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올해 6월 중순에 지금 사는 아파트 단지로 이사를 왔다. 그때는 아파트 가격이 많이 빠진 상태이기도 했고 주변에 신축 아파트 입주 시기와 맞물려서 시세보다 조금 저렴하게 전세로 들어올 수 있었다. 막상 들어와 살아 보니 사람들이 왜 이 지역을 선호하고 전북의 강남이라 불리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시골에서 아이를 키우다 이곳으로 이사 왔기 때문에 피부에 와닿는 생활의 편리함 들은 정말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대단지이고 신도시이다 보니 모든 근린시설이 5분 거리 내에 있다. 그중에서도 생활에 가장 필수적인 학교, 병원, 도서관 등이 걸어 다닐 수 있을 만큼 가까이에 있다. 예전엔 주말에 아이가 갑자기 아프기라도 하면 인근 대도시의 큰 병원을 찾아다니느라 쩔쩔맸는데 여기는 집 근처에 대형 아동 병원이 두 군데나 있어서 아무 때나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극장도 CGV와 롯데시네마가 가까운 거리에 있다. 영화 시간에 거의 딱 맞게 출발해도 절대로 늦을 일이 없다. 물론 대형마트와 대형서점도 바로 코앞이다. 각종 학원들도 밀집되어 있어서 아이를 키우며 살기에는 그야말로 안성맞춤인 곳이다.
자연을 가까이 접할 수 없다는 게 아파트 생활의 최대 단점일 텐데 여기는 어마어마하게 큰 호수 공원을 끼고 있어서 그런 아쉬움도 별로 크지 않다. 청설모들이 뛰어노는 공원을 아이와 함께 산책할 수도 있고 자전거나 킥보드를 타는 것도 자유롭다. 이사 온 후엔 맨발로 땅을 걷는 어싱도 할 수 있었다. 도시 생활의 편리함과 아울러 자연의 혜택까지 어느 정도 누릴 수 있으니 단점이 거의 없는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사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거리를 걷다가 부동산에 붙어 있는 전단지를 보고 깜짝 놀라 발걸음이 저절로 멈춰 버렸다. 우리가 전세로 들어온 지 몇 달 지나지 않았는데 똑같은 단지의 똑같은 평형 전세가 1억도 넘게 올라 있는 게 아닌가? 처음엔 눈을 의심했고 다음엔 부동산에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직접 공인중개사를 찾아가서 물어보았다. 당장 이사할 집을 구하는 것은 아니나 밖에 붙어 있는 가격을 믿을 수가 없어서 찾아왔다면서 시세를 물었더니 정말로 1억이 넘게 오른 가격을 말했다. 그것도 전세가 없어서 탈이라고 했다. 매매 역시 올 초 거래 가격보다 1억에서부터 심하게는 2억 가까이 높게 부른다고 했다. 물론 거래는 잘 되지 않는다고 했다. 공인중개사도 지금의 상황을 답답해하는 게 보였다. 집주인과 매수자 사이의 심리적 갭이 너무나 크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올 초의 매매 가격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조금 싸게 전세로 들어오긴 했어도 이 가격이 터무니없이 싸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다. 그런데 1억 5천이나 비싼 매매가에, 1억 넘게 비싼 전세가라니! 이것은 정말이지 받아들이기 어려운 갭이었다. 부동산 가격이라는 것이 이렇게나 들쑥날쑥할 수 있나? 지금이 부동산 호황기라면 눈만 감았다 떠도 몇천만 원이 우습게 오른다는 걸 이해할 수도 있겠는데, 전국에 부동산 한파가 몰아닥치고 있는 시기가 아닌가. 왜 여기만 이렇게 높은 매매가와 전세가를 부르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결국 여기도 지방 소도시일 뿐인데 말이다.
부동산은 입지라는 교과서적인 말이 있다. 그 말에 의하면 이 동네는 매매하거나 투자할 가치가 있는 곳이긴 하다. 그러니 집주인들이 호황기에 한창 치솟았던 집값에 대한 환상을 아직도 품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과연 그때로 되돌아갈 수 있으려나. 호가가 어떻든 실제로 그 가격에 매매하려는 사람은 별로 없으니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오히려 그 때문에 전세가만 더 폭등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지역은 실거주 목적으로 오려는 사람들이 많은데 지금 분위기로는 매매를 다들 꺼려하고 있으니 말이다.
한때 부동산 관련 책도 읽고 나름대로 시장의 흐름을 파악해 보려고 안간힘을 썼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부동산도 주식도 알려고 하면 할수록 멀고도 어렵다는 생각만 강하게 들었다. 내가 아무리 문외한이라도 이렇게 불안정한 시기에는 부동산 매매가 위험하다는 본능적인 예감 정도는 갖고 있다. 내가 이사 오기 전에 살던 지역의 민간 임대 아파트는 두 군데나 건설사가 부도 위기를 맞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렇게 되면 입주자들은 분양도 받지 못하고 전세금을 빼내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그 아파트에 묶여 있게 되는 것이다. 언제 해결될지 기한도 알 수 없는 채로 말이다. 둘 중 한 아파트는 잠시 우리도 전세로 임대했다가 빠진 곳이라 그 얘기를 전해 듣고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부동산 분위기가 무척이나 암울한 상황임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다행인 것은 지금 사는 집이 만기까지는 1년이 넘게 남아 있으니 추이를 관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말로 이 아파트의 적정 가격은 얼마인 걸까?
서울 강북의 아파트들도 6~7억까지 떨어졌다는데 지방 아파트도 가격이 더 하락하지 않을까?
내년엔 본격적인 하락이 예상된다던데 그럼 도대체 얼마까지 떨어질까?
그리고 언제쯤 다시 상승하게 될까?
내가 그 흐름에 맞춰 정확한 타이밍에 집을 산다는 게 과연 가능하기는 할까?
여러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지만 잘 모르겠다. 지금껏 나는 철저히 운에 기대어 살아온 거 같다. 시골의 전원주택이 이 시국에 팔린 것도 운이 좋았다고 밖에는 할 수 없지 않은가.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있으니 앞으로는 부동산 공부도 하고 세상 돌아가는 눈치도 좀 더 봐야 하나 싶어 진다.
그나저나 몇 개월 만에 전세가 1억이 올랐다니 너무한 거 아닌가?
* 저는 부동산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없는 일반인이며 가격에 대한 판단은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