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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위 Jul 15. 2023

어느 날 우리 앞에 죽음이 방문했다

허공 한줌이라도 너를 움켜쥐겠다

허공 한줌


나희덕


이런 얘기를 들었어. 엄마가 깜박 잠이 든 사이 아기는 어떻게 올라갔는지 난간 위에서 놀고 있었대. 난간 밖은 허공이었지. 잠에서 깨어난 엄마는 난간의 아기를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이름을 부르려해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어. 아가,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 엄마는 숨을 죽이며 아기에게로 한걸음 한걸음 다가갔어. 그러고는 온몸의 힘을 모아 아기를 끌어안았어. 그런데 아기를 향해 내뻗은 두 손에 잡힌 것은 허공 한줌뿐이었지. 순간 엄마는 숨이 그만 멎어버렸어. 다행히도 아기는 난간 이쪽으로 굴러 떨어졌지. 아기가 울자 죽은 엄마는 꿈에서 깬 듯 아기를 안고 병원으로 달렸어. 아기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는 울음을 그치고 잠이 들었어. 죽은 엄마는 아기를 안고 집으로 돌아와 아랫목에 뉘었어. 아기를 토닥거리면서 곁에 누운 엄마는 그후로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지. 죽은 엄마는 그제서야 마음놓고 죽을 수 있었던 거야.


이건 그냥 만들어 낸 얘기가 아닐지 몰라. 버스를 타고 돌아오면서 나는 비어 있는 손바닥을 가만히 내려다보았어. 텅 비어 있을 때에도 그것은 꽉 차 있곤 했지. 수없이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그날 밤 참으로 많은 걸 놓아 주었어. 허공 한줌까지도 허공에 돌려주려는 듯 말야.


출처  Pixabay


신형철의 '인생의 역사'를 읽던 중 나희덕의 '허공 한줌'이란 시를 만났다. 이 시를 읽고 나는 그대로 멈추어 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하루 이틀이 지났다. 비가 사정없이 내리 퍼붓는 오늘에야 나는 가만히 자리에 앉아서 엎어 놓은 책의 그 페이지를 다시 펼쳤다. 해야 할 말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찾는데 시간이 걸렸다. 시를 읽으면서 너무나 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쳤다. 신형철의 시에 대한 이야기는 반은 와닿았고 반은 겉돌았는데 아마도 내 머릿속에 자리한 상념들이 어지럽게 나를 괴롭히고 있어서였을 것이다. 나희덕은 '움켜쥠'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이 시를 썼다고 한다. 허공조차도 손으로 움켜쥐려고 했던, 사랑에 대한 집착과 내려놓음에 대한 이야기를 말이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이 시의 1연에 붙들려 2연의 문턱에도 도달하지 못했다. 내겐 1연이 숙제였다.


아이가 2살 때인가? 우리는 오래된 주택의 2층 집에 월세를 살았다. 계단은 경사가 심했고 현관문으로 들어오는 바닥은 반들반들해서 눈이나 비가 오는 날이면 미끄러져 넘어지기 일쑤였다. 아기를 안고 업고 다니는 내게 그 길은 너무나 위험해서 노상 조심조심 살얼음을 디디듯 걸어 다녔다. 하지만 그날은 비도 눈도 오지 않는 화창한 날이었다. 운명적인 사건은 늘 방심하는 순간 보란 듯이 뒤통수를 치며 일어난다. 햇빛이 쨍하게 내리쬐던 여름날 오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집에서 부엌일을 하고 있었고 남편은 2층 바닥을 청소하고 있었다. 그날따라 남편은 먼지가 켜켜이 앉은 바닥을 물로 청소하겠다고 소란스러웠고 아이는 물이 있으니 좋아하며 아빠를 따라 집 밖에서 놀고 있었다.


갑자기 남편의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놀란 나는 헐레벌떡 뛰쳐나갔다. 아빠는 아이를 안고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벌벌 떨면서 집안으로 들어왔다. 순간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지만 모든 것을 다 본 것만 같았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고 있었고 남편 역시 넋이 나가 울먹이고 있었다. 순간 그대로 숨이 멎었다. 숨이 멎는다는 느낌, 살아 있어도 죽어버린 것과 같은 느낌! 그 순간 우리 셋의 앞에는 분명히 죽음이 방문해 있었다.


