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뭐라고
소위
눈앞에 쌓여 있는 책들
담이 되어 아니 산이 되어
나를 가로막는다
누구는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대학교 교수라 하고
누구는 바다 건너 먼 나라로 유학을 다녀왔다 하고
누구는 이름도 생소하지만 대단한 상을 수상했다 하고
누구는 이혼을 세 번이나 했다 하네
어디 하나 빠질 것 없는
대단한 누구누구의 이름들이
칼이 되어 내 눈을 찌르고
몽둥이가 되어 내 다리를 부러뜨린다
내가 뭐라고
글을 쓴다지?
평범함에도 급이 있다면
나는 중의 중의 중이나 될까
높은 쪽으로나 낮은 쪽으로나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평균 인간
내가 뭐라고
글을 쓴다지?
너 좋자고 하는 거잖아.
누가 하라고 했다니?
오랫동안 웅크리고 있던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해서
나를 용서하지 못해서
모래알보다 작아진 내가
뭣도 아니었어서
생에 단 한 번은
뭐라도 되려고
글을 쓴다는데 말이야
눈앞을 가로막는 높은 담을
어디 하나 빠질 것 없는
잘난 누구누구의 이름들을
박박 밀어 지워본다
창문을 닦듯 거울을 닦듯
투명해진 소망에 나를 비추며
내가 뭐가 아니어도
그냥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