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쓰기가 가르쳐준 것
소은이가 학교에서 받아쓰기 100점을 받아왔다.
"우와, 소은이 받아쓰기 정말 잘 했네. 소은이도 열심히 연습하니까 100점 맞지? 우리 소은이도 국어 잘 한다니까."
나는 평소 자기는 국어를 못한다고 자신이 없어하는 소은이에게 진심을 담아 칭찬을 해주었다.
그러자 소은이가 말했다.
"엄마, 우리반 땡땡이는 맨날 100점 맞아."
"그래? 땡땡이는 집에서 받아쓰기 연습을 많이 하나보다. 연습을 많이 하면 소은이도 계속 100점 받을 수 있어."
"엄마, 꼭 100점 맞는다고 좋은게 아니야."
"응? 왜?"
"100점을 맞으면 자기가 얼마나 커지는지 모르거든. 왜냐하면 다 100점이니까."
"자기가 커진다는 게 무슨 말이야?"
"계속 100점을 맞으면 자기의 성장을 모르잖아. 근데 80점을 맞으면 80점 90점 100점... 이렇게 내가 성장하는걸 알 수 있잖아."
"우와. 그렇구나. 소은이 말이 맞네."
나는 소은이가 기특해서 소은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가끔 소은이와 대화를 하다보면 지금처럼 초등학교 1학년이라고 하기엔 믿기지 않을 만큼 속 깊은 말을 할때가 있다. 아이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처음부터 100점을 맞고, 계속 100점을 맞는 아이는 자기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니까 성장의 관점으로만 본다면 100점이 꼭 좋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낮은 점수부터 차근 차근 올라간 아이가 자신의 발전 과정을 몸소 느낄 수 있으니 성취감과 뿌듯함도 더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받아쓰기는 1학년 2학기에 들어 매주 금요일에 학교 국어시간에 실시하고 있는데 첫 시험의 결과는 80점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시험 결과는 20점.
물론 두 시험의 난이도에도 차이가 있겠지만 가장 큰 차이는 미리 공부를 한 것과 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 뒤 시험을 보기 전 한 번이라도 모의시험을 보려고 노력했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소은이는 80점에서 100점을 오가며 높은 점수를 유지했다. 받아쓰기 점수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공부가 아이의 자존감과 자신감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기에 아이가 적어도 자신이 공부를 못한다는 생각은 가지지 않기를 바랐다.
그렇게 1학년이 끝날때까지 아이는 16번의 받아쓰기 시험을 보았다. 내가 해준 것은 별로 없었다. 시험 보기 전 날 모의 시험을 한번 보고, 시험이 끝나면 자신의 점수를 기록할 수 있게 점수판을 붙여준 게 다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점수판을 붙이자 소은이는 100점을 연달아 받아 오기 시작했다. 100점을 맞은 날에는 비고란에 하트를 그려 넣었고, 100점을 받지 못한 날은 아쉬워했다. 이 변화의 핵심은 소은이가 예전에 말한 것처럼, 자기가 얼마나 성장해가는지 본인이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스스로 점수를 기록하고, 점수가 쌓여가는 과정에서 아이는 자기가 공부한 만큼 점수도 나온다는 것을 배우고, 실수하지 않고 100점을 받았을 때의 뿌듯함과 만족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제 소은이는 받아쓰기 점수보다 자기 점수판을 더 자주 들여다본다. 20점이던 날, 60점이 된 날, 90점, 그리고 마침내 100점이 된 날을 손가락으로 짚어 보며 혼자 흐뭇해한다. 점수 하나하나가 소은이에게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된 것이다. 가끔 100점을 못 받는 날도 있다. 그래도 예전처럼 풀이 죽지 않는다.
“엄마, 나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어.”
스스로 그렇게 말할 줄 아는 아이가 되었다.
받아쓰기를 통해 소은이는 글자를 배우는 중이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을 배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틀릴 수 있다는 것, 다시 해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조금씩 나아지는 자기 자신을 믿는 법.
아이들이 시험을 통해 배우는 건 지식만이 아니라, 배움에 대한 태도와 스스로 성장해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소은이의 점수판에 적힌 숫자들보다, 그 옆에서 함께 자라고 있는 아이의 마음을 더 오래 바라보게 된다. 앞으로도 소은이가 어떤 공부를 하든, 목표가 100점이 아니라 스스로 자라나는 과정을 배워가는 아이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