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전문 은행인 미국 실버게이트캐피털이 지난 8일 청산을 선언했다.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실버게이트 은행은 1988년 설립되어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디지털자산을 취급한 뒤 가파른 속도로 성장했다. 디지털자산을 활용해 예금, 환전, 대출과 같은 금융 상품을 출시하고 달러와 유로 같은 법정화폐를 암호화폐로 교환할 수 있는 실버게이트 익스체인지 네트워크를 개발해 운영했다. 2019년에는 뉴욕증권거래소에도 상장하며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하지만, 과도한 사업 확장과 지난해 대형 암호화폐 거래소 FTX의 파산으로 유동성 위기에 놓였다. 특히 실버게이트 익스체인지 네트워크를 통한 암호화폐 담보 대출이 실버게이트의 위험으로 돌아오며, 고객의 암호화폐 자산 및 자금 회수가 속출하는 코인런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코인베이스와 갤럭시디지털을 포함한 암호화폐 관련 기업들이 네트워크에서 이탈하고 실버게이트와 손절을 하며 결국 실버게이트는 은행 영업을 중단해 추가 피해를 끊어냈다. 하지만, 악재는 이로 끝나지 않았다. 암호화폐 업계에 가장 우호적이었던 두 은행 실버게이트에 이어 시그니처뱅크, 그리고 두 은행의 기술 스타트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실리콘밸리은행이 일주일도 안 되어 모두 파산하게 된 것이다. 암호화폐 은행 3인방의 실패는 지난주 동안 스테이블코인 시장으로 파급됐다.
미국 연방 정부가 두 은행의 예금자를 보호하기 위해 개입한 후 암호화폐 가격이 약간 반등했지만, 이 사건은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불안정을 다시 촉발했다.
시그니처은행은 미국 내 뉴욕·코네티컷·캘리포니아·네바다·노스캐롤라이나 등에서 영업해 온 상업은행으로, 사업 분야는 상업용 부동산과 디지털자산 은행 업무 등이다. 이 은행은 가상화폐 분야에 집중하며 2018년에는 다른 은행들이 가상화폐 고객들을 받지 않으려 할 때 가상화폐 전문 은행원들을 채용하며 지난주 청산한 실버게이트 은행과 함께 가상화폐 거래 주요 은행으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작년 한국산 코인 테라 USD·루나 붕괴 사태와 대형 가상화폐 거래소 FTX의 파산으로 가상화폐 업계에서 위기가 확산하자 이 은행에서 수십억 달러의 예금이 빠져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시그니처은행 측은 지난해 말 가상화폐 관련 예치금을 80억 달러로 줄이겠다고 발표하며 위험성 관리를 시도했다.
이번 사건에서 미국 당국은 위기가 다른 금융기관들로 전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미 재무부와 연준·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이날 공동성명을 통해 실리콘밸리은행(SVB) 고객들에게 적용된 것과 유사하게 '시스템적 위험에 따른 예외'에 따라 시그니처은행 고객들도 예치금을 인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번 사건은 투자자들이 일반적으로 정해진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의존하는 암호화폐 생태계의 하위 집합인 스테이블코인의 취약성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으며, 미국 은행 시스템에서 가상화폐 산업이 규제받는 만큼 이에 대한 대응책은 시급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