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적이고 비경쟁적 성격의 스페인 경제는 1986년 EC(EU전신), 1999년 유로존 가입을 계기로 역동적이고 개방적인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하였다. 산업구조도 급격히 바뀌었다. 1978년 당시 농업이 GDP와 고용에 차지했던 비중은 각각 9%와 20%를 차지였다. 2020년 농업의 GDP와 고용 비중은 각각 3 % 수준으로 산업구조의 중심이 1차 산업에서 2,3차 산업으로 넘어갔다.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유럽의 변방에서 EU의 4대 경제대국 중 하나로 성장하였다. IMF가 발표한 스페인의 구매력(PPP)기준 1인당 GDP는 $7,827에서 $42,608로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보다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였다.
스페인은 1982년 펠리페 곤살레스(Felipe Gonzaléz) 사회당(PSOE) 정권의 탄생과 함께 유럽공동체(EU전신) 가입을 본격적으로 준비하였다. 석유 수입 의존도가 높았던 스페인은 1973, 1979년 두 차례 석유파동을 겪으며 경제위기를 겪었다. 정치적으로는 1975년 프랑코 총통 사망에 따른 독재정권 체제 종료 이후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하기 전까지 어수선한 과도기에 놓여 있었다. 확실한 리더십의 부재 속에 스페인 경제는 15%가 넘는 인플레이션을 기록하며 불안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스페인은 유럽공동체의 자유시장 경쟁체제에 대비하기 위하여 주요 기간산업들의 구조조정 및 민영화를 추진하였다. 조선(1974년 기준 세계3위), 철강(1974년 기준 세계 13위) 등 비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던 주요 국유 산업을 슬림화 하였다. 1976년 기준으로 국가산업청(Instituto Nacional de Industria)이 750개에 가까운 손실 기업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을 만큼 주요 산업 전반에 걸쳐 국가가 많은 재정부담을 지고 있었다. 치열한 시장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고자 Endesa(전력), Telefónica(통신), Repsol(정유,가스) 등 수익성 높은 전략기업들을 비롯하여 국가산업청에서 관리하던 많은 공기업들이 이 때 민영화되었다. 계속해서 손실을 기록하던 스페인 자동차 제조사 SEAT는 생존을 위해 1986년 폭스바겐 그룹에 넘어갔다.
EU체제로의 편입은 스페인에 큰 경제적 수혜를 안겨다 주었다. EU회원국이 된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스페인은 각종 EU펀드의 순수혜국(net recipient)으로 남아있다. EU프로젝트에 대한 공동 펀딩을 제외하고 스페인은 1986년에서 2016년 기간 동안 스페인이 얻은 순수혜(수혜금-분담금)규모는 950억 유로에 달한다. 1990년대에는 EU로부터 얻은 순수익이 GDP의 1%를 넘었다. EU로부터 지원 받은 각종 펀드를 통해 도로, 철도, 통신망 등 국가의 핵심 인프라를 현대화 할 수 있었다. 지금의 스페인은 유럽 1위의 고속철 네트워크와 인구 75% 이상을 커버하는 광케이블 네트워크 등 훌륭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2019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이 발표한 세계 경쟁력 지수 보고서에 스페인의 인프라는 전 세계 140개국 가운데 7위에 올랐다. 다만, 허술한 계획으로 인프라 확충에 필요 이상의 비용이 낭비된 점은 아쉽다. 각종 프로젝트들이 꼼꼼한 손익 분석 없이 지나치게 낙관적인 경제 전망을 바탕으로 진행된 탓에 새로 지은 시설이 이내 골칫거리로 전락하기도 하였다. 유령 공항이 된 카스테욘(Castellón)과 시우다드 레알(Ciudad Real) 공항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시우다드 레알 공항의 경우 10억 유로의 비용을 들여 2008년 개항하였지만 4년 만인 2012년 폐쇄되었고 2016년 56.2백만 유로라는 헐값에 팔리고 말았다. 이후 2019년 폐쇄 7년 만에 다시 개통되었다. 발렌시아의 ‘예술과학도시’ 건설에는 원 계획의 4배에 달하는 13억 유로가 투입되었다. 9개 대학의 전문가들에 의해 작성된 스페인 지리학자 협회(Association of Spanish Geographers ) 보고서는 1995 ~ 2016년 기간동안 스페인이 인프라 건설에 불필요하게 지출한 금액은 810억 유로에 달한다고 분석하였다. 