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레델마이어(Bill Redelmeier) 인터뷰
와이너리의 오너(Owner)라고 하면 흔히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잘 다려진 슈트, 고급 세단, 그리고 우아한 테이스팅 룸에서 지시를 내리는 모습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사우스브룩(Southbrook)의 빌 레델마이어를 만난 후, 내 머릿속의 그 이미지는 완전히 산산조각 났다.
와이너리의 오너(Owner)라고 하면 흔히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잘 다려진 슈트, 고급 세단, 그리고 우아한 테이스팅 룸에서 지시를 내리는 모습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사우스브룩(Southbrook)의 빌 레델마이어를 만난 후, 내 머릿속의 그 이미지는 완전히 산산조각 났다.
그가 말한 도요타 시에나는 그의 재력에 비해 소박하다. 기사가 운전하는 뒷좌석이 아니라, 직접 운전대를 잡고 뒷좌석 가득 와인 박스를 싣고 지금도 직접 와인을 배달한다. "왜 직접 배달까지 하세요?" 나의 우문에 그저 웃으며 당연한 일상이라는 듯 말했다. 이 장면 하나가 그라는 사람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는 권위라는 껍데기 대신, '진심'이라는 알맹이를 선택한 사람이다.
자연을 지배하지 않는 농부
인터뷰 내내 그가 가장 많이 강조한 말은 "Don't dominate nature(자연을 지배하려 하지 마라)"였다. 나이아가라의 기후는 최근 들어 우리가 알던 범주를 벗어나고 있는 지금, '지구 온난화(Global Warming)'가 아닌 '지구의 기이해짐(Global Weirding)'이라고 표현했다.
내가 2050년의 와인 메이커들에게 해줄 조언을 묻자, 기술이나 자본이 아닌 '회복력(Resilience)'을 이야기하며 자연이 주는 시련, 그 극단적인 변화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자연을 억지로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변화의 파도를 타는 유연함과 회복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열정과 고집, 그 사이 어딘가
다른 CEO들이 경영 수치에 골몰할 때, 빌은 뉴스레터를 직접 쓰고 'Varietal Masterclass'를 열어 소비자들을 직접 가르친다. 내가 "왜 그렇게까지 직접 소통하려 하느냐"라고 묻자, 그의 대답은 명쾌했다. 자신이 가진 지식을 나누고, 고객과 눈을 맞추는 것이 그에게는 경영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수십 년간 유기농과 바이오다이내믹이라는, 남들이 가지 않는 험난한 길을 걸어온 원동력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단어는 'Passion(열정)', 그리고 'Stubborness(고집)'이었다. 좋아서 하는 '열정'만으로는 부족했다. 모두가 "그건 힘들다, 안 된다"라고 할 때 밀고 나가는 그 '똥고집'이 지금의 사우스브룩을 만들었다. 와이너리의 다음 단계(Next Step)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거창한 확장이 아닌, "Increasing Quality(품질을 높이는 것)"라고 답했다.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 가장 기본이지만 가장 어려운 그 길을 그는 또다시 고집스럽게 걸어가려 한다.
"Eat Better"
마지막으로 한국의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그는 와인을 고를 때 그저 '프랑스', '이탈리아' 같은 유명한 나라나 지역에 갇히지 말라고 조언했다.
"Earth+Wine은 국경으로 나뉘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유명한 라벨을 좇기보다, 'Eat Better', 즉 더 나은 것을 먹고 마시는 삶의 태도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땅에서, 어떤 철학으로 자란 포도인지, 그 본질을 들여다보라는 그의 말은 밥상 위의 건강을 중요시하는 우리 한국인들의 정서와 깊이 맞닿아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나는 문득 내 삶을 돌아보았다. 공직을 떠나 여행 작가라는 제2의 인생을 시작한 나에게도, 빌과 같은 '고집'이 있을까? 편안한 길을 두고 굳이 험한 길을 택할 '열정'이 남아있을까? 낡은 도요타 시에나에 와인을 싣고 떠나는 그의 뒷모습이 오랫동안 눈에 밟혔다. 자신의 철학을 싣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한 위대한 농부의 숭고한 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