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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만 밝히면 인용해도 상관없지 않을까요?

2025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 기념 저작권 글 공모전 응모작 (1)

by 소위 김하진

저는 ‘부사가 없는, 삶은 없다’라는 에세이를 출간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예비 저자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저작권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작권법에 따르면 “저작물”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을 말합니다. 사실상 인간이 만들거나 표현한 모든 것들이 저작물에 해당하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게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작권에 대한 내용은 작가가 되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아야 하고 세심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책은 부사들을 다릿돌 삼아 삶을 들여다보고 거기에서 깨달은 것들을 글로 쓴 에세이입니다. 그러다 보니 매번 글에 새로운 부사가 등장하고 그 부사에 대한 뜻풀이도 함께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뜻풀이부터가 문제였습니다. 저는 별다른 생각 없이 네** 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뜻풀이를 적어 넣었거든요. 사전은 그냥 다 같은 사전이라고만 생각한 겁니다. 하지만 출판사에서는 공신력 있는 곳의 뜻풀이를 사용하되, 출처를 명확히 밝히기만 하면 사용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바꾸자고 제안하였습니다. 그것이 가능한 데가 바로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이었습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의 저작권 정책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2.0 대한민국 라이선스’가 적용되는 본 누리집의 자료는 누구나 상업적 용도까지 포함하여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으며 저작자의 특별한 허가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명문으로 상업적인 사용까지 허락해 주고 있으니 출처만 밝힌다면 아무런 제약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에 따라 제 책의 4쪽 하단에는 ‘일러두기’로 이 내용을 명시해 두었고, 책 안의 모든 뜻풀이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와 있는 것으로 교체하였습니다.


이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제 책에는 대중가요의 가사나 시, 그리고 책 속의 구절 등이 출처와 함께 ‘직접 인용’되어 있었습니다. 출판사에서는 이 역시 정중하게 수정해 줄 것을 요청해 왔습니다. 이유는 이러했습니다. 모든 창작물은 저작권자에게 허락을 구한 후 이용하는 게 원칙이며, 출처를 밝히는 건 단지 타인의 저작물임을 알리는 표시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모든 저작권자에게 일일이 허락을 구하려면 출판에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될 것이며, 저작권 사용료 문제도 생길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정당하고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보조적인 역할’로만 인용한다면 저작권을 침해하는 게 아니라는 해석이 있다면서, 저의 인용 역시 보조적 역할만 하는 것으로 수정한다면 큰 무리가 없겠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아무리 출처를 밝힌다 해도 원문 그대로 저작물 일부를 마음대로 가져다 쓰는 것은 저작권법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실제 저작권법을 찾아보니 저작물의 일반적인 이용 방법과 충돌하지 아니하고 저작자의 정당한 이익을 부당하게 해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다고 나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작물 이용 행위가 이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할 때에는 ‘이용의 목적 및 성격, 저작물의 종류 및 용도, 이용된 부분이 저작물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그 중요성, 저작물의 이용이 그 저작물의 현재 시장 또는 가치나 잠재적인 시장 또는 가치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저의 책은 공익이나 비영리적 목적이 아닌 사적 영리를 목적으로 출판되는 것입니다. 판매 수익을 전액 기부한다고 해도 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는 책을 출간함으로써 저자로서의 명예라는 사적 이익을 취하게 되는 것이니까요. 그러므로 다른 저작권자의 이익을 절대로 침해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인용이 글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지나치게 크면 안 되는 것이겠죠. 원저작물의 출처를 밝히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더불어 인용이 보조적이고 부수적인 역할을 하는 정도에만 그친다면 저작권을 해치는 위험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문제가 될 만한 소지가 있는 부분은 모두 다 수정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으로였습니다.


그러다 문득 나희덕의 <허공 한 줌>이란 시가 스쳐 지나갔다. 죽은 엄마는 난간에서 굴러떨어진 아기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죽어서도 정말로 죽지 못하고 아기를 안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아기가 무사하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 놓고 죽을 수 있었다. 이 시를 처음 읽던 날 나는 아들의 어릴 적 추락 사고가 떠올라 한동안 심장이 멎은 듯 먹먹했었다.

- 소위, 부사가 없는, 삶은 없다


애초엔 시의 일부를 있는 그대로 가져와 직접 인용했었습니다. 시의 분위기와 표현까지도 생생하게 전달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저작자의 허락을 구해야 하는 것이 옳겠지요. 그래서 제 목소리로 시의 내용만 간략히 소개하는 정도로 바꾼 것입니다. 그러자 출판사에서도 조금은 안심하는 듯했습니다.


글을 쓰면서 인용을 아예 안 할 수는 없습니다. 명언이나 고전의 인용은 글에 신뢰성과 권위를 부여해 줍니다. 주제를 강조하기에도 좋고 글에 설득력을 부여해 주는 효과도 있습니다. 유명인의 문장이 글의 의미를 더 풍성하고 깊게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이 아는 대중가요 가사나 영화 대사는 빠르고 쉽게 독자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게 해줍니다. 인용은 적절히 활용하면 여자들의 화장처럼 장점은 부각하고 단점은 보완해 주는 기능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이 지나칠 때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어떤 책에는 엄청나게 많은 인용문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화려한 인용은 잠시 착시 효과를 불러일으킵니다. 신뢰를 주는 사람의 이름이나 유명한 문장이 글의 부족함을 그럴듯하게 포장해 주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그런 욕구와 기대가 있기에 인용을 하는 겁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 바람으로 인용문을 삽입하였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정당한 방식이어야 하며 과하지 않아야 합니다. 실제로 인용문들이 많은 책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이 많은 인용문을 모든 저작자에게 허락을 구하고 실은 게 맞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작자가 사망한 후 70년이 지난 저작물에 대해서는 저작권이 소멸하니 명언이나 고전의 인용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현재 살아 있는 저작자의 저작물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권리를 침해하는 일에 침해당하는 사람이 아닌 침해하는 사람의 기준이 잣대가 되어선 안 될 테니까요. 원칙은 원저작자에게 허락을 구해야 하는 것이 옳고, 만약 그게 힘들다면 원문 그대로 가져다 인용하는 것은 가급적이면 지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한때는 유명한 책의 일부를 인용하는 것은 출처만 명확히 밝힌다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출간을 준비하면서 보다 분명히 저작권에 대해 알게 되었고 경각심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런 원칙들을 철저히 지키지 않아도 아무 문제 없이 지나갈 수도 있을 겁니다. 세상엔 수많은 책이 있고 어디에서 어떻게 무엇이 인용되고 있는지 일일이 확인하기도 힘드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 문제도 잘못도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글을 쓰는 작가이자 한 사람의 저작자로서 자신의 저작물에 대해 양심을 걸고 떳떳할 수 있어야 하겠지요. 그러기 위해선 저작권에 대한 존중과 감사의 마음을 늘 되새겨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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