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엄마랑 같이 있고 싶단 말이야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던 날

by 강진경

설 연휴가 끝나고, 일상이 다시 시작되었다. 친정에서 사흘 지내면서 먹고 놀기만 한 탓일까.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사랑을 한껏 받고 온 탓일까. 아이는 곧잘 다니던 학원에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소은아, 이제 연휴는 끝났어. 다시 학원도 다니고, 공부도 해야지. 3일 동안 실컷 놀았잖아.”


그렇게 아이의 등을 떠밀어 공부방에 보내고 나는 밀린 집안일을 했다. 방학이라고 해도 늘 집안일은 쌓여있고, 학원에 데려다주고 다시 집에 데리러 오다 보면 하루는 금세 저물었다. 나에게 남는 자유 시간은 길어야 한 시간 남짓이었다. 나는 어떻게 하면 아이를 보내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지 궁리하고 있었고, 아이는 어떻게 하면 학원에 가지 않고 엄마와 함께 있을 수 있을지 궁리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공부방에 다녀와서는

"엄마, 나 정말 한 시간이 지옥 같았어."

라고 말하거나

"엄마, 나 갑자기 눈이 이상해. 눈이 왼쪽과 오른쪽이 달라. 나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해?"

하고 울음을 터뜨리거나

"엄마, 나 눈이 부었어. 이제 어떡해? 엄마도 이렇게 눈 부은 적 있어?"

하고 눈물을 줄줄 흘렸다.


내가 보기에는 아무렇지 않은데 자꾸 눈이 부었다고 하고, 언제 원래대로 돌아오냐고 하길래 나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할머니집에서 텔레비전을 너무 많이 봐서 그래. 자꾸 손으로 만지고, 비비니까 더 심해지지. 소은이가 신경 안 쓰고, 잘 지내면 금방 없어져."

"정말? 텔레비전 많이 봐서 그런 거야?"

"그럼, 정말이지. 텔레비전 많이 보면 눈이 피곤해서 그런 거야."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맞는 말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소은이는 내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나 이제 텔레비전 많이 안 볼 거야. 핸드폰도 자주 안 할 거야. 그럼 정말 괜찮아지지?"


그래도 아직은 1학년 어린아이 같은 구석이 있구나 싶어 웃음이 났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과는 달리 아이의 눈두덩이 위에는 좁쌀만 한 알갱이가 돋았다.


"엄마, 나 학원 가기 전에 연고 발라주면 안 돼?"


나는 눈이 이상하다는 소은이의 말이 완전히 꾀병이나 거짓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뜨끔해졌다.


'진짜 어디가 아픈 건가?'


그러고 보니 괜히 내 눈도 따끔따끔, 간질간질. 눈이 뭐가 들어간 것처럼 신경이 쓰였다. 나는 약통에서 얼른 비판텐을 찾아 발라주었다. 잠시 후 소은이는 다시 울기 시작했다.


"엄마, 나 정말 학원 안 가면 안 돼?"


발그레한 볼을 타고 닭똥 같은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눈물은 둥그런 턱을 타고 내려와 턱 밑에서 마치 살짝 열린 수도꼭지에서 물이 떨어지듯 다시 한번 툭 떨어졌다.


“소은아, 학원 가야지. 그래야 엄마도 병원에 다녀오지. 엄마 얼른 다녀와서 만나자.”


그러자 갑자기 소은이는 와앙- 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나 엄마 보고 싶단 말이야. 엄마랑 같이 있고 싶단 말이야. 엉엉"


순간 가슴이 울컥했다. 공부하기 싫어서, 학원 가기 싫어서 핑계를 댄다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이가 학원을 싫어한 게 아니라, 엄마와 떨어지는 시간이 싫었던 거였다.


"에고, 그랬어? 우리 소은이가 엄마가 보고 싶었구나. 엄마랑 같이 있고 싶었구나."


나는 아이를 꼭 안아주고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우리 소은이, 이제 곧 2학년 언니가 될 건데 여전히 아기같네."

"응, 나 아기 할래. 엄마랑 떨어지기 싫어. 난 엄마가 진짜 좋아."


아이는 내 품에 얼굴을 파묻었다. 문득 아이가 방학 때 하고 싶은 버킷 리스트를 적은 일이 떠올랐다.


“소은아, 그럼 엄마랑 이불속에서 귤 까먹을까? 침대에서 귤 먹으면서 책 보는 게 소은이 소원이랬잖아.”

“정말? 침대에서 귤 먹어도 돼?”

“응. 원래는 안 되지만, 오늘은 특별히.”


나는 귤을 바구니에 담아 쟁반에 올려 침대로 가져왔다. 우리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귤을 까먹으며 아이가 지은 이야기를 읽었다.


아이가 만든 책 『귀신도형학교와 토끼의 달과 으스스 놀이공원』



『귀신도형학교와 토끼의 달과 으스스 놀이공원』


“소은아, 제목이 조금 긴 것 같지 않니?고쳐볼까?

“안 돼, 엄마. 내용이 기니까 제목도 긴 거야.”


단호한 꼬마 작가의 대답에 웃음이 났다. 나는 언젠가 아이가 정말로 작가가 될지도 모른다는 믿음이 생겼다.


“소은이는 왜 작가가 되고 싶어?”

음, 작가는 상상력이 있어야 하잖아. 내가 상상한 대로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서.”


귤을 한가득 넣은 채 오물오물 말하는 아이를 보며 생각했다.


'그래, 언젠가 너만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어놓는 날이 오겠지.'


“소은아, 이제 학원 갈 시간이다.”

“응! 나 이제 잘할 수 있어!”


조금 전까지 울던 아이가 언제 그랬냐는 듯 씩 웃었다. 나는 그 작은 손을 꼭 잡고 집을 나섰다. 아직 겨울이었다. 하지만 바람은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다. 차가운 공기 사이로 어딘가 봄의 기척이 느껴졌다.


곧 2학년이 되겠지.

언니가 되고, 조금 더 씩씩해지고, 엄마 없이도 잘 해내는 날들이 늘어가겠지.


그래도 아직은,
이불속에서 귤을 까먹으며 제 이야기를 읽어 달라고 조르는 나이.
엄마 품에 얼굴을 묻고 “나 아기 할래”라고 말해도 되는 나이.


아이의 겨울은 그렇게 천천히 끝나가고 있었다.

봄이 오고 있었다.


계절에도,

우리들 마음속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