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질적인 높은 실업률과 비정규직-정규직 격차 문제의 해소 방안은?
따뜻한 태양과 지중해 해변, 맛있는 음식과 여유로운 문화, 풍부한 문화유산 등으로 묘사되는 스페인은 각박한 생활에 익숙한 한국인에게는 동경의 대상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제대로 먹고 살만한 일자리가 없다면 이러한 호사들도 그림의 떡이다. 삶의 질이 높은 국가로 알려져 있는 스페인이지만 불안정한 일자리 사정 때문에 수많은 스페인 국민들이 하루하루 불안에 떨고 있다. 높으 실업률, 과도한 비정규직으로 대변되는 스페인의 취업시장은 이러한 스페인 경제의 어두운 민낯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왜 이렇게 높은 실업률과 비정규직 비율을 기록하게 되었는지, 논의되는 해결 방안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자.
1980년대 민주화 이전의 노동시장
스페인 내전 (1936~1939) 이후 프랑코 총통 독재정권(1933 ~1973년)시절 스페인의 노동시장은 정부에 의해 강하게 통제되었다. 자유노조설립과 파업, 직장폐쇄가 불가능했다. 가부장적인 문화 탓에 여성 노동자들의 시장참여도는 낮았으며, 정부는 사용자와 근로자들을 일명 수직노조(Sindicatos Verticales)로 한데 묶어 계급간의 분쟁을 막고 일률적으로 노동력을 통제하고자 하였다. 대신 고용에 대한 보호는 확실하였다. 고용은 거의 대부분 정규직(Indefinite)이었고 해고는 처벌대상이었다. 심지어 근로자가 반체제적인 행위로 수감생활을 하더라도 다시 일터에 복귀할 수 있었다. 대표적인 공산주의자였던 마르셀리노 카마쵸(Marcelino Camacho)는 수감생활을 하고 나서도 항상 그의 금속작업장에 복귀할 수 있었다. 그는 1975년 프랑코 총통의 사망 이후 스페인 양대노조 가운데 하나인 노동자위원회(CCOO)의 초대 사무총장에 올랐던 인물이다.
석유파동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는 고실업률의 그늘
프랑코 정권 마지막 10년 간 스페인은 연평균 실업률 2% 이내의 완전고용 상태를 유지하였다. 이는 생계유지를 위한 겸업(Pluriempleo)과, 여성들의 낮은 노동시장 참여율, 대규모 해외이민 등에 의해 가능하였다. 1950년부터 1973년 기간 동안 대략 275만 명의 스페인 국민이 해외로 이주하였다. 때문에 경제활동인구와실업인구가 줄어 실업률도 낮게 측정되었다. 스페인의 실업률은 1970년대 오일파동과 함께 요동치기 시작했다. 1975년 한 해 독일에서 근무하던 20만 명의 스페인 근로자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등 유럽 경기 침체로 많은 해외 근로자들이 본국으로 복귀하고, 어두운 취업전망에도 스페인의 농촌인구는 끊임없이 도시로 유입되면서 실업률을 올라갔다. 1973 ~ 1985년 사이 1백만 개의 농업 일자리와 1.2백만 개의 제조업, 건설업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실업률이 1980년 10%, 1984년 20%를 각각 돌파하였다.
