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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위 Nov 19. 2024

'주름'에 대한 아포리즘

김철규 '삶의 기억 결 - Symbol'

주름이 싫었다.

보이지 않는 너머를 생각하며 글을 쓴다고 으스댔지만

실은 나는

철저히 보이는 세계에 집착하고 있는 속물일 뿐이다.


누군가의 주름을 깊이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곁에 있는 엄마의 주름마저도.

불편했다.

마주하기 두려웠다.

초상화에 담긴 주름 한 점 없는,

기억에도 없는 여자를 보며

바짝 쪼그라든 얼굴과 손과 엉덩이를 지워버렸다.



거울 안엔 찌그러진 내가 있다.

여기저기 금이 가고

그 틈 사이사이에서 싱싱하지 못한 냄새가 풍겨 나온다.

눈을 감고 그런 나도 지워버렸다.

보지 않으면 믿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도망만 치던 내게 주름이 먼저 다가왔다.

느닷없이 무차별적으로 폭격을 가해 왔다.

도망칠 곳도 숨을 곳도 없이 주름을 옴팡 뒤집어썼다.

그러라고 내게 온 것이다.

주름 사이에 끼어 끔찍해하다가

어느 순간

맥이

풀려버렸다.

저 주름이 삶의 희망과 인간의 가치를 품고 있다는 작가의 말에 도리질을 하다

그만

숨이

멈춰버렸다.



내 온몸 구석구석

보이지 않고 셀 수도 없는 삶의 기억들이 

빈틈없이 더덕더덕 끼어 있다는 걸

불현듯 깨달았으니까.

주름의 고랑 사이에서 꽃이 피고 열매가 떨어지는 걸

다디달게 받아먹은 게

바로 나란 걸 기억해 냈으니까.

징그럽다 넌더리를 치다가

정신이 번뜩 들어버렸다.


주름,

삶의 기억들로부터 

나는 단 한순간도 도망칠 수는 없으리라는 걸

알아버렸.




* 이 글에 인용된 모든 그림은 김철규 작가 님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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