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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위 Jun 21. 2023

핑크 마티니의  Splendor in the grass

잔디가 자라는 소리를 들어봐요


어느 날 문득, 노래 한 곡이 우리의 가슴을 덜컹 내려앉게 만드는 순간이 있다. 내겐 미국 밴드 핑크 마티니의 초원의 빛(Splendor in the grass)이란 노래가 그러했다. 노래를 처음 알게 된 건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를 읽을 때였다.


가끔 왜 책을 읽느냐고, 왜 음악을 듣느냐고 누가 물을 때 이런 즐거움 때문이라고 대답합니다. 어떤 때는 삶의 위안이 되니까요. 그래서 힘들 때는 진통제를 가지고 다니듯이 음악을 가지고 다녀요. 그만한 진통제가 없는 거 같아요. 이 음악을 듣고, 삶의 속도라는 게 있구나 싶고 잔디가 자라는 속도라는 말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출처   박웅현, [책은 도끼다]


출처 Pixabay


Splendor in the grass 

초원의 빛


I can see you're thinking baby

나는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걸 알아요


I've been thinking too

나도 같은 생각을 해왔거든요


about the way we used to be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과


and how to start a new

어떻게 새롭게 시작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죠


Maybe I'm a hopeless dreamer

아마도 나는 헛된 몽상가일지도 몰라요


maybe I've got it wrong

어쩌면 내가 틀렸을지도 모르고요


but I'm going where the grass is green

그러나 나는 푸르른 초원으로 갈 거예요


if you like to come along

당신도 나와 함께 가지 않을래요


Back when I was starting out

인생의 첫발을 내디뎠을 때를 되돌아보면


I always wanted more

나는 항상 더 많은 것을 갖기를 원했어요


but every time I got it

그러나 매번 알게 됐지요


I still felt just like before

나는 언제나 예전과 똑같을 뿐이라는 것을요


Fortune is a fickle friend

부유함은 변덕스러운 친구일 뿐이에요


I'm tired of chasing fate

나는 운명을 쫓는 것에 지쳤어요


and when I look into your eyes

당신의 눈을 들여다보면


I know you feel the same

당신도 나와 똑같이 느낀다는 걸 알아요


All these years of living large

사치스럽게 살아온 그간의 세월이


are starting to do a sin

죄악의 시작이에요


I won't say it wasn't fun

나는 내가 즐겁지 않았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에요


but now it has to end

그러나 이젠 끝내야만 해요


Life is moving oh so fast

인생은 너무 빠르게 흘러가고 있어요


I think we should take it slow

나는 이제 조금 천천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rest our heads upon the grass

우리의 머리를 초원으로 향하고 쉬어봐요


and listen to it grow

그리고 잔디가 자라는 소리를 들어봐요


- 간주곡 -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Going where the hills are green

푸르른 언덕이 있고


and the cars are few and far

자동차가 거의 없는 곳으로 떠나면


days are full of splendor

 낮에는 눈부시게 찬란한 빛으로 가득 차죠


and at night you can see the stars

그리고 밤에는 빛나는 별들을 볼 수도 있어요


Life's been moving oh so fast

인생은 너무 빠르게 흘러가고 있어요


I think we should take it slow

나는 조금 천천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rest our heads upon the grass

우리의 머리를 초원으로 향하고 쉬어봐요


and listen to it grow

그리고 잔디가 자라는 소리를 들어봐요



출처  Pixabay

내 나름대로 노랫말을 해석해 보았다. 번역하는 사람마다 미세한 차이가 있겠지만 큰 맥락에선 의미가 비슷할 것이다.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땐 보컬의 맑은 목소리와 편안한 선율에 마음이 이끌렸고, 가사를 새기면서 다시 들었을 땐 나도 모르게 울컥해서 눈물을 훔쳤다.


어느새 나도 쉰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지나온 날들을 되돌아보는 인생의 후반부가 시작된 것이다. 과거를 돌이켜보는 것은 단순한 후회나 회한 때문만은 아니다. 여생을 좀 더 행복하고 지혜롭게 살아가기 위한 새로운 준비를 시작하기 위함이다. 앞으로 남은 인생동안 나는 어디를 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살 만큼 산 것 같아도 여전히 생에 대한 사랑과 집착이 줄어들지 않았음을 느낀다. 그렇다. 인생은 알면 알수록 살면 살수록 더욱 애정하게 되는 것이고 열중하게 되는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인생을 몰랐던 젊은 시절엔 권태와 허무에 취해 함부로 삶을 멸시하기도 했었다. 비어 있는 깡통인 주제에 요란하게 덜컹거리며 저 혼자 잘난 체를 했다. 삶을 내 의지에 따라 취할 수도 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 나는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는 짧은 영상 속에 노랫말의 의미와 정서를 충실하 담아내고 있어서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아침이 밝자 한 노인이 잠에서 깨어나는 장면으로 뮤직비디오가 시작된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를 먼저 하늘로 보내고 쓸쓸히 혼자서 살아가고 있다. 노인은 지나온 삶을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듯하면서도 회한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다. 행복을 찾을  없는 어두운 얼굴이다.