나는 급히 119에 전화를 했다. 절규하듯 울부짖었다. '아이가 떨어졌어요. 아이가 떨어졌어요.' 우리는 옷도 거의 입지 않은 상태였다. 한여름 더위에 옷을 입는 둥 마는 둥 하고 일을 하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재난이라도 당한 사람들처럼 말도 안 되는 차림으로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남편의 증언에 따르면 아이는 2층에서 미끄러지면서 그 높고 울퉁불퉁한 계단을 한 번에 떨어져 내려갔는데 목이 뒤로 90도 넘게 꺾이면서 온몸이 데굴데굴 굴렀다는 것이다. 그 모습을 직접 목격한 남편은 아이가 무사할 리 없다는 두려움과 공포에 사시나무 떨듯 벌벌 떨었던 것이다. 누구라도 그렇게 추락하면 말도 못 하게 몸이 상할 것이기 때문에...


하지만 신기하게도 아이는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아주 멀쩡해졌다. 찰과상 하나 없었다.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지러지게 울었던 건 다쳐서가 아니라 단지 놀래서였다. 119 구급대원도 병원 의사도 아이들은 아직 뼈가 물러서 심한 충격에도 크게 다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우리 둘은 병원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버렸다.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는지 모른다. 그런 엄마, 아빠 곁을 아이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면서 돌아다녔다. 처음 와 보는 응급실이 신기한지 여기저기 구경하면서...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에는 이 일이 떠오르지조차 않았다. 며칠이 지난 지금에야 기억이 되살아났을 뿐이다. 나에게 그 사건은 다시 떠올리기조차 싫은 끔찍한 일로 각인되어 있다. 그래서인가? 잊고 살았나 보다. 다만  '순간 엄마는 숨이 그만 멎어버렸어.'라는 구절을 읽자, 그때의 감정이 생생히 되살아나 펄떡였고 숨쉬기 힘들 정도로 심장이 쿵쾅거렸다. 나는 격하게 휘몰아치는 감정을 감당하지 못해 그만 책장을 덮어버렸던 것이다.


이따금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거나 상상해 본다. 금기시되는 일이라도 저지르는 듯 두려움에 떨면서 조심스럽게 말이다. 부모님의 죽음, 남편의 죽음, 친구의 죽음 등 현재 곁에 있는 이들의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괴롭고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 생각의 줄을 틀어잡고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몇 걸음 앞으로 걸어 나가 본다. 결국 그들은 모두 남이다. 나란 사람의 생에서 죽은 이는 어떤 의미이며 그의 죽음으로 인해 내 인생의 변화는 어떤 것이 있을지를 머릿속으로 상상하거나 떠올리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며 어떤 경우엔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오직 단 한 사람. 아들에 대해서만은 그게 안 된다. 아들의 죽.. 이란 단어조차 꺼내들 수가 없으며, 그 순간 나는 '그만 숨이 멎어버릴 것 같은' 나 자신의 죽음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결단코 나는 아들의 죽음을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다. 그것은 생각의 차원을 넘어서는 일이다. 그저 나의 생명이 툭 하고 끊어지는 순간과 맞닿아 있을 뿐이다. 시 속의 '엄마'는 죽어서도 죽지 못했다. 아이가 무사히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죽음을 죽을 수 있었다. 그 말의 의미가 이렇게 절절히 와닿을 줄이야. 나는 움켜쥐고 있던 세상의 모든 것들을 내려놓을 수 있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도 마찬가지이다. 그게 누구이든 내 손안에 잡았다가 놓아줄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의 말처럼 허공을 허공으로 돌려보낼 수도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오직 아들에 대해서만은 움켜쥔 손을 놓아주기가 어렵다. 얼마나 어려우면 시 속의 '엄마'도 두 번 죽어서야 놓아줄 수 있었을까?


그 무더웠던 여름날 오후, 내 운명의 시계는 1도쯤 다른 방향으로 몸을 틀었고 죽음은 우리 집 문턱까지 찾아왔다가 연기처럼 조용히 사라져 버렸다. 생각해 보면 몸서리치게 끔찍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머리를 조아리고 가슴을 땅에 붙여 절을 해야할 만큼 감사한 일이다. 허공 한 줌이라도 움켜쥐려는 절박함, 죽어서도 놓아줄 수 없는 사랑의 절절함!  나는 내 사랑의 집착이 부끄럽지 않다. 시인처럼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밤새도록 내가 쥐고 있던 모든 것들을 놓아주리라. 하지만 마지막 단 한 번만은 손을 꽉 움켜쥘 것이다. 허공 한줌이라도 꽉 쥐어볼 것이다. 세상의 단 한 사람에게만은 그 움켜쥠을 허락해 달라고 신께 기도하면서....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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