1980년부터 2020년까지 평균 실업률 17%를 기록할 정도로 스페인은 어느 순간부터 대표적인 고실업률 국가가 되어버렸다. 여성들의 사회활동 증가, 대규모 이민자 유입으로 1985~2020년 사이 스페인의 노동인구는 11백만명에서 20백만명으로 2배 가까이 늘어났지만, 인력 수요만큼 일자리는 충분하게 늘어나지 않았다. EU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스페인의 고용률(15~64세 생산가능인구 가운데 취업인구 비율)은 60.1%로 EU 평균(67.6%)과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스페인에 존재하는 전체 일자리 가운데 4분의 1 가량이 초등교육만으로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단순 노동 일자리로 이 비중은 OECD 평균의 두 배에 달한다. 2018년 OECD의 보고서에 따르면 교육수준 향상으로 스페인 내 고등교육을 받은 젊은이들 수는 늘어났지만, 이들의 능력에 적합한 일자리 부족으로 많은 이들이 자신의 전공과 관계없는 단순직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인력시장 내 미스매치 현상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1980년 이후 스페인의 실업률은 부동산 호황기를 누렸던 2002 ~2008년을 제외하고는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미국보다 항상 5% 이상 높았다. 1990년대 초반에는 10% 이상 높았고, 2013,2014년에는 격차가 20% 이상 벌어지기도 하였다. 경기호황의 정점에 있었던 2007년에도 스페인의 실업률은 8%을 찍고 있었다. 2013년 한 때 27%까지 치솟았던 실업률은 10% 초반까지 회복되었지만 2020년 불쑥 들이닥친 코로나 19로 인해 실업률은 다시 상승하고 있다. 특히, 청년실업이 심각한데 스페인통계청(INE)이 발표한 2020년 25세 이하 청년 실업률은 무려 38.2%였다. 스페인 내 남북지역 간의 실업률 격차도 상당하다. 제조산업이 발달한 북부 파이스 바스코(País Vasco)와 나바라(Navarra) 지역의 2020년 실업률은 10% 미만이었지만, 경제가 낙후된 남부 안달루시아(Andalucía)의 실업률은 두 배가 넘는 22.3% 달했다. 거기에 실업자들 가운데 38%가 1년 이상의 장기실업자였다. 구직기간이 길어질수록, 나이가 많아질수록 취업이 더 어려운게 일반적이라 이들에 대한 고용 해결책을 찾기는 여간 쉽지 않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사실은 수치상으로는 상황이 심각한데 실제 스페인에서 굶어죽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스페인의 탄탄한 사회보장제도를 바탕으로 실직자들은 실업급여, 가족친지들의 지원, 지하경제활동 등으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스페인 노동시장 문제의 핵심, 극명한 정규직-비정규직의 차별구조
과거 프랑고 집권체제 하의 철통 같은 고용보호의 잔재는 지금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1970년대 후반 민주화 물결로 새로운 노조들이 설립되기 시작되었는데 이들은 정치적 자유를 무기로 프랑코의 경직적인 노동법 체제를 본인들의 고용 보호수단으로 적극 활용하였다. 석유 파동 이후 실업률이 20%에 달하였던 1984년 사회당(PSOE) 펠리페 곤살레스(Felipe Gonzalez) 정권은 실업문제를 해결하고자 비정규직 제도를 스페인에 처음 도입하였다. 1986년 유럽공동체(EC) 가입 및 자유 시장경쟁 체제로의 편입을 앞두고 기업인들은 경직된 고용규제 방식때문에 자국 기업들이 역내 여타 회원국들과의 경쟁에 불리하다며 불평했다. 비정규직 계약은 효과가 빠른 임시적 처방이었는데, 스페인 고용주들은 이를 지나치게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1997년 취업인구의 3분의 1 가량이 비정규직 계약을 맺고 있었는데 EU 평균의 3배에 달하는 수치였다. 자연스레 스페인 노동시장 내에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차별적인 이중구조(Dualidad)가 형성되었다. 기존 제도권 영역에 들어와 확실한 보호를 받는 노동시장의 내부 인력과 그렇지 못한 외부인력으로 철저히 구분되었다. 고용 보호를 받지 못했던 비정규직 종사자들은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 제일 먼저 일자리를 잃었다. 비정규직 계약 남발에 따른 피해는 노동시장에 갓 들어온 청년들에 집중되었다. 비정규직 인력이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으며 이들은 경기에 따라 고용과 실업상태를 반복하였다. EU통계청 발표기준 2020년 스페인의 비정규직 비중은 20.1%로 EU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
실업문제의 악화요인: 이민자 유입 , 낮은 학업성취도, 낮은 생산구조, 지하경제
스페인의 실업률은 구조적 문제와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타난 결과물이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대규모 이민자 유입이다. 이민법 완화 등의 영향으로 2000년대 들어 스페인으로 들어오는 해외 이민자(특히, 중남미 지역) 수가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전반적인 교육수준이 낮았던 이들은 주로 건설, 농업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입되었는데 한 때 비EU회원국 이민자 출신의 건설 노동자 수는 330만 명에 달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촉발된 부동산 버블 붕괴로 건설분야에 대규모 실업사태가 발생했다. 2008 ~ 2018년 사이 에만 130만 명의 건설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2020년 현재 비EU회원국 외국인의 평균 실업률은 26.9%로 스페인 자국민의 실업률 14.1%보다 12.8%p 더 높다.
