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서정주를 펼치고 폴 발레리를 부른다.
내겐 살아온 날들이 살아갈 날들보다 많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가끔은 살아온 날들이 살아갈 날들의 발목을 덥석 붙잡아 버리기도 한다. 자기 몫의 삶이 이만큼 이건만 왜 받아들이지 못하고 때때로 고통스러워하는가. 고통에 마비되면 살아갈 날들에 대한 욕심과 살아온 날들에 대한 회한이 엉망진창으로 뒤섞여 정작 지금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리고 어리석을 만큼 괴로워진다. 살다 보면 머리로 아는 게 가슴은 도무지 타협해 주지 않는 날들이 있다. 바꿀 수도 없고 바뀌지도 않는 것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허망하게 몸부림쳐 보지만 결국은 제자리다. 현실은 늘 그대로이다.
그럼에도 나는 살아야 했다.
살아야 한다.
살아야겠다.
사람들은 대개 오로지 생계를 위해서 대부분의 시간을 소비하다가 약간 남아 돌아가는 자유 시간이라도 생기면, 도리어 마음이 불안해져서 거기서 벗어나려고 온갖 수단을 다 쓴단 말이다. 아아, 이것도 인간의 운명이라고 할 것인가!
출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소위
어두운 밤 혼자 웅크리고 있는
외로운 아이의 닫힌 방문 앞에
밥 한 술에 소주 한 잔 들이켜며 고통을 삭히는
일용직 노동자의 차가운 밥상 앞에
링거 줄을 탯줄처럼 달고 시커먼 입술로 허공을 보는
불치병 환자의 병상 앞에
버는 돈보다 갚아야 할 빚이 많은 손님 없는
가게 주인의 고장 난 계산기 앞에
너를 더는 사랑하지 않는다며 고개 숙이는
오래된 연인의 식어빠진 커피 앞에
다음 기회에 인연이 되기를 희망한다는 문자를 받은
구직 청년의 액정 나간 휴대폰 앞에
들고 온 과자를 내려놓으며 울먹이는
가난한 엄마와 아이의 텅 빈 지갑 앞에
바람이 분다.
서정주는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라고 했건만
바람은 진실로 우리를 키워왔던가,
서서히 죽여왔던가.
그럼에도
폴 발레리는 말했지.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고.
이유 같은 것은 없다.
바람은 살아온 날들의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고
살아갈 날들의 헛된 기약이다.
바람이 세차서 쓰러질 듯 휘청이는 날에도
바람이 간지럽게 온몸을 휘감는 날에도
울고 싶어도 웃고 싶어도
우리는 살아야 한다.
오늘도 무수히 쏟아지는 나뭇잎들 사이로
거친 바람이 분다.
나는 옷깃을 여미고 고개를 숙인 채
바람에 맞설 각오를 한다.
살아야 한다.
아니 살아야겠다.
집으로 돌아와 덜컹거리는 창문을 닫고
서정주를 펼치고
폴 발레리를 부른다.
그럼 나도
다시 살아질 것이다.
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