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위 Mar 31. 2023

진실로 선하게 끝까지 선하게

박노해의 '선한 영향력이 있으니'

선한 영향력이 있으니


박노해


자신 안에 자리한 악의 능력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자가 있다


자신 안에 커오는 선의 능력을

쉬임 없이 고무시키는 자가 있다


그는 어느 쪽인가

나는 어느 쪽인가


악은 선을 삼켜야만 연명할 수 있으니

선은 악에 맞서야만 커나갈 수 있으니


그러니 선한 이여

악에게 자신을 내어주지 마라

위선을 떨치고 선함을 지켜라


진실로 선한 사람은 나쁜 사회에서도

자기 영혼을 잃지 않고 좋은 삶을 사는 사람


아무리 작아도 선한 존재는

그 자체로 어두운 세상의 등불이니


아무리 무력한 듯해도 선한 사람은

선한 존재 자체로 내뿜은 영향력이 있으니


진실로 선하게

끝까지 선하게


원작 이혜민   모작  무아


'착하다'는 말을 참으로 많이 들으며 살아왔다. 나는 나의 '선함'을 그다지 자랑스럽게 여기진 않았다. 진정으로 선한 사람은 마음속부터 한결같아야 하고 언행에 불일치가 없어야 하며, 타인을 위한 희생을 억울해하거나 불편해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나의 '선함'은 순도 백 프로가 아니었다. 사람을 두려워하고 눈치를 많이 보는 나는 미움받을까 봐 무서워 타인의 마음에 드는 언행을 일부러 한 적도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게 가식은 아니었다. 참말로 상대의 입장을 먼저 배려하기도 하고 타인을 위해 기꺼이 나의 손해나 희생을 감내하기도 하는 편이니까. 하지만 암만 생각해 봐도 순도 백 프로까진 아니다.


누군가가 내게 선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칭찬할 때 기쁘고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론 난처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오늘 아는 지인이 말했다.


"K 씨는 너무 착하고 사람을 있는 그대로 믿어서 상처도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받을 거예요. 나쁜 사람들에게 뒤통수를 맞기도 하고요. 세상엔 K 씨 같이 순수하고 선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나는 정말 순수하고 선한가? 그저 마음을 있는 그대로 열어 사람을 사랑하고 믿었을 뿐이다. 몇 년 전, 가깝게 지내던 사람에게 크게 뒤통수를 맞은 적이 있었다. 어쩌면 나 혼자 일방적으로 그 사람을 좋아하고 믿어 놓고 뒤통수를 쳤다고 모함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상대는 처음부터 적당히 거짓으로 나를 대했던 것뿐인데 그걸 모르고  말이다.


오늘 길에서 우연히 그 사람을 마주쳤다. 몇 년이 지난 일이라도 그때의 상처는 생생히 남아 있다. 하지만 그 사람 얼굴을 보는 마음이 예전처럼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용서하고 받아들이자고 수도 없이 되뇌어 온 세뇌 학습의 결과일 것이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다 한들 나는 크게 다르게 행동하지는 못할 것이다. 또다시 믿고 좋아했다가 호되게 쓴 맛을 볼 테지. 그런 일들을 반복적으로 겪다 보니 인간관계에 대한 두려움과 주저함이 커지는 것은 사실이다. 예전 같으면 내가 먼저 한 걸음 다가갈 것을 이제는 다가가기보다 관망하거나 반걸음 물러나 보기도 한다. 나의 맨 마음을 타인에게 너무 성급히 지나치게 많이 보이지 않으려 안간힘을 다한다.


껍데기 속으로 파고들어 웅크리고 살아가는 나이지만 분명 '선함'을 지녔고 '선함'을 추구한다.


자신 안에 커오는 선의 능력을

쉼 없이 고무시키는 자가 있다


내가 이런 사람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어도 이런 사람이 되고자 한다는 건 확신할 수 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더 '자기 영혼을 잃지 않고 좋은 삶을 사는 사람'이 되고 싶어 진다. 어둠에 있기보다 빛에 있을 때 내 존재가 따사로워지고 가벼워진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아무리 작아도 선한 존재는

그 자체로 어두운 세상의 등불이니


아무리 무력한 듯해도 선한 사람은

선한 존재 자체로 내뿜은 영향력이 있으니


박노해 님의 시를 읽으며 큰 위로와 용기를 얻는다. '선함'을 추구하는 것이 바보나 호구처럼 보이는 삭막한 시대에, 영리하다 못해 영악해야만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고 하는 계산적인 시대에 '끝까지 선하라'라고 노래하는 시인의 올곧음이 참으로 든든하고 믿음직하다.


오늘은 이상하게도 나의 '선함'을 칭찬해 주는 사람들이 유독 많은 날이었다.  그런 날 공교롭게도 '선함'을 잔인하게 배반했던 사람도 만났다. 나는 선과 악의 저울 위에서 가만히 생각해 본다. '선함'의 무게를 견딜 것인가, 말 것인가? '선함'으로 인한 상처의 무게를 견딜 것인가, 말 것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악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중간 지점 어딘가에서 마음 편안하게 균형 잡고 살라고. 근데 아무래도 나는 늘 그렇듯 불균형한 저울을 선택하게 될  같다.


젊은 시절부터  내 마음에 깊이 심어둔 신념 하나가 있다. 그것은 '진실은 언젠가는 반드시 통한다.'는 것이다. '선함'이 배반당하기 쉬운 세상이지만, 진실로 선하게 끝까지 선하게 가는 마음은 결국 나라는 존재의 뿌리를 더욱더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영양분이 될 것임을 믿는다. 내일이 밝으면 또 나에겐 여러 번의 시험이 치러질 것이다. 악의 능력을 자극하는 숱한 일들 앞에서 꿋꿋하게 선의 능력을 고무시키며  악에 맞서 살아갈 수 기를 기도한다. 한쪽으로 내려앉은 저울 위에서도 그 무게를 감당하며 진실로 선한 내가 될 수 있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진실하게 우는 것은 살아내기 위함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