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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사빠 Dec 18. 2017

#4. 유럽 축구보다 지독했던 경기 中

"'사랑하냐'고 물어보면 '사랑한다'고 대답하는데, 그건 너무 당연한 거 아니니? 사귀는 중인데 여자친구가 사랑하냐고 물어볼 때 '아니'라고 대답할 사람이 어디있겠어? 나만 좋아하는 것 같아. 나만 아등바등 신경쓰는 거 같고..."

만개한 꽃길을 걸으며 마냥 행복할 줄 알았던 그녀는 만날 때마다 고민을 쏟아냈다. 내용은 조금씩 달랐지만, 고민의 뿌리는 늘 한결같았다. 본인이 남자친구보다 더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 모든 게 다 '먼저'좋아해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

사랑할 때 나와 상대방의 사랑 저울이 50:50으로 공평할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누군가 더 많이 좋아할 수도 있고, 언젠가는 상황이 역전될 수도 있다. (이렇게 조언을 해주곤했다.)

사랑하는 정도를 그래프로 나타낼 수 있다면, C는 100에서 시작했다. C의 남자친구의 사랑 수치가 어느 지점에서 시작됐는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C의 사랑 수치는 100에서 조금씩 낮아지겠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면 교차하는 지점이 생길 거고, 그때가 되면 그녀도 안정화되지 않을까.

그렇게 C는 불만투성이었지만, 그의 남자친구와 한 해, 두 해를 넘겨가며 만남을 이어갔다.

언젠가는 이런 적도 있었다. 남자친구가 C에게 '피부'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고. "요즘 많이 피곤하니? 뾰루찌랑 이런 게 유독 눈에 띄네"라는 말. 다른 사람이이 한 말이라면 그냥 그러려니 흘려듣겠지만, 좋아하는 사람에게 그런 말을 들었다는 것에 속이 상한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거울 앞 자기자신에 대해 '못생겼다. 돼지같다'며 불평하기 시작했다.

작고 단순한 지적이 그녀의 마음을 후벼파고 들어간 걸까. 10년 넘게 알고 지낸 C는 결코, 절대, 본인을 과소평가한 적이 없었는데 그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남자친구를 언급하면서 '열등감'에 휩싸인 모습은 안타까울 정도였다. 차라리 그 남자와 헤어지라고 따끔하게 일침을 놓기도 했다.

"그 남자랑 사귀다가 너의 정신건강만 나빠질 것 같아. 행복해지기 위해서 연애하는 거 아니었니? 지금의 너를 봐. 전혀 행복해보이지 않아. "

정말 기가 막힌 타이밍인 게 그때 카페에서는 버벌진트의 '충분히 예뻐'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스쳐지나가는 한 마디의 말이 특정 누군가에게는 저렇게 큰 상처를 남길 수도 있다는 걸 C를 통해 알게 됐다. 그리고 그때 이후로 그 남자친구가 외모지적을 한 적이 없음에도 C는 늘 자신의 외모에 지나치게 신경썼다.

그리고 한동안은 잠잠했다. C에게서 별다른 연락은 없었다. 남자친구와 잘지내냐고 물어보면, 잘지낸다는 대답뿐이었다.

찜찜하긴 했지만, 잘지낸다는 말에 굳이 토를 달고 싶지 않아서 나 역시 '무소식이 희소식'이겠거니 했다.

C가 짝사랑한 기간 약 9개월, 사귀기 시작하면서 불만과 걱정을 쏟아놓은 기간만 2년, 무소식이던 1년 반. C는 종지부를 찍었다.

"헤어졌어."

수화기 넘어 그 말 한 마디에 수많은 크고작은 일들이 카드 게임 엔딩 장면처럼 '촤르륵 촤르륵' 정리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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