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는 반성문 같다. 읽을 때마다 살면서 내가 하지 않은 죄들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된다. 그날 그때 나는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던가. 두려움 때문이었을까?분노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이기심이나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나는 조용히 침묵하고 넘어감으로써 나의 '어쩔 수 없음'을 다 표현한 것이라고 합리화하며 살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죄는 날카로운 갈고리가 되어서 사는 동안 내마음을 찍고 또 찍었다. 끝도 없이반복되는 한 장면 속에 갇혀서 오도 가도 못한 채 쩔쩔매는 형벌을 받아야만 했다. 누구에게나 그런 마음 아픈 순간들은 있을 것이다.
나는 늘 너무 늦은 연민으로 누군가의 슬픔을 통째로 놓쳐 버리고 후회했었다.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나의 진심은 결국 세 가지 간단한 말로 압축될 것이다.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이 세 마디 중 단 한마디를 전하지 못해나는 끝내 입을 다물었었다. 아버지와 나의 마지막 눈 맞춤은 돌아가시기 두 달 전 병원에서였다. 시술도 잘 끝났고 머지않아 퇴원할 거라고만 생각했기에 가벼운 인사말을 나누며 헤어졌었다. 그것이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기에, 다시는 아버지와 눈을 맞추고 대화를 나누지 못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우리의 이별은 그토록 시시할 수밖에 없었다. 의식이 없이 누워 있는 아버지 앞에서도 나는 도무지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아주저하다가 면회 시간이 끝나면 도망치듯돌아 나오곤 했었다. 아버지가 눈을 감던 마지막 순간에나는 '고맙다거나 사랑한다'는 말을했던가? 불과 4년 전 일이건만 정확히 기억나질 않는다. 귀는 마지막까지 열려 있다고 들었던 것을 떠올리면서 나는 아버지에게 중얼거리듯 마지막 인사를 건넸었다. 하지만 내가 그때 무슨 말을 했든지 간에 아버지는 이미 먼 길을 떠나버린뒤였을뿐이었다.
다른 이와의 마지막도 나는 종종 침묵으로 끝맺곤 했었다.변명을 하자면 그 순간이 진짜 마지막인지가 늘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음을 표현하거나 진실을 보여줄 기회가 더 있을 거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후 돌이켜보면마지막은언제나 그 순간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짙은 예감을동반했었다. 그 선명한 예감을 외면하고 모른 척했던것은 철저히나의 오만과 알량한자존심 때문일 때가 더 많았다.
영화 시네마천국에서 토토가 보았던 알프레도의 필름처럼 내 눈앞에는 수많은 장면들이 짜깁기되어 쉬지 않고 펼쳐진다. 영화에선 아름다운 남녀의 키스신이 나왔지만, 내게 떠오르는 장면들은 하지 않은 죄로 인해 가슴이 퍼렇게 멍들었던 생의 순간들이다. 그아이와의 마지막, 그와의 마지막, 그녀와의 마지막... 그 모든 마지막 장면들이 눈앞에연이어 나타나며무한반복된다. 위로할 시간을 놓친 슬픔, 표현할 기회를 놓친 사랑, 사과하지 않고 미룬 잘못 등 그 모든 하지 않고 남겨둔 일들이 나의 마음을 서늘하게 괴롭히곤 하는 것이다.
그럼 지금 이 순간부터라도 최선을 다해 나의 마음을 표현하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기차 시간에 한 발 늦은 승객처럼 발을 동동 구르며 후회하며 사는 게 결국 나란 사람의 인생인 것만 같다. 오늘도 나는 하지 않은 것들이 참으로 많았다. 화가 나서 혹은 이기심으로 아니면 단지 귀찮아서 나는 많은 것들을 외면한 채 하루를 보냈다. 그것들이 쌓이고 쌓여 죄가 될 때까지도 나는 같은 실수를 계속 반복할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슬프고도 부끄럽다.
며칠 전 엄마의 옅은 그림자를 보며 왈칵 눈물이 쏟아지던 순간,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불현듯 머리를 스쳤음에도나는 또 그냥 침묵했었다. 그러고 나서 그 장면을 계속해서 되새김질하며 하지 않은 죄를 반성하고 있다. 의미 없는 혼잣말을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면서...떠나간 인연들, 아직도 곁에 있는 인연들을 떠올리며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를 조용히 마음속으로나마 전해 본다. 반성하고 또 죄를 짓고 반성하며 사는 게 나란 사람이니 어쩌란 말인가? 하지 않은 죄들은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이고 나는 이 답답한 문제 앞에서 늘 길 잃은 어린아이처럼 막막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