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치매에 걸렸어.”
“무슨 소리야 갑자기? 작년 가을에 봤을 때는 멀쩡했잖아.”
“그때도 조금씩 오락가락하긴 했어. 넌 하루밖에 머물지 않아서 잘 몰랐던 거지.”
“지금은 상태가 어떤데?”
“형부랑 원이를 자꾸 찾아. 너도 찾고. 영원도로 배를 타러 가야 한다고 해. 나 혼자 감당하기가 힘들어지는데 어쩌면 좋으니?”
너는 엄마가 스스로 생을 놓아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마지못해 살아가는 비루한 삶의 이유에 너라는 존재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죄스럽기도 하고 비참하기도 했었다. 언젠가 엄마가 생을 포기해버리는 날이 온다면, 너 역시 미련 없이 뒤를 따라가리라 다짐해 왔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단 한 번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엄마가 목숨이 아니라 기억을 놓아버리는 날이 오리라고는. 전화를 받고 난 뒤에도 당장 집으로 달려갈 수는 없었다. 모든 걸 잊고 백지처럼 웃고 있는 엄마의 눈동자를 쳐다볼 엄두가 나지 않아서였다. 지옥 같다는 상투적인 말로는 표현할 수조차 없었던 수많은 고통이 하루아침에 탈색되어 버렸다니. 고통을 피해 다니느라 생이 온통 만신창이가 되었으면서도 고통 없는 공허는 더더욱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엄마와 너는 이미 그러기로 합의한 것이었다. 엄마는 엄마를 벌하고 너는 너를 벌하면서 서로에 대한 부채감에서 벗어나기로. 그런 엄마가 혼자서만 도망치려 하고 있었다. 허물을 벗어버리는 뱀처럼, 스스로 꼬리를 자르고 달아나는 도마뱀처럼.
엄마는 아마도 그때의 기억을 말하는 것이리라. 너는 네 사람이 함께 떠났던 마지막 여행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남쪽의 한적한 바닷가 마을로 떠난 여름 여행이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바다를 본 적 없던 너는 들뜬 나머지 밤잠까지 설쳤다. 기차 안에서 오빠의 어깨에 기대어 꾸벅꾸벅 졸다가 도착지에 내릴 때가 되어서야 간신히 눈을 뜰 수 있었다. 막상 바다를 눈앞에 대하자 아름답다기보단 두렵다는 생각이 엄습했다. 빛나는 파랑이 청어 떼처럼 파닥거리는 게 아니라, 시커먼 구렁이가 너를 향해 아가리를 벌리고 달려드는 것 같았다. 너는 바다 가까이로는 한 발자국도 다가갈 수 없었다. 오빠는 그런 너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꾸만 바다 쪽으로 끌고 들어갔다. 발가락 사이로 파고드는 밀물의 간지러운 촉감을 느껴 보라면서. 어느새 엄마는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 올리고 바닷물을 툭툭 차면서 걷고 있었다. 균형을 잡지 못하는 평균대 선수처럼 아빠에게로 몸을 반쯤 기울이고 있었다. 아빠는 그런 엄마를 한쪽 팔에 무겁게 매단 채로 꼿꼿이 앞만 보고 걷고 있었다. 너는 한 번도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머리를 기울이고 있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엄마의 몸은 지나치게 아빠에게로 치우쳐 있었다. 엄마의 사랑이 그랬던 것처럼. 너는 오빠 곁에 바짝 붙어 조심조심 걸었다. 함부로 건드렸다간 곤히 잠든 바닷속의 야수가 느닷없이 깨어나 가족들을 한꺼번에 삼켜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리면서.
