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사랑

삐삐를 아시나요?

by 소위 김하진

아날로그 사랑


소위


삐삐를 아시나요?

말괄량이 말고요

듣거나 말하거나 일방통행밖에는 못했던

그래서 설레고 그래서 잔인했던

삐삐를 아시냐고요.


주루룩 비 내리던 날

눈이 시도록 햇빛 쨍한 날

우수수 나뭇잎 떨어지던 날

달무리 으슥하게 그림자지던 날

나는 언제고 그댈 향한 그리움의 전원을 켜고

공중전화부스로 달려갔지요


전화기 너머 그대의 목소리

잘 지내니?라는 말에 '아니요'

오늘 네 생각이 났어. 라는 말에 '나도요'

빨리 만나자.라는 말에 '그래요'

동전은 딸깍딸깍 숨 넘어가는데

넣고 또 넣고 듣고 또 듣고

대답하고 또 하고


어느 날 어떤 순간

오로지 당신이 원하는 때에만

안의 삐삐는 울려댔지요

나는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밥도 먹다 말고

똥도 싸다 말고

잠도 자다 말고

공중전화부스로 달려갈 수밖에요


당신의 목소리를 무한재생할 수 있는,

동전이 딸깍딸깍 숨 넘어갈 때마다

내 안의 그리움도 바짝바짝 타들어가던

그대와 나의 일방통행 사랑

삐삐를 아시냐고요.


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