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본 영화에서 '공허는 없앨 수 없다. 사랑으로 채워야만 한다.'라는 대사가 나왔었다. 어린이들이 보는 판타지 영화였지만 꽤나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고 나는 오랫동안 이 대사를 마음속으로 곱씹어 보곤 했다. 부정적인 것들은 없애는 것밖에는 달리 해결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던 내게 왠지 이 말은 참신하고 색다르게 다가왔다. 생각해 보니 배고픔도 음식을 채워 넣어야 없어지고, 추위도 몸 위에 겹겹이 헝겊을 덮어 싸야 없어지니 '결핍'의 해결책은 '채움'이 맞는 것도 같았다. 허술한 내 영혼도 '채움'으로 성장하고 나아질 것만 같았다. 잔뜩 채우고 나면 내 삶에 난 구멍들도 말끔히 메꿔질 줄 알았다. 더 이상 인생의 빈 틈으로 쉭쉭 바람 새는 소리가 나지 않고 티 없이 온전한삶을 살게 될 걸로 믿었다.
그래서 젊은 시절 내내 결여를 채우기 위해 몸부림치며 살았다. 직업을 가져야 하고, 돈을 벌어야 하고, 사랑을 해야 하고, 결혼을 해야 하고, 아이를 낳아야 하고, 집을 사야 하고, 부모를 보살펴야 하고, 자아를 실현해야 하고. 끝없이 내가 채워야 할 구멍들은 생기고 또 생겼다. 하나를 메꾸면 다른 하나가 커 보였고 다른 하나를 메꾸면 어느새 더 큰 구멍이 아가리를 벌리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도 투정 한 번 부리지 않고 열심히 채우기를 반복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성실하고 꾸준하게나의 빈틈을 메꾸는 일밖엔 없었으니까. 그래도 공허를 없앨 수는 없었다. 채우고 또 채우다 보면 언젠가는 구멍이 작아지거나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과 기대를 품고 살았을 뿐이다.
박노해 님의 '그대로 두라'를 읽으며 다시금 생각한다. 굳이 왜 그렇게 결여를 채우려고 안간힘을 다했을까? 결여는 결여된 채 품어갈 때 사무치는 그 마음에 꽃이 필 텐데. 굳이 왜 그렇게 상처를 치유하려고 발버둥 쳤을까? 상처가 상처대로 아파올 때 상처 속의 숨은 빛이 길이 될 텐데. 시인의 티 없이 환하게 웃는 얼굴이 새 아침의 태양처럼 눈부시게 빛난다. 내 삶 여기저기에 난 구멍으로 차갑고 허무한 바람만 새어나갔던 것은 아님을 이제는 알겠다. 구멍이 많다고 어딘가 부족한 삶도 아니었음을 알겠다. 박노해 님의 상한 몸과 구멍 난 영혼에서 이토록 밝은빛이새어 나오고 있지 않은가. 결여를 결여대로, 상처를 상처대로 두는 사람의 아름다운 힘이 보이지 않는가.
시시해 보이는 일상을, 태산처럼 보이는 결여를, 곪아버릴 거 같은 상처를있는 그대로 두자. 방관이 아닌 사랑으로, 미움이 아닌 용서로, 오해가 아닌 관용으로 삶을 넉넉히 바라보자. 그대로 두어도 삶은 그 자체로 빛날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