엄마는 바닷가에서 배를 타고 한참을 더 들어가야 나오는 작은 섬에서 태어났다. 그 섬의 이름은‘영원도’라고 했다. 암만 생각해도 거짓말 같이 느껴지는 이름이었다. 엄마는 자신이 낳은 아이들의 이름을 섬 이름을 따서 짓기로 했다. 아들을 낳으면 원으로, 딸을 낳으면 영으로. 그래서 너는 영이 되었고, 오빠는 원이 되었다. 엄마는 너와 오빠를 한꺼번에 ‘영원아’라고 부르기도 했다. 영원도는 엄마에게 특별한 곳이었다. 아빠를 처음 만난 곳이기 때문이다. 그때 아빠는 대학생이었고 엄마는 아직 애티를 못 벗은 중학생이었다. 엄마는 섬과 자신의 운명적인 사랑을 결부시키고 싶어 했다. 사랑의 전리품과도 같은 너와 오빠를 섬에 데려가고 싶어 했다. 엄밀히 말해 그것은 불안 때문이었다. 엄마는 왜 아이를 둘이나 낳았으면서도 사랑을 잃을까 봐 두려워했던 것일까? 이따금 엄마가 자신의 사랑을 완벽히 숨길 줄 아는 거짓말쟁이였더라면, 아빠가 떠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엄마 자신도 했을 것이다. 자신에 대한 지독한 환멸과 함께.
바닷가에 도착한 날 오후부터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필 장마가 시작된 것이었다. 네 사람은 작은 여관방 안에 쭈그리고 앉아 창문 밖으로 퍼붓는 빗줄기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지금도 생생히 떠오르는 건 엄마의 동동거리는 발소리와 안절부절못하던 목소리.
“비가 조금 그쳤잖아. 이럴 때 배를 타러 가야 해. 배를 타야 한다니까.”
하지만 바닷가에 머무는 동안 배는 한 번도 뜨지를 못했다.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가족 여행은 그렇게 찝찌름한 비 냄새와 어둑어둑하고 검게 멍든 하늘, 후퇴의 북소리처럼 시끄럽게 울려 퍼지던 빗소리가 범벅이 되어 어떤 아름다움도 남기지 못했다. 아빠가 숙소 근처 횟집에서 떠온 생선회의 시굼시굼한 피비린내만이 오랫동안 콧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때 이후로 너는 바다가 통째로 싫어졌다.
잊을 수만 있다면 잊고 싶은 것들이 있을까? 엄마에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잊고 싶은 기억이었을까? 영원도로 가는 배를 타지 못해 끝내 눈물까지 보였던 그날의 여행이 엄마의 가슴속에 마지막까지 남겨 두고 싶었던 아빠와의 마지막 추억이었을까? 너는 태엽을 감듯 기억을 되감아 원하는 순간에 모든 걸 멈춰버릴 수만 있다면 어떤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은지 생각해 보았다. 적어도 그날의 바닷가는 아니었다. 그보다 더 이전, 엄마가 너를 낳지도 않고 오빠를 낳기도 훨씬 전이던 어느 때, 바닷가에 맨발로 달려나가 불가사리를 맨손으로 잡고 눈동자 가득 별을 담고 머나먼 육지를 아득하게 바라보았을 엄마의 어린 시절.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너는 모든 기억을 지워버려도 하나도 아깝지가 않을 것 같았다.
재이는 너의 변화를 민감하게 알아차렸다. 꼭짓점 하나가 힘을 잃으면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삼각형은 맥없이 허물어져 버리는 법이다. 너는 앉지도 서지도 못한 채 절절매는 인상을 풍겼을 것이다.
“누나, 무슨 일 있죠?”
“왜?”
“누나만 모르지. 회사 다닐 때도 그랬어요. 누나 얼굴엔 다 쓰여 있었어요. 지금 많이 힘들다고.”
“내가? 감정을 잘 숨긴다고 생각했는데 혼자만의 착각이었던 거야?”
“생각보다 사람들은 그러지 못하더라고요. 그리고 그런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는 사람도 많지 않고요. 다들 알면서 속아주거나 모르는 척하는 거뿐이죠. 피차 그게 편하니까요.”
“아…….”
“누나, 해결해 줄 수는 없겠지만 도와주고는 싶어요. 이 대리님 장례식날 기억해요? 사실 그날만큼은 누군가 내게 손 내밀어주길 바랐거든요. 그날 새벽 벽에 기대어 잠들어 있는 누나를 보고 잠시 행복했어요. 누군가 내 곁을 지켜주고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더라고요. 고맙다는 말도 안 한 건 말로 갚을 수는 없는 일이라서 그랬어요. 나도 누나에게 손 내밀어주고 싶었어요. 언젠가 누나에게 꼭 필요한 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