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과 고집
대학 시절 나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낮엔 학교를 가고 밤엔 아르바이트를 하는 나름 혹독한 순간이었다.
다행히도 다소 외진 곳에 있는 편의점이었기에 손님은 거의 없다시피 했었고 덕분에 내 가장 큰 고민은 9시간이나 되는 이 긴 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였다.
요즘처럼 스마트폰이 있던 시절이 아니었기에 매장 정리 및 청소하고 나면 정말 지루하기 짝이 없는 시간이었는데, 보통은 소설책이나 만화책 몇 권 빌려와 보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당시 시급으로(3,100원) 그런 호사를 누리는 건 계산이 맞지 않아 곧 그만두었고 그 시간의 대부분은 망상과 멍으로 채워졌다.
그러던 어느 겨울, 탁 탁 탁 하는 무언가 문에 부딪히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린가 싶어 가보니 엄청나게 큰 날 벌레 하나가 밖으로 나가고 싶은지 유리문을 향해 머리를 박고 있었다.
목숨을 빼앗기엔 너무나 큰 녀석의 크기에 압도당한 나는 바로 옆에 있는 창문을 살짝 열어 그쪽으로 나가길 기도했다.
하지만 녀석은 바로 옆에 열린 창문을 알아채지 못하고 계속해서 같은 곳을 들이박기만 하고 있었다.
"바로 옆에 문이 열려 있잖아!"
"아니 거기 말고 조금만 옆으로 가보라니까??"
라는 말하며 녀석을 응원했지만, 녀석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계속 같은 곳에만 도전하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큰 종이를 말아 녀석을 열린 창문 쪽으로 밀어 밖으로 내보내 주면서 상황이 마무리됐다.
다시 창문을 닫고 자리로 돌아와
'아니 바로 옆에 문에 있는데 그걸 못 보고 계속 같은 곳을 들이박냐, 벌레라 그런가?'
라는 생각하며 녀석을 비웃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인생사도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걸음만 뒤로 걸어 나와 상황을 둘러보면 의외로 해결책이 가까운 곳에 있는 경우가 있을 텐데, 나 역시 그 벌레처럼 자신의 상황에 매몰되어 주변을 둘러보지 못해 좌절하는 경우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로부터 20년 가까운 세이 흘렀고 지금의 나는 당시의 나보다 더 많은 것들을 경험했지만, 지금도 늘 걱정하고 고민한다.
'지금의 나는 그때 그 벌레보다 나은 존재로 성장했을까?'
'극복하기 힘든 상황을 만났을 때 고집부리지 않고 주변을 한 번 둘러보는 사람이 됐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겐 아직도 고집이 남아있고 그만큼의 집착도 남아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바로 옆에 해답을 놓고도 그걸 보지 못하는 벌레는 되지 말자고.
그리고 벌레보다 나은 인간이 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