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를 읽으며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가 떠올랐다. 안중근 의사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그가 '행동하는 지식인'이자 '의인'이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어머니, 조 마리아 여사가 있었다. 조 마리아 여사 역시 여걸이라고 불릴 만큼 일제 침략에 맞서 강렬히 싸운 의인이자 열사였다. 하지만 아무리 대의를 위하고, 불의에 맞서는 일이라 한들 자식의 목숨을 포기하는 게 과연 어미로서 가능한 일일까? 조 마리아 여사는 사형 선고를 받고 옥중에 있는 안중근 의사에게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지 말고 당당히 죽으라'라고 전했다. 그리고 수의를 손수 지어 보내주기까지 하였다. 자식을 잃을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어머니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역사에 기록된 의연한 모습 뒤 감춰진 이면에는 그녀가 삼킨 통곡과 피눈물이 숨어 있을 것이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들이 본능적으로 자식을 지키려 한다. 어찌 보면 그것은 한낱 인간이 거스를 수 없는 대자연의 순리와도 같은 것이다. 하지만 '의인'은 본능을 이겨내고 순리를 거스르면서까지 의를 이루기 위해 모든 걸 내어 던진다.
같은 어미의 입장에서 나라면 과연 어떠했을까를 생각해 본다.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처럼 하기는 어렵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약간의 불의를 감내하고서라도 자식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앞장서지 않았을까? 자식을 지키는 것과 대의를 지키는 것! 사실 살면서 그렇게 깊이 고민해 본 적은 없다. 나는 평범하고 별다른 영향력 없는 소시민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하는 소소한 일상 속에서 정의를 지킬 것인가, 말 것인가로 갈등하는 일은 자주 있었다. 스스로 공정하기를 바라 왔지만 어찌 내 아들의 일 앞에서 순수하게 객관적인 태도만을 유지할 수 있었겠는가. 아이가 상처를 받으면 아이 앞에선 티 내지 못해도 마음속으로는 상처 준 대상을 미워하였다. 내 아이의 허물보다 상대의 허물을 조금이라도 더 크게 보려고 했다. 아이에게는 최대한 옳고 그름을 가려 훈육하였지만, 아들의 눈에 이기적인 엄마의 진심이 보이지 않았을 리 없다.
박노해 님의 시 '나도 어머니처럼'을 읽으니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란 말이 생각난다. 사형 선고를 받던 날 기자들에게 찍힌 사진 속 박노해는 아무런 두려움도 고통도 없는 듯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나는 그 표정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그의 대쪽 같은 올곧음과 의연함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졌다. 그런데 그 모든 강직함이 어머니에게서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었다. 어머니가 아들을 키우는 내내 어떠한 삶의 태도를 견지했는지 이 시를 통해 잘 알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남을 비난하거나 신세를 한탄하지 않았으며, 고통스러운 날에도 묵묵히 참고 견디며 본인의 의무에 최선을 다하였다. 스스로 삶을 정성스럽고성실하게 일구어 나갔고 자신의 삶을 본보기로 보여줌으로써 참된 가르침을 전한 것이다.
나를 위해서가 아닌 자식을 위해서 남편을 위해서 때로는 다른 무엇을 위해서, 그 모든 '위해서'를 실천하며 살아오신 어머니를 보고 자란 박노해 역시 도저히 자기만을 위한 삶을 살 수는 없었다. 그 길이 죽음을 향해 가는 길이더라도 환하게 웃으며 성실하고 치열하게 살았고 기꺼이 자기를 희생할 수 있었다.
안중근과 안중근의 어머니, 박노해와 박노해의 어머니! 평행 이론 같은 두 모자의 모습을 보면서 아들을 키우는 한 어미로서 깊이 반성하고 참회한다. 나 역시 내 삶으로 아들에게 본보기가 되어야겠다. 삶에서 부딪히는 시련 앞에서 값싼 변명이나 싸구려 비난에 입을 더럽히지 않으리라. 내게 주어진 삶에 정성을 다해 헌신하리라. 그리하여 아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나도 어머니처럼 성실하고 치열하게 살겠노라.'라고 다짐할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한다. 내 말이 아닌 내 삶으로 아들의 나침반이 되어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