특히, 이 중 3분의 1에 달하는 262억 유로 상당이 고속철도 건설부문에 쓰여졌는데 전문가들은 스페인 내에 필요 이상으로 비싼 기차역, 공사중단 노선, 불필요 노선 등 다수의 낭비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이러한 오점에도 불구하고 유럽통합은 스페인 경제의 현대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EU는 인프라 개발을 위한 재정지원 뿐만 아니라 스페인 국내 거시경제정책을 국제적 수준으로 체계화하도록 유도하였다. 외국인 투자 유치와 안정적인 자본 조달도 가능토록 하였다. 스페인이 친EU 성향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개방경제 체제를 도입한 이후 스페인의 잠재력을 높이 산 외국인들의 본격적인 투자가 이어지면서 스페인의 외국인 투자 유입 저량(inward stock)은 1990년 $660억에서 2017년 $6,440억까지 늘었다. GDP 대비 52.3%로 프랑스 36.1%, 독일 27.2%, 이탈리아 22.9%보다 훨씬 높은 수치를 자랑한다. 또한 안정적인 통화인 유로화는 낮은 비용의 자금 조달을 용이하게 하여 스페인 기업의 해외기업 인수 등에 도움을 주었다. 역내 회원국들과의 교역도 활성화되었다. GDP대비 재화 및 서비스 수출 비중은 1978년 15%에서 2017년 34.1%으로 확대되었다.
2000년대 들어 잘 나가던 스페인 경제는 리만 브라더스 사태로 촉발된 세계 금융위기와 함께 부동산 버블이 무너지며 극심한 침체에 빠지고 만다. 2006년 한 해 스페인에서 신규 주택착공(Housing start) 건수가 동 기간 독일, 프랑스, 영국의 수치를 합친 것보다 많았을 정도로 부동산 버블이 심했다. 스페인 경제는 2008 ~ 2013년 동안 9.2% 역성장 하였다. 실업률은 2013년 한 때 27%까지 치솟았다. 경기부양책에 따른 재정지출과 실업률 증가에 따른 세입 감소로 GDP대비 공공부채와 재정적자 비율이 급격히 상승하였다.
스페인 정부는 금융개혁, 노동개혁, 연금개혁 등의 각종 구조개혁과 긴축재정을 통해 경제위기를 극복하였다. 당시 유로화 약세와 저유가도 스페인 경제회복에 우호적으로 작용하였다. 스페인 경제는 2014년 플러스(+) 성장 전환하였으며 2017년 경제위기 이전 수준으로 다시 회복되었다. 공공재정 건전성도 느리지만 조금씩 개선되는 모습을 보였다. 스페인의 GDP대비 세수 수익은 2007년 36.4%로 가장 높았다. 잠재 성장률이 낮아져 이 때 수준의 세수를 확보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행인 점은 현재 스페인의 조세 체계는 탈세가 만연했던 40년 전과 비교하면 훨씬 효율적이고 체계적이라는 사실이다. 1980년 580만명(전체 인구의 15%) 수준에 머물렀던 근로소득세 신고자 수는 2017년 1,950만명(전체 인구의 42%)까지 늘었다. 1977년부터 탈세 방지를 위한 시스템이 가동되었고 1981년 부유세, 1986년 부가세를 각각 도입하였다.
회복세를 보이던 스페인 경제는 2020년 코로나 19 사태를 계기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였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팬데믹 앞에 스페인 경제는 다시 한 번 속절없이 무너졌다. 대규모 파산과 실업사태를 막기위해 정부가 필사적으로 자금을 투입하면서 공공재정 건정성은 더욱 악화되었다. 실업률 급증과 대규모 파산은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지만 스페인 경제는 시한폭탄을 머리에 이고 가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스페인 경제의 구조적인 약점이 선명하게 드러나자 EU는 스페인에 이탈리아 다음으로 많은 1,400억 유로 규모의 EU경제회복기금(Next Generation EU)을 할당하였다. 국가별 EU경제회복기금 지원규모는 지난 과거 및 향후 경제성장률 등을 감안하여 결정되었다. 스페인 정부는 EU 의 지원을 활용하여 친환경•디지털 경제 중심의 경제회복을 구상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친환경 모빌리티, 스마트 제조 등의 분야에서 공격적인 투자가 예상된다. 단, EU측이 자금 지원의 선결 조건으로 각종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있어 체질개선을 위한 또 한번의 내부 진통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2020.2월 EU 집행위는 △지속불가능한 국민연금 시스템 △높은 수준의 GDP대비 재정적자 △높은 실업률과 비정규직 비율 △비효율적 빈곤 탈피 지원 △낮은R&D 투자 및 인재 숙련도 △주요 대도시의 과도한 월세 상승 △지역별 경제적 격차 및 시골지역 유령화 △지역별 상이한 규제로 인한 기업활동 장애 등을 스페인 경제의 주요 문제점으로 지적하였다.
