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살에 캐나다로 이민가다
이민은 바라던 대로 멋진 일일까? 어떤 이는 캐나다를 새로운 보금자리로 택하기도 하고 또 다른 이는 경쟁사회에 지친 나머지 도피처로 택하기도 한다. 저마다 다른 이유로 이민을 택한다. 캐나다 이민을 결정하게 된 동기는 오랜 꿈인 교수가 되기 위해서였다. 어떻게 이 꿈을 갖게 되었는지 꺼내려니 오랜 시절을 거슬러 가게 된다.
1990년 대학교 1학년, 영어에 관심을 두게 된 시절. 어느 날 학교에 걸린 TOEIC 모의시험 배너를 보게 되었다. 저게 뭐지? 하는 호기심으로 시험을 봤다. 리스닝(listening) 파트는 대부분 틀렸다. 머리를 ‛땡~~’ 하고 치는 날이 되었다. 평소 영어에 관심이 많고, 공부도 꾸준히 했기 때문에 정말 충격적인 결과였다. 상실감이 크고 열이 받았던 나는 영어 말하기와 듣기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외국인과 만나 소통하고 싶었지만 방법을 찾기 쉽지 않았다. 그때는 지금과 달리 거리에서 외국인을 볼 일이 거의 없었다. 지금은 유튜브와 앱을 통해 많은 정보를 구할 수 있지만 386컴퓨터 시대였던 그 시절엔 혼자 회화를 공부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고등학교에서도 읽기와 문법 중심의 공부만 해왔기에, 외국인과의 소통은 생소하고 어려웠다.
어느 날 갑자기, 미군 부대를 활용하는 방법이 떠올랐다. 무작정 용산에 있는 미군부대 정문 앞으로 갔다. 남자는 제외하고 여자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한참 서성이며 망설였다.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 갔다. ‘외국인에게 과연 내가 말을 걸을 수 있을까? 말을 건 다음은 어떻게 하지?’ 그때, 한 아주머니께서 나오셨다. 한국 사람에게도 말 걸기 어려워하는 내가 처음 본 백인 아주머니에게 말을 걸다니!
“..... cleaning your home...... you talk....”
용기 내어 한 말이었다. 집을 청소해 줄 테니, 옆에서 말만 해달라는 내용이지만 얼마나 떨리던지…지금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고 용감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 아주머니가 수락한 것이다! 그 후 여러 번 아주머니 댁에 방문해 청소를 해주고 함께 대화를 나눴다.
시간이 흐르며, 영어를 더 깊이 공부하고 싶어졌고 교수라는 새로운 꿈을 가지고 캐나다로 가는 일이 생겼다. 이때만 해도 이후에 캐나다 정부 관련 기관에서 공무원으로 일을 하게 될 줄 까맣게 몰랐다. 누구나 꿈을 정하고 그 꿈을 위해 도전하며 나아간다. 열심히 하다보면 정해둔 길이 아니더라도 기대 이상의 또 다른 꿈의 길이 열리기도 한다. 이 일을통해 꿈을 이루기 위해선 두려움에 주저하지 말고 첫 발을 내디뎌야 꿈이 시작된다는 교훈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