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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위 Sep 06. 2023

'미안해'라는 말

몇 개월 뒤 죽는다면,

"김 OO 씨, 살 날이 몇 개월 남지 않았습니다."


이런 말을 듣게 된다면?

어제 문득 그런 상상을 해봤다.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말은 뭘까?


'미안해.'


겨우 아홉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미안해.'


아직도 엄마 품에서만 잠들 수 있는 어리고 겁 많은 너를 혼자 남겨두고 떠나서 미안해.

사춘기가 되면 다들 엄마한테 투정을 부린다던데 너의 첫 방황을 가까이에서 지켜봐 주지 못하고 떠나서 미안해.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깊이 고민할 때 인생 선배로서 따뜻한 조언 한마디 해주지 못하고 떠나서 미안해.

네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가정을 이룰 때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응원해주지 못하고 떠나서 미안해.

네가 낳은 아이를 깊은 사랑으로 포옹 한 번 해 주지 못하고 떠나서 미안해.

 

그리고 또

너를 평생 지켜주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미안해.

오래오래 살면서 너를 사랑하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미안해.

아니 그냥 네가 앞으로 겪게 될 모든 아픔들이 모두 다 미안해.


미안해. 


이런 생각들을 하다 문득 이상했다.

나는 나의 죽음 앞에서 무엇이 이토록 미안하기만 한 걸까?

아들에 대한 미안함, 뒤이어 밀려오는 남편에 대한 미안함, 엄마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나를 아는 모든 이들에 대한 미안함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커져서 급기야는 숨을 못 쉴 정도로 심장을 짓눌렀다.


언젠가 엄마를 집에 모셔왔던 날,

무슨 이야기 끝엔가 엄마도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죽을 때 남길 말은 '미안해'지 뭐. 노상 아파서 식구들 고생만 시켰으니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더 있나?"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듣고 넘겼으나 '미안해'라는 말이 내 가슴에 돌처럼 깊이 박혀 버렸는지 이따금 엄마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귓가에 들려오곤 했다.


'미안해'


오늘 나의 죽음을 생각하면서 나의 '미안해'와 엄마의 '미안해'가 만나 내 가슴은 미안함의 파도로 거세게 넘실거렸다.

멀미가 나서 한참을 정신 못 차리다가 깊게 한숨을 내쉬고 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미안해'의 다른 말은 '사랑해'임을 깨달으면서...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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