취업을 하고자 하는 청년들의 낮은 학업성취도 낮아 취업 경쟁력이 떨어지는 면도 있다. 2000년대 들어 부동산 호황이 이어지자 많은 남학생들이 중학교만 마치고 일찍히 취업시장에 뛰어 들었다. 당시 이들 건설 노동자들의 급여수준은 대학 교수와도 별 차이 나지 않는 수준이었기에 학업에 흥미를 잃은 많은 학생들이 학업을 중단할 유인은 충분해보였다. 부동산 붐이 한창이던 2006년 조기 학업포기율은 30%에 달했다. 부동산 버블 붕괴로 실직한 이들은 중등교육 이후 학업을 포기한 저숙련 인력들이어서 이직도 하지 못한채 실직자로 남게 되었다.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안정적인 직장을 구할 확률이 높다. 2019년 기준 18~24세 스페인 청년들 중 17.3%가 고등학교 과정을 이수하지 못한 것으로 집계되었는데 이는 EU 최고수준이다. 다행히 2010년대 들어 극심한 경제위기로 취업시장이 크게 위축되면서 어린 학생들의 학업 포기율이 점차 낮아지고 있다. EU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20~34세 Nini족(청년들 중 공부하지도 않고 일하지도 않는 / 영어로 Neet족) 비중은 EU 평균보다 2.4%p 높은 18.7%%를 기록하였다. 물론 민주화 이후 지금까지 스페인 국민의 교육수준은 유럽의 다른 국가들에 비해 눈에 띄게 발전하였다. 성인의 40% 이상이 부모들보다 높은 교육수준을 갖추고 있고, 3세 이하 영유아 취학 등록율은 거의 100%에 가까워 OECD 전체 국가들 가운데 최상위권에 있다. 그럼에도 전반적인 학업성취도를 끌어올리기 위한 스페인 정부의 고민이 크다.
앞서, 많은 이민자들과 어린 학생들이 건설현장에 뛰어들었다고 언급했는데 그만큼 스페인 경제가 관광, 건설 등 생산성이 낮고 노동집약적인 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것이 사실이다. 이들 산업은 경기에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에 고용시장도 이에 따라 불안하게 움직인다. 일자리의 부가가치가 낮기 때문에 해당 근로자를 지키고자 하는 유인도 떨어진다. 언제든 쉽게 대체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교육훈련 등 인력에 대한 투자의 필요성도 덜 느낀다. 경기가 나빠지면 비정규직 노동자들부터 빠르게 정리해서 인건비를 줄이는 것이 흔한 대응방식이다.
젊은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통계에 잡히지 않는 지하경제활동으로 생활을 영위하고 있어 실업률이 높게 측정된다는 다소 흥미로운 분석도 있다. 지하경제활동을 하는 이들은 비공식적인 어둠의 경로로 생계를 유지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실업자로 분류된다. 2019년 IMF의 유럽 지하경제 연구 보고서(Explaining the Shadow Economy in Europe: Size, Causes and Policy Options)는 2016년 기준 스페인의 지하경제 규모를 GDP대비 20.3%로 추정한 바 있다.
2012 노동개혁의 성과와 한계
스페인은 지난 수십년 간 노동시장을 선진화 하고자 숱한 노력을 펼쳤다. 1980년 노동자 권리장전(Estatuto de los trabajadores)을 제정한 이래 2015년까지 50개가 넘는 노동시장 개혁을 단행하였다. 세계 어떤 다른 나라도 이렇게 많은 노동시장 개혁을 단행한 적은 없다. 그럼에도 스페인의 노동시장은 잘 돌아가지 않는다. 2012년 국민당(PP) 정부는 부동산 버블 붕괴와 함께 맞이한 경제위기를 계기삼아, 노동시장의 유연안정성(Flexicurity) 확보를 목표로 노동개혁을 진행하였다.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사측에 산별 단체협약에서 결정 대신 회사 개별 단체협약 사항을 우선 하도록 하여 급여 등의 핵심 근로조건을 사정에 맞게 조정할 수 있도록 하고, 경기변동 등의 대외환경 변화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유도 (스페인은 EU에서 프랑스와 더불어 노조조직률은 낮은 반면, 단체협약적용률은 높은 국가임)
경영적・기술적・조직적 사유 등으로 인하여 사측이 단체협약 사항의 일부를 거부하고 임금 등을 조정할 수 있는 권리 부여
단체협약 만료 시 기존 협약의 자동연장 기간을 1년으로 제한하여 노사 양측의 활발한 협상 유도
해고에 대한 사전허가 제도를 폐지하는 등 해고 절차를 간소화 하고 정당한 해고 요건을 완화
부당 해고에 대한 기업의 보상금 지급과 관련, 근속년수 1년 당 33일치 급여로 단일화 시키고, 최대 지급 상한선도 최대 42개월분에서 24개월로 하향 조정
50인 이상 해고 시, 해고 대상자에 대한 직업훈련교육 및 재배치 프로그램 운영 의무 부과
