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만 3천575억짜리 약

예수님의 약값

by 강진경

“엄마가 오늘은 제대로 놀아줄게.”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은이는 기다렸다는 듯 아기 예수님 상을 조심히 모셔 와 의자 위에 세워 두었다. 그리고 인형 1, 인형 2, 인형 3을 둘러앉혔다. 아픈 인형 손님들이 예수님께 약을 구하러 오는 설정이었다. 소은이는 예수님이 되었다가, 인형이 되었다가, 다시 예수님이 되었다. 혼자서 모든 역할을 맡은 1인 다역 역할놀이가 시작되었다. 인형 1이 먼저 아기 예수님 앞으로 나왔다.


예수님, 저 배가 아파요."

그러자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지금은 약이 없어. 정말 미안하구나.”


다음으로 인형 2가 예수님 앞에 섰다.

"예수님, 저 너무 배가 아파요."

"지금은 약이 없어. 어쩔 수 없어. 정말 미안하다."


마지막은 인형 3 차례.

"예수님, 예수님. 저 너무 배가 아파요."

그만!!! 안 되겠어. 너희들이 먹을 수 있는 최고의 약을 만들어야겠어! 샤롯에게 부탁해야겠어."(샤롯은 아이가 만든 캐릭터로 마법 수프를 만들 줄 아는 고양이 나라의 공주이다.)


예수님은 근엄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샤롯! 인간들이 먹을 최고의 '안 아파 약'을 만들어!"

"네 알겠습니다."

"일단 마법 통에 사랑을 넣고… 희망, 감사, 그리고 제일 중요한… 예수님의 마음!"

이제 재료들을 섞고 이렇게 휙휙 잘 저어주면... 드디어 마법 물약 완성! "


샤롯이 다시 예수님 앞에 나타났다.

“예수님, 저 왔어요.”

“오, 왔어?”

"'안 아파 약'을 만들어 왔어요."

“와, 정말 기쁘구나. 내가 당장 필요한 이들에게 나눠줘야겠어. 정말 고마워.”


잠시 후, 예수님 앞으로 다시 인형들이 모여들었다.

“예수님, 약을 구해 오셨나요?”

"그럼!"

"예수님, 그 약은 얼마예요?”

“6만 3천575억이다.”

예수님이 된 소은이가 근엄하게 말했다.


인형 1이 깜짝 놀라 물었다.

“왜 이렇게 비싸요?”

“왜냐하면… 아주 귀한 재료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좋은 것이 많이 들어갔거든.”

인형 1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지금 돈이 없어요.”

예수님은 자비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다. 기쁜 마음으로 성모송을 한 번 바쳐 보렴.”

소은이는 인형이 되어 성모송을 중얼거렸다. 잠시 후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내 반지로 확인해 보자… 진짜네. 그럼 약을 가져가렴.”


이번에는 인형 2가 예수님 앞에 섰다.

"예수님, 전 돈이 없는데 약을 어떻게 사죠?”

괜찮다. 간절한 기도면 충분하다.”

소은이는 인형이 되어 기도하는 시늉을 하고, 곧 다시 예수님이 되었다.

“내 왕관으로 확인해 보니 진짜 간절히 기도를 했구나. 많이 가져가라.”


마지막으로 인형 3이 예수님 앞에 섰다.

예수님, 이게 약인가요?”

"그래, 마음을 담아 하느님을 찬양하면 가질 수 있다."

“마음을 담았어요.”

마지막으로 예수님이 된 소은이는 십자가 목걸이를 만지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 내 십자가 목걸이로 확인해 볼게. 진짜구나. 정말 마음이 뜨겁게 담겨 있어. 이거 엄청 많이 가져가.”

그리고 예수님은 환하게 웃었다.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예수님이 되었다가, 배 아픈 인형이 되었다가, 다시 예수님이 되어 아픈 자를 치유하는 아이.


이 많은 이야기가 대본도 없이 즉석에서 줄줄 흘러나온 것도 놀라웠지만, 그 내용은 더욱 놀라웠다. 아이의 놀이에서 예수님은 가난한 자, 낮은 자를 구원하시고, 아픈 자를 치유하셨다. 그러나 그 대가로 바라시는 건 돈이 아니었다. 샤롯이 만든 마법 약은 6만 3천575억, 즉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비쌌지만 가진 건 없는 이들도 모두 약을 구해갔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바라는 건 따로 있었다. 바로 행복한 마음과 간절함이 담긴 기도, 그리고 마음을 담아 주님을 찬양하는 것. 그리고 그 마음이 진짜인지는 예수님만이 꿰뚫어 볼 수 있었다.


결국 우리를 치유하는 약은 사랑, 희망, 감사, 그리고 예수님의 마음이구나.

아이는 놀이를 통해 그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날 저녁, 엄마가 놀아주겠다고 시작한 역할놀이는 결국 내가 아이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배우는 뜻깊은 시간이 되었다. 진짜 값은 숫자가 아니라 마음이라는 것. 그 마음은 우리가 돈으로 셀 수 없을 만큼 값진 것이며, 그 마음의 씨앗이 이미 우리 집 거실 한가운데에 자라고 있음을 나는 느꼈다. 소은이의 세계 속에서 ‘안 아파 약’이 모든 이의 배 아픔을 낫게 한 것처럼, 우리 삶 속에도 그런 약이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 종교가 있든 없든, 사랑과 희망, 감사의 힘은 여전히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가장 오래된 처방이니까.


보이지 않아도 마음을 따뜻하게 데우고, 값으로 따질 수 없어도 분명히 효과가 있는 것들.


그날 저녁 거실에서 시작된 소은이의 역할놀이는 내 기억 속에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을 처방전 하나를 남겼다. 나는 이제 마음이 아플 때마다 소은이가 처방해 준 약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안다. 우리가 서로에게 건네는 사랑과 희망, 그리고 감사의 마음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안 아파 약’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