
땅으로 바짝 엎드려 신께 빌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미신적인 두려움이 눈앞을 가렸습니다.
그런 불경한 마음을 담은 시입니다.
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