사업 리스크와 변동성으로 인력 채용에 부담을 느끼는 스타트업과 같은 소규모 기업들의 고용을 촉진하기 위해 50 인 이하 기업에 한 해 '신생 기업가 지원 근로계약(Contrato de Apoyo a Emprendedores)'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고용계약을 도입하고, 1년 동안 시험 고용을 진행한 기업에겐 1인당 3,000유로의 감세 혜택을 부여 (1년 이후 자유로이 해고 가능)
기존의 견습 계약(contrato de formación y aprendizaje)을 수정하여 근로 기간과 시간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동 계약을 맺을 수 있는 나이 기준을 25 세에서 30 세까지 확대
2012년 노동개혁 이전의 스페인은 OECD 고용보호법제*(Employment Protection Legislation: EPL) 지수는 비교적 높은 나라였다. 동 지수는 법제도가 개인/단체별 고용을 얼마나 엄격히 보호하는지를 국가별로 평가한다. 2011년 IMF는 '국제적 관점에서의 스페인 노동시장 분석(The Spanish Labor Market in a Cross-Country Perspective)'이란 연구보고서에서 실제 기업들의 해고비용 및 사유증명 절차 등을 감안했을 때 스페인의 정규직에 대한 고용보호는 명목적인 EPL 지수보다도 훨씬 높다고 평가하였다. 근로자 해고 시 지급하는 해고수당은 EU15*개국 평균에 비해 2배 수준이었다. 그만큼 정규직에 대한 해고장벽이 높다.
*오스트리아, 벨기에, 덴마크, 핀란드, 프랑스, 독일, 그리스, 아일랜드,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포르 투갈, 스페인, 스웨덴, 영국
2012년 노동개혁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는 측면이 있다. 당장 스페인의 실업률 수치는 2014년을 기점으로 호전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지표 개선이 노동개혁의 효과에 기인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스페인 재계와 IMF 등의 국제 기관 등은 노동개혁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스페인의 경제회복 및 노동시장 상황 호전에 기여한 것으로 보았다. 고용의 유연성을 확대시켜추가적인 고용파괴를 억제하는데 효과적이었다면서 더 많은 유연성 확보를 요구하고 있다. 개혁을 추진한 국민당(PP) 측은 적절한 임금조정은 기업의 가격경쟁력 향상 및 수출 상승으로 이어져 GDP 성장의 대외 기여도를 높였다는 분석과 함께 고용탄력성(고용 성장률 / GDP 성장률)도 개선된 것으로 결론지었다. BBVA경제연구소 역시 노동개혁이 경제위기 직후 시행되었다면 스페인의 실업률은 20% 이내로 관리할 수 있었을 것이란 자체 연구자료를 발표하였다. 반면, 노조 측의 입장은 매우 부정적이다. 동 개혁이 경제활동 참가율을 오히려 떨어트리고 전체적인 고용의 질만 악화시켜 양극화를 심화시켰다고 철폐를 주장하였다.
2012년 노동개혁은 실업을 막고 고용을 창출하는데 분명 효과를 나타냈지만, 스페인 노동시장의 오랜 과제인 이중구조 문제 개선에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 노동개혁 이후 창출된 일자리의 대부분이 수일, 수주, 수개월짜리 비정규직 일자리들이었다. 높은 정규직 보호수준 때문에 경기에 따라 고용파괴와 회복이 임시직 위주로 진행되는 관행은 여전했다. 경기흐름에 민감하고 단순 서비스직 비중이 높은 관광산업의 활황도 영향을 끼쳤다. 수년 간 지속된 관광산업의 활황으로 2018년 들어서는 2008년 이후 처음으로 관광산업 종사자 수가(265만명) 건설분야 종사자(255만명)수를 넘어섰는데 35%가 비정규직 근로자였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문제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찾지 못한 가운데 2018년 이후 집권한 사회당(PSOE) 정권은 기존 노동개혁이 노동자들의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불합리한 정책이라 비판하며 되려 기존 노동개혁의 점진적인 철폐를 추진하여 왔다. 사측에 쏠렸던 노사협상 힘의 균형을 되찾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이러한 스페인 정부의 기조 변경에 야당 및 EU, IMF 등의 대외 기관들은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노동시장의 미래와 과제
