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주 님의 책들을 무척 사랑한다. 언어의 온도, 말의 품격, 글의 품격까지 한 권, 한 권 몸에 좋은 보약을 챙겨 먹는 마음으로 정성껏 읽고 마음속에 새겼다. 이기주 님의 말처럼 나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 꽃처럼 향기롭기를 바라며 살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처럼 되지 않을 때가 더 많다. 물론 시궁장처럼 냄새나는 욕설이나 더러운 거짓, 부풀린 탐욕의 말을 내뱉진 않았다. 하지만 어쩐지 내 입에서 나간 말들은 사방이 갇힌 공간 안에서 이리저리 튕기기만 할 뿐 상대에게로 전해지지 않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때로는 뒤끝이 영 찜찜하고 개운하지 않은 게 말들이 통째로 엉뚱한 방향으로 튕겨나간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왜 내 말들은 늘 그렇게 원치 않는 방향으로 가버린 공 같을까?
박노해 님의 시에서처럼 나의 어휘가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를 온전히 보여준다는 일은 얼마나 아스라이 멀고도 힘든 여정인가. 나를 보여줄 방법이 언어 말고는 딱히 없으니 더욱더 그러하다. 나의 어휘가 나를 상승시키는 빛의 사다리가 되어 나란 존재를 가뿐히 하늘까지 올라가게 해 주면 좋으련만 현실은 사다리에서 주르륵 미끄러져 추락하고 말 때가 더 많은 것이다. 그런데 조금 화가 나기도 한다. 박노해 님이나 이기주 님 같은 언어의 연금술사들에겐 말과 글로 자기를 드러내는 일이 좀 더 만만하고 쉬운 일이 아닌가. 그러니 맑고 높고 간절한 어휘까지도 구해 볼 여력이 있는 것 아니냐 말이다. 하,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언어로 나를 드러내는 것 자체도 어려워 절절매는데, 거기에 맑고 영롱한 언어를 무기로 닦아세우라 하니 막막하기 짝이 없을 수밖에. 그럼에도 우리는 결국 언어 밖에는 기댈 것이 없음을 안다.
서로의 진심을 주고받는 일도, 서로의 뜻을 인정하거나 거부하는 일도 언어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며칠 전 잠자리에서 어린 아들이 내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엄마, 내가 가장 힘들고 싫은 건 엄마가 말을 하지 않는 거야."
"그래? 사실 엄마는 너무 화가 나면 일부러 말을 하지 않은 거야. 나쁜 말로 너에게 상처를 줄까 봐 두려워서 일부러 말을 안 하고 참은 거야."
"아냐, 엄마! 혼내도 되고 잔소리해도 되는데, 내가 가장 싫은 건 엄마가 말을 하지 않는 거야."
아들의 단호한 말에 뜨끔했다.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아들과의 소통을 단절해 버리겠다는 의도로 말을 하지 않은 것이 진짜 본심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들은 간절하게도 나와의 소통을 끊고 싶지 않다고 고백하고 있었다. 그것이 설령 자기에게 오는 비난과 분노의 화살일지라도 상관없다면서.
나는 조용히 아들에게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미안해, 앞으로는 아무리 화가 나도 말을 할게. 서로 싸우고 상처 주게 되더라도 말을 할게. 아니, 그러지 않으려고 엄마가 더 많이 노력할게."
나의 말씨가 나의 기도이다
나의 글월이 나의 수호자다
나의 문맥이 나의 길이 된다
나의 어휘가 바로 나 자신이다
박노해 님의 시를 읽으며 다시 한번 다짐한다. 아직은 나를 표현하기에 완벽하지 않은 말과 글이고 진심을 전달하기에 미숙하기만 한 말과 글이지만, 내 존재를 지키고 내 삶을 이끌어가는 것은 말과 글 밖에 없다. 그러므로 나는 나의 어휘를 갈고닦아 나의 글월이 투명한 마음을 담게 할 것이며, 나의 문맥이 인생의 진실을 수호하게 할 것이며, 함부로 침묵하여 인연을 배반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언어와 통하는 모든 이들에게 목숨껏 사랑을 내어주며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