재정적자와 관련하여 최대 과제는 사회보장기금이다. 2017년 전체 재정적자 357억 유로(GDP대비 3.1%)의 절반이 사회보장부문에서 발생하였다. 사회보장기금의 적자가 갈수록 확대됨에 따라 전체 재정적자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커지고 있다. 사회보장기금의 근원이 되는 사회보장세 납입인구는 2007년 최대 20.7백만명까지 도달하였다. 2018년 6월들어 2008년 9월 이후 처음으로 19백만명을 다시 돌파했으나 빠른 고령화로 늘어나는 국민연금 지출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스페인은 고령화가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국가 중 하나이다. 무상의료제도와 건강한 식단으로 40년 전에 비해 평균수명은 10년이상 늘었다. 2015년에는 1941년(내전 이후 국가가 황폐화되고 가난이 득세 했던 시절) 이후 처음으로 사망 인구가 출생 인구를 넘어서기도 하였다. 1975년 19명에 불과했던 근로 인구 100명당 은퇴자 수는 2050년이 되면 77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2050년까지 연금지급 대상자는 8.7백만에서 15백만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비상금이라 할 수 있는 예비기금은 2011년 한 때 668억 유로까지 쌓였지만 지금은 고갈되었다. 스페인 정부는 2012년 연금인상률을 억제하고 은퇴연령을 기존 65세에서 67세까지 늘리는 국민연금 개혁을 단행하였으며, 2021.3월 현재에도 △정년 이후 추가 근로 활성화 △조기 은퇴 억제 △추가 재원확보 등의 방안을 강구 중이다.
최고수준의 실업률과 비정규직 비율을 기록하고 있는 스페인의 노동시장은 유럽 내에서도 가장 비효율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EU집행위, IMF 등은 높은 실업률 및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강화하고자 했던 2010년 노동 개혁을 지속 발전시켜 나갈 것을 권고하고 있다.
저조한 R&D 투자와 낮은 학업성취도도 스페인 경제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다. 스페인 대학들의 국제 경쟁력과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떨어지는 편이다. GDP대비 R&D 투자비중 역시 1% 초반에 불과하다. 2010년 사파테로(Zapatero) 사회당 정부는 GDP 대비 2%의 R&D투자 목표를 세웠지만 경제위기로 2009 ~ 2013년 사이 스페인 과학분야 예산은 39% 삭감되었고 이후 소폭 상승하는데 그쳤다. EU 인구의 9%에 달함에도 특허등록 비중은 1%에 채 못 미친다. 인구 100만명당 특허신청 건수도 주변 국가들에 비해 적다. 빈약한 R&D 활동때문에 많은 스페인의 젊은 연구인력들이 해외로 유출되기도 하였다. 전 세계에서 운행 중인 비행기 5대 중 3대가 스페인 항공 시스템을 통해 제어될 정도로 스페인의 과학기술 경쟁력은 나쁜 편이 아니디. 그럼에도 젊은이들의 생산성을 전반적으로 높일 수 있는 기술 중심의 교육 훈련을 강화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지적된다.
한 국가의 분야별 경쟁력을 가늠할 수 있는 IMD의 2020 세계경쟁력평가(IMD World Competitiveness Yearbook 2020) 에서 스페인은 전체 63개국 가운데 36위를 차지하였다. 특히, 정치적 불안정성(53위), 디지털 전환(60위), 실업 정책(59위) 부분에서의 경쟁력 회복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친환경・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을 키워드로 새로운 경제부흥을 꿈꾸는 스페인. 과연 이 과정에서 그동안의 고질적인 약점들을 과감히 손질하고 체질개선에 성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