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사는 2년 동안 나는 두 번의 특별한 순간에 경복궁을 방문했다. 한 번은 캐나다에서 온 절친들과 함께였고, 다른 한 번은 남편과 아이가 나를 보러 한국에 왔을 때였다.
경복궁은 나에게 늘 깊은 감동을 안겨주는 곳이다. 비록 많은 사람들로 붐비긴 하지만, 나는 그곳의 모든 건물과 공간을 사랑하며, 그 속에서 한국의 깊은 역사와 문화를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이 많은 걸 빼곤 모든 빌딩에 들르는 걸 좋아한다. 경복궁에 들어서면 한국에도 '외국인이 정말 많이 오는구나. 한국 문화에 관심이 아주 많구나'를 느낀다.
경복궁은 1392년 조선 건국 후 1395년(태조 4)에 창건한 조선왕조 제일의 법궁이다. 그 웅장한 역사는 조선의 탄생과 함께 시작되었지만,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인해 불타 사라졌다. 그 후 270여 년간 복구되지 못하다가, 1867년(고종 4) 고종 대에 이르러 다시 그 모습을 되찾았다. 특히, 고종은 건청궁과 태원전, 그리고 집옥재 등의 건물을 새로 조성하며 경복궁의 위용을 다시금 세상에 드러냈다. 그러나, 건청궁 옥호루는 1895년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비운의 장소이기도 하다.
내가 캐나다에서 온 절친들과 함께 경복궁을 방문했을 때, 그들은 경복궁의 웅장함에 감탄했다. 그들은 필리핀 친구들 출신으로, 캐나다에 정착한 지 30년이 넘었고, 이제는 가족 같은 존재다.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은 그 자체로도 놀라운 역사적 상징성을 지닌다. 광화문은 한국전쟁 때 폭격을 맞아 소실되었으나, 2010년에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그 웅장한 문을 지나 경복궁 안으로 들어서면, 나는 자연스럽게 경회루와 집옥재로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내가 특히나 좋아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경회루는 경복궁의 침전 영역 서쪽에 위치한 연못 안에 세워진 누각으로, 왕이 신하들과 연회를 열거나 외국 사신을 접대하던 곳이다. 경회루 앞에 서면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게 된다. 그곳의 풍경은 언제나 아름답고, 사계절 내내 다른 모습으로 나를 매료시킨다.
또 다른 내가 좋아하는 장소는 집옥재다. 1891년(고종 28), 창덕궁의 별당이었던 집옥재와 협길당은 건청궁 서쪽으로 옮겨지은 것으로, 고종의 서재와 외국 사신을 접견하던 장소로 사용되었다. 집옥재는 경복궁의 내 전각 중 유일하게 현판이 세로형으로 되어 있어 그 독특한 매력을 한 층 더해준다.
경복궁은 나에게 단순히 관광지가 아니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깊이 있게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며,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지점이다. 비록 친구들과 가족들의 한국에서의 생활은 짧았지만, 그 안에서 경복궁을 방문하며 느낀 감동과 깨달음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아 있을 것이다.
이번에도, 또 앞으로도 나는 경복궁에서 또 다른 역사의 숨결을 느끼며 그 아름다움을 만끽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