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슬픔에 대하여 1
비 오는 날의 '슬픔'
사소한 슬픔에 대하여 1
소위
비가 내린다.
우산을 받고 걷는다.
빗줄기가 거세지자 물이 조심성 없이 함부로 내게 튄다.
빗물과 흙탕물이 뒤엉켜 바지에 묻는다.
물이 조금씩 바지를 파고들며 살갗에 닿는다.
바지에 묻은 점들은 어느새 하나로 뭉쳐진다.
물에 젖은 바지가 두 다리에 거침없이 철썩 달라붙는다.
무릎까지 차츰차츰 물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어느새 하반신 전체가 물에 빠진다.
걸음이 무거워진다.
물에 빠져 휘적거리는 사람처럼 비틀거린다.
죽음을 향해 스스로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이 된다.
비는 계속해서 내린다.
몸은 계속해서 잠긴다.
눈물이 흐른다.
뭐라고 딱히 명명할 수 없기에 '슬픔'이란 상투적인 이름을 붙여본다.
그리고 나의 '슬픔'을 차갑게 응시한다.
'슬픔'의 이유를 찾아내야만 하는 조사관처럼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슬픈지 묻는다.
그것이 없다면....
나의 슬픔은 부끄럽다.
나의 슬픔은 사소하다.
'슬픔' 마저 슬퍼할 수 없는 내가 미치도록 슬프다.
빗물과 흙탕물이 가슴까지 차오른다.
아직은 뜨겁고 강렬하고 매서운 심장이 젖어드는 물을 말려버린다.
'슬픔'의 접근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다.
살아 있다는 것의
살아간다는 것의
중차대한 의미 앞에서 나의 '슬픔'은 말라붙고 사소해진다.
아무도 '슬픔'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 세상에서
모두가 '슬픔'을 안은 채 부끄러워하고 있다.
나는 조용히 집으로 돌아와 젖은 바지를 벗어 말리고
아무 일 없는 듯 '슬픔'을 몰래 숨겨 놓는다.
사소하고도 부끄러운 나의 '슬픔'을
* 이 시는 '나의 사소한 슬픔'이란 영화의 제목에서 영감을 받았으나 영화의 내용과는 전혀 무관합니다.
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