2020년 코로나 19는 점진적인 회복세를 보이던 스페인 고용시장에 또 다시 엄청난 타격을 입혔다. 정부는 엄청난 자금을 투입해 임시고용해제(ERTE) 제도를 확대 적용하며 실업률 증가를 억제하였다. 코로나 19는 인공지능(AI), 로봇화, 사물인터넷 등으로 대변되는 4차 산업 혁명을 가속화 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2020.10월 다보스 포럼은 2025년까지 전 세계 85백만 개의 일자리가 로봇으로 대체될 것이라는 예측하였다. 스페인은 기존 노동시장 문제와 함께 4차 산업시대도 대비해야 하는 과제를 추가로 안게 되었다. 라이더(Rider)라 불리는 다양한 플랫폼 배달원 등과 같은 새로운 노동자 유형을 파악하고 이들에 대한 노동자 지위 규정을 명확히 하는 것이 대표적이 예다. 이들과 같은 단기, 자영업 형태의 긱(Gig) 노동자들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OECD가 발표한 2019년 '고용전망, 일의 미래(OECD Employment Outlook 2019: The Future of Work)' 보고서에 따르면 스페인의 자동화에 따른 고용상실 고위험군 비중은 OECD 전체 평균 14%보다 약 7%p 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시장 연구 전문가인 미겔 앙헬 말로(Miguel Ángel Malo) 살라망카 대학 경제학 교수는 변화에 대한 대응력 강화를 위한 평생교육,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횡단적 스킬 함양으로 대비해야 할 것이라 주장하였다. 전문가들은 IT,바이오, 환경 등과 부가가치가 높고 고용이 안정적인 4차 산업분야에 대한 공공투자를 강화해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제 기능을 발휘하고 있지 못하는 공공고용 서비스도 개선의 대상이다. 전체 취업자 가운데 국가 고용서비스를 통해 직장을 얻은 경우는 2~3%에 그칠 정도로 유명무실한 수준이다. 고용 서비스 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스페인의 고용서비스를 위한 재정지출은 결코 작지 않지만 대부분의 예산이 단순 경제적 지원에 편중되어 실질적인 재취업지원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코로나 19 이후 찾아온 또 다른 개혁의 시점
이탈리아와 함께 경제적 피해를 크게 입은 스페인은 코로나 19 이후 경제재건을 위해 EU로부터 1,400억 유로의 EU경제회복기금 지원을 배분 받았는데, EU는 지원의 선제 조건으로 근본적인 체질개선을 위한 각종 구조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스페인 입장에서는 EU 기준에 맞는 경제회복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EU는 특히, ▵국민연금 ▵노동시장 ▵시장통합 분야에서의 포괄적인 개혁안을 요구하고 있다. 노동시장 개혁과 관련하여 발디스 돔브로브스키(Valdis Dombrovskis) 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은 2021.3월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차별적인 이중구조 및 높은 청년실업률과 같은 고질적인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하는 스페인 정부의 계획안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기본적으로 EU 측은 2012년 노동개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기업의 고용 유연성 확대 기조를 이어가길 기대하고 있다. 기업별로 고용 유연성을 확보해 주면, 위기가 닥치더라도 자체적인 임금상승이나 배당억제 등을 통해 고용을 유지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가장 어려운 과제로 남아 있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격차 해소를 위한 해결방안으로는 근로계약 단일화 및 개인퇴직계좌제도 도입이 주로 언급되고 있다. 근로계약 자체를 단일화하고 정규직・비정규직에 상관없이 모든 근로자가 개인 퇴직계좌를 가지는 것이다. 고용주는 근로자가 근무하는 기간동안 급여의 일정부분을 퇴직급여로 지급하고 근로자는 퇴직 시 본인의 퇴직수당을 챙켜가는 방식으로 기업 입장에서는 과도했던 정규직 해고비용을 줄이고 신규 고용의 여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지난 40년 간 스페인은 EU4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해 왔으나 실업자, 비정규직 천국이란 불명예스러운 꼬리표를 달고 살아왔다. 숱한 정책을 펼쳤지만 정작 문제의 본질을 꿰고 낡은 제도의 벽을 허무는데는 실패했다. 스페인의 노동시장은 코로나 19는 이후 또 한번 변화의 계기를 맞이하고 있다. 고용의 안정은 곧 기본 생활의 안정을 뜻한다. 그만큼 효율적인 노동시장의 구축은 스페인 국민 생활 안정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최고의 날씨, 풍부한 문화 등 어디하나 빠질 것 없는 스페인이다. 노동시장만 잘 굴러간다면 이만큼 살기 좋은 나라도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