그날도 여느 날처럼 권태롭고 외로운 일상이 반복되려던 참이었다. 노인은 우연히 창밖으로 지나가는 한 소녀를 보게 된다. 알록달록한 풍선들을 손에 쥐고 가는 소녀였다. 노인은 무언가에 홀린 듯 무작정 소녀를 따라 걷기 시작한다. 길을 걷는 동노인의 얼굴에는 조금씩 미소가 번지고 생기가 되살아난다.


그런데 갑자기 소녀가 손에 쥐고 있던 풍선들을 한꺼번에 놓아버린다. 풍선들은 새장을 탈출한 새처럼 한껏 날아오르더니 도시를 떠나 집도 차도 없는 곳으로 하염없이 떠나간다. 이 장면에서 흐르는 간주곡은 차이코프스키 피아노협주곡 1번이다. 풍선들의 여행은 장중하면서도 희망찬 피아노협주곡 선율을 타고 한동안 계속된다.


노인이 도착한 곳은 달팽이가 기어 다니고 꽃들이 만개하고 풀들이 출렁이는 들판이다. 저 멀리 풍선을 들고 서 있는 한 여인의 뒷모습이 보인다. 바로 먼저 죽은 아내이다. 노인과 아내는 힘껏 포옹을 하고 소녀는 건너편에서 그들을 바라보며 환하게 미소 짓는다.

© Peggy_Marco, 출처 Pixabay



나는 아직 삶의 마지막을 준비할 정도로 늙진 않았지만  누구도 인생의 끝이 언제 올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뮤직비디오 속의 노인처럼 혼자 남아 깊은 회한과 그리움에 사무쳐 쓸쓸히 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하루하루를 아무런 보람도 즐거움도 없이 삶을 연명하게 된다면 얼마나 허망할까?


노랫말과 뮤직비디오가 공통적으로 전달하는 메시지는  삶의 속도이다. 천천히 속도를 늦추며 살아야 인생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뮤직비디오 속 노인은 거리의 악사 곁을 지나가고 청소하던 노인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고 몸이 불편한 할머니를 도와드리면서 점점 얼굴에 환한 미소가 가득해진다.  우리는 지금 여기, 곁에 있는 이들을 찬찬히 바라보고 사랑할 때에야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


이제라도 잔디가 자라는 소리를 들으며 살아야겠다.  삶의 속도를 점검하자. 빨리빨리 성큼성큼 앞만 보고 걷는 사람들, 하늘의 별도 달도 쳐다보지 않고 계절의 흐름에도 둔감해진 사람들,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 누군가를 이기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사람들은 속도에   지배당하고 있다. 레이싱 트랙 위에서 달리고 달리다  언젠가 생의 막바지에 속도를  멈추었을 때 남는 건 현기증과 현실에 대한 이질감뿐일지도 모른다. 방향도 없이 속도만 내온 삶에 대한 뒤늦은 후회가 밀려올 것이다. 그만 속도를 내려놓자. 나는 오늘도 내게 소중한 것들을 살피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아끼며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한 '나만의 삶의 속도'를 찾는다. 조금은 느리게 느리게!!


https://youtu.be/IcOGbIBpH-I



잔디가 자라는 속도,

정 많은 나뭇가지가 가을바람에 나뭇잎을 하나씩 하나씩 내려놓는 속도,

그 똑같은 나무가 다부진 가지마다 이미 또 다른 봄을 준비하고 있는 속도,

 아침마다 수영장 앞에서 만나 서로 눈인사를 주고받는 하얀 강아지가 자라는 속도,

내 무릎 사이에서 잠자고 있는

고양이가 늙어가고 있는 속도,

부지런한 담쟁이가 기어이

담을 넘어가고 있는 속도,

바람이 부는 속도,

그 바람에 강물이 반응하는 속도,

별이 떠오르는 속도,

달이 차고 기우는 속도,

내 인생을 움직이는 질문.

내 인생을 움직이는 질문은 오직 하나.

어떻게 하면 그 속도에 내가 온전히 편입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자동차 달리는 속도가 아니라

 잔디가 자라는 속도로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 숨 쉬는 속도가

바닷가 파도치는 속도와 한 호흡이 될 수 있을까.

내 인생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다.


출처  박웅현, [내 인생의 질문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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