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내가 없었으면 아빠랑 결혼한 거 후회했어?

사랑의 색깔이 조금 달라졌을 뿐

by 강진경

어느 날 소은이가 내게 툭 던진 말.


“엄마, 엄마는 아빠 같은 사람을 만나서 다행이야!”

“왜?”

“아빠가 엄마가 안 챙겨도 척척척 잘 챙겨주잖아. 그래서 엄마가 핸드폰을 열 번 잃어버릴 때 아빠는 핸드폰을 한 번 잃어버릴까 말까 해.”


뭐, 틀린 말은 아니다.

오래전 남편과 처음 만났던 날도 그랬다. 나는 카페에서 핸드폰을 충전한다고 자리 옆 콘센트에 꽂아 두고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일어나 버렸다. 그걸 챙겨준 사람이 지금의 남편이다. 남편은 그때 나를 보며 평생 챙겨주고 싶은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나는 작은 것 하나도 살뜰히 챙기는 남편의 세심함에 마음을 열었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연애는 결혼으로 이어졌고, 어느덧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소은이의 말대로라면 나는 남편 같은 사람을 만나 다행인 사람이다.


그러나 나에게도 장점이 있지 않을까. 나는 은근한 기대를 품고 소은이에게 물었다.


“소은아, 아빠도 엄마 잘 만나지 않았어?”

“맞아.”

“어떤 점이?”

“잘 모르겠어.”


이럴 수가. 아이는 아빠 편인가 보다. 아빠가 엄마를 잘 만나긴 했지만, 선뜻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다.

아이 눈에는 아빠가 더 꼼꼼하고, 더 많은 것을 챙기는 사람처럼 보이는 걸까.


하지만 며칠 전, 아이에게서 뜻밖의 말을 들었다.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 소은이는 아빠에게 크게 토라진 채 내게 달려왔다. 그리고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아빠 나빠. 아빠는 나한테 웃어주지도 않고, 나한테 잘해주지도 않아. 다른 애들 아빠는 다 아이한테 웃어주는데. 아빠는 안 그래.”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아팠다. 요즘 시아버님이 많이 편찮으셔서 남편에게 마음의 여유가 없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이렇게까지 느끼고 있을 줄은 몰랐다.


“아냐, 소은아. 아빠가 소은이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아빠가 지금 할아버지가 편찮으셔서 속상해서 그래. 예전에는 소은이에게 잘해주기도 하고 웃어주기도 했잖아.”


그러면서 며칠 전 남편이 소은이를 간지럼 태우며 둘이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을 찾아 보여주었다.


“이것 봐. 아빠도 웃고 있고, 소은이도 웃고 있지?”

“응. 근데 이때만 그랬고 평소에는 아빠가 안 웃어. 아빠가 나를 사랑하는 건 아는데 그래도 표현을 해야지.”

나는 잠시 웃음이 났다.

“그래, 맞아. 표현해야지. 근데 아빠는 요새 엄마에게도 표현을 잘 안 하는 걸? 아빠가 엄마를 사랑하지만 요즘은 엄마한테도 표현을 잘 안 해.”


소은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더니, 돌아누워 있던 아이가 갑자기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엄마, 그럼 아빠랑 결혼한 걸 후회해?”

“아니. 엄마는 후회 안 하지. 아빠랑 결혼해서 우리 소은이가 세상에 있는 거니까.”

“그럼 내가 없다고 치면? 내가 없었으면 아빠랑 결혼한 거 후회했어?”


순간 가슴이 뜨끔했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이렇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질 줄이야. 나는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아이가 없다면, 나의 결혼생활은 어땠을까. 반대로 남편은 소은이가 없다면 나와의 결혼을 후회할까.


결혼 11년 차.

쉽지 않았던 임신과 출산, 그리고 남달랐던 육아. 생각해 보니 우리 부부에게 달콤했던 시간은 아이가 생기기 전 딱 3년뿐이었다. 그 이후로 우리의 삶은 전쟁 같았다. 우리는 어느새 전우애로 다져진 부부가 되어 있었다.

어릴 때 사랑이 전부라고 믿던 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줌마가 되고, 나이가 들어 할머니가 되어도 늘 가슴 뛰는 사랑을 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어쩌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평생을 함께 사는 부부가 매일 얼굴을 볼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린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


그렇다면 사랑이 사라진 걸까.

아니었다. 아마 함께 사는 부부는 사랑의 유효기간이 끝난 것이 아니라 사랑의 색깔이 달라진 것일지도 모른다. 그 생각이 머리를 스치자 나는 소은이에게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소은아, 소은이가 없었어도 엄마는 아빠랑 결혼한 걸 후회하지 않아. 엄마는 여전히 아빠를 사랑하고, 아빠도 엄마를 사랑하니까.”

소은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다시 이불을 끌어안고 돌아누웠다. 어쩌면 아직은 소은이가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 소은이도 알게 되겠지.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늘 설레고 웃는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어떤 날은 서로를 챙겨주고,
어떤 날은 서로를 버텨주고,

어떤 날은 그저 같은 편으로
같은 하루를 견디는 일이라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함께 산다.

사랑의 색깔이 조금 달라졌을 뿐,
우리의 사랑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