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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위 Nov 22. 2023

어쩌면, 모든 게 다 오해였을지도 몰라.

오래 오해해서 미안해.

어쩌면

 - 확실하지 아니하지만 짐작하건대


나는 나의 삶을 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내가 살아온 과거와 지금 몸 담고 있는 현재 정도는 나의 소관이라고 믿었다. 섣불리 미래를 논할 자격은 없어도 나의 과거나 현재까지 의심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내가 아는 게 다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나를 파고들었다. 그 순간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고 미세한 균열이 마음 한 구석에 생겼다. 그것은 빙판 위에 찍힌 점과도 같았다. 그 점은 점점 커져 주먹이 들어갈 만큼 큰 구멍이 되더니 어느 날  보니 머리 하나는 들어갈 만큼 거대한 공간이 되어 있었다. 언젠간 내 전부를 집어삼킬 수도 있겠다는 공포가 밀려왔다. '어쩌면'은 그런 내면의 균열 과정에서 만난 부사였다. 내가 알고 있고 믿고 있던 모든 진실은 '어쩌면'을 만나는 순간 중심을 잃고 한꺼번에 흔들리기 시작한다.


어쩌면 모든 게 다 오해였을지도 몰라.




전원주택 매매를 위해 주민등록초본을 떼었다. 모든 주소 변동 내역을 포함하여 뽑은 초본에는 나의 인생 전체가 담겨 있었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했던 시간 동안 내가 머물렀던 공간의 이력들이 여러 장에 걸쳐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런데 한참 동안 나는 한 곳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초본의 맨 첫 장, 맨 첫 줄.

"1982. 1. 11. 신규등록" 

태어나서 7살이 될 때까지 내 기억 속 몸속에 새겨진 6눈에 보이는 서류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잃어버린, 아니 사라져 버린 6년이었다.


문득 엄마가 예전에 했던 말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쳤다.  학교를 보내기 위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직전 어쩔 수 없이 출생신고를 했다던 말이. 출생 신고를 늦게 했으니 나의 어린 시절 기록은 그 어느 것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이었다. 말로만 듣던 진실을 눈으로 확인하는 기분이 왠지 묘했다. 한낱 종이 한 장에 담긴 진실이지만  당황스러웠다. 내 기억 속에 있던 유년 시절이 통째로 거세당한 기분이랄까?  


나의 첫 브런치북은 '이별과 상실'을 주제로 한 것이었다. 블로그에 썼던 글들을 골라서 묶어 보았더니 신기하게도 주제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마치 일부러 주제에 맞춰 쓰기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나 무의식은 무섭고도 강력한 것이다. 아무리 내다 버려도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집안으로 되돌아와 있 사탄의 인형처럼 내 안에서 절대 밀어낼 수도 없고 밀어내지지도 않던 감정은 '상실감'이었다. 뚜렷한 이유도 모른 채 나를 지배했던 강력한 감정. 그 감정의 실체를 이런 종이쪼가리 하나에서 발견하다니....


낳았지만 낳지 않은 아이, 키웠지만 키우고 싶지 않은 아이, 살아 있지만 살아 있음을 증명하고 싶지 않은 아이... 나는 오래도록 그런 거지 같은 대우가 억울하다며  상실과 분노와 절망을 이불처럼 덮어쓰고 울었다. 어제도 초본의 맨 첫 줄에 돗자리를 깔고 주저앉아 울려던 참이었다. 느닷없이 '어쩌면'의 구멍에 내 몸이 풍덩  빠져버리는 게 아닌가. 그러자 내가 알던  다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순식간에 내  전체를 흠뻑 적셨. '어쩌면' 나는 그동안  진실을 외면했거나 내 멋대로 해석하여 오해했거나 거짓을 진실로 착각했거나 하진 않았을까?


지금 생각해 보니 30대의 어린 엄마. 나를 낳고 학교에 보내기까지 혼자서 전전긍긍하며 살았엄마.  아픈 몸을 끌고 세상을 배회하면서도 나를  한 번도 진짜로 버린 적은 없었던 엄마.  엄마라는 여자는 나의 거대한 오해의 산속에 파묻혀 한 번도 눈에 보인 적이 없었다. 이해하기보단 원망했고 흠없이 사랑하기보단 은밀히 미워했다. 여느 때의 나라면 저 삭제된 기록 앞에서 기어코  자신을  연민하고야 말았 것이다. 그러나 이미 '어쩌면'이 비집고 들어온 내 마음은 모든 것에 확신이 없어진다. 심지어  감정조차도!


나는 엄마에 대한 것 말고도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친 채 아니면 외면한 채 살고 있을까? 내 곁을 지나간 친구도 연인도 어쩌면 내가 오해했을지모르겠다. 그들이 내게 주었다고 믿는 감정에 매몰되어 그들을 진실로 들여다볼 노력조차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나는 지독하게도 내 안에만 갇혀 살아온 것이 아닐까?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


크리스마스 캐럴의 스크루지 영감처럼 지나간 수많은 순간들 속으로 '어쩌면'의 옷을 입고 몰래 들어가 나를 본다.  그 안에서 내가 아닌 그와 그녀의 진실을 찾으려고 노력해 본다. 그와 그녀가 흘렸을 눈물을 본다. 생각보다 견고한 나의 생각과 감정들을 '어쩌면'의 도끼로 찍고 또 찍는다.  그러면 나는 깨지고 그와 그녀는 진실된 모습으로 거기에 서서 나를 보고 있겠지.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아쉬워하기보단 이제라도 웃으며 다시 만날 수 있게 됐음에 함께 감사할 것이다.


어쩌면 모든 게 다 오해였을지도 몰라.

오래 오해해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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