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위 Jul 29. 2023

인생은 '가지 않은 길'의 연속이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가지 않은 길


로버트 프로스트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몸이 하나니 두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한참을 서서

낮은 수풀로 꺾여 내려가는 한쪽 길을

멀리 끝까지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똑같이 아름답고,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 생각했지요

풀이 무성하고 발길을 부르는 듯했으니까요

그 길도 걷다 보면 지나간 자취가

두 길을 거의 같도록 하겠지만요


그날 아침 두 길은 똑같이 놓여 있었고

낙엽 위로는 아무런 발자국도 없었습니다

아, 나는 한쪽 길은 훗날을 위해 남겨 놓았습니다

길이란 이어져 있어 계속 가야만 한다는 걸 알기에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거라 여기면서요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출처  Pixabay


로버트 프로스트는 미국적인 삶과 정서를 잘 표현해 낸 시인으로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중 한 명이다. 세계의 명시로 널리 알려져 있는 '가지 않은 길'은 직업도 변변히 없고 시인으로서 인정받지도 못한 채 병약하기까지 했던 20대 중반의 프로스트가 지은 시이다. 실제로 프로스트의 집 앞에는 숲으로 이어지는 두 갈래의 길이 있었다고 한다. 젊은 날의 프로스트는 그 길을 바라보며 자신의 인생에 대해 고뇌하고 사색하며 이 시를 지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인생을 종종 길에 비유하곤 한다. 시간이 쉬지 않고 흐르듯 우리 앞에 놓인 길도 끝없이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시간의 너머를 명확히 알 수 없듯이, 이 길의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도 알 수가 없다. 삶은 안개 자욱한 새벽녘의 숲처럼 뿌옇고 불투명하기만 하다. 걷다가 갑작스레 마주치는 두 갈래 길 앞에서 때로는 어린아이처럼 망설이고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선택을 해왔으며 그 결과 '지금 여기'에 있다.


지금 이곳에 있는 나는 스스로 원하던 '나'인가? 한 번 흘러간 시간을 거스를 수 없듯, 한 번 접어든 길도 되돌릴 수는 없다. 마음 한쪽에 가지 않은 길을 묻어둔 채 자물쇠로 꼭 잠그고 다시는 꺼내 보지 말자 다짐하며 가던 길을 묵묵히 걸어 나갈 수밖에 없다. '만약 그때 ~라면 ~했을까'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아무리 궁리해도 풀 수 없었던 고난도의 수학 문제처럼 신이 내게 답안지를 내밀어주지 않는 이상은 도무지 알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이 '나의 최선의 길'이었다고 생각하려 한다.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많이 듣던 말이 있다. '내가 네 아버지와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너를 낳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살지는 않았을 텐데.' 어린 나는 이런 후회와 한탄의 말을 들을 때마다 '나'가 태어나기 이전, 아니면 '아버지'를 만나기 이전으로 시계를 되돌려 놓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었다. 어머니를 옛날 사진 속 어여쁜 아가씨 시절로 되돌려 줄 수 있다면, 아버지가 아닌 다른 남자와 결혼하여 지금보다 행복한 인생을 살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 안타까웠다. 감수성이 바늘 끝처럼 예민하고 날카로웠던 사춘기에는 '나'라는 존재만 없어진다면 정말로 어머니의 삶은 어머니가 원하는 대로 될지도 모른다는 극단적이고 어리석은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시간은 흘렀고 어느새 나 역시 그때의 어머니만큼 나이가 들었다. 어른이 되고 보니, 어머니의 한탄은 이미 놓쳐버린 기차를, 쏟아진 우유를, 깨어진 거울을 하염없이 붙들고 몸부림치는 공허한 울부짖음일 뿐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생을 뒷걸음질 치듯 거꾸로 걸어가는 허무하고 부질없으며 소모적인 일이었다. 내가 가지 않았던 길을 자꾸만 꺼내어 보는 사람은 일생을 불행하게 살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어머니는 지금도 '만약 ~라면'의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하고 산다. 숱한 후회와 미련들이 행복한 지금 이 순간순간들을 망쳐 버리는 것만 같아 이따금 숨이 막히지만 평생 동안 반복되어 온 사고의 습관을 이제 와서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출처  Pixabay


생에 대하여 딴 맘을 품고 산다는 것은 평생을 두 개의 마음, 두 개의 영혼, 두 개의 육신으로 쪼개져서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야말로 반쪽짜리 인생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닐까? 안 그래도 짧고 가벼운 인생을 절반이나 허물어 냈으니 참으로 허허롭고 안쓰럽기 그지 없어지는 것이다. 내가 가지 않았던 길은 판도라의 상자에 가둬 영원히 봉인해 버릴 것이다. 앞으로 내 앞에 펼쳐질 '가지 않은 길'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슴 설레고 벅차기 때문이다. 지나온 길과 가지 않았던 길의 비교 따위는 하지 않으려 한다. 프로스트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선택하였고 그것이 자신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했다. 어떤 이는 이미 수많은 발자국이 찍혀 있는 안전하고 편안해 보이는 길을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 옳고 그르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어떤 선택을 하였든 그 선택으로 인하여 지금의 나는 '여기 이렇게' 달라져 있을 뿐이니까.


여기 이렇게 있는 나는 완전하진 않더라도 온전한 존재이며, 이 삶이 진짜 나의 삶일 뿐이다. 앞으로 내가 선택한 길에서 때로는 가시덤불에 찔리고, 진흙 구덩이에 빠지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할 것이다.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미워할 만큼 큰 상처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가지 않은 길 '을 가야만 한다. 그 길이 이미 다른 이가 갔던 길이든 아니든, 나에겐 이 생에서 처음 만나는 '가지 않은 길'인 것이다. '가지 않은 미지의 길'을 걸어가는 것은 인생이라는 짐을 등에 진 자들이 겪어야 할 숙명과도 같다. 또 다른 갈래 길 앞에 서게 되는  날, 두 주먹에 힘을 주고 용기 있게 걸어 나가 보려 한다.


누구도 '가지 않은 그 길'을 향해·······.

'나만의 길'을 향해······.


출처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어느 날 우리 앞에 죽음이 방문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