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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낳았지만 나와 다른 아이.

다른 빛깔을 가진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마음

by 강진경

남편이 회식으로 늦는다.


퇴근을 하면 늘 녹초가 되는지라 밥을 할 기운도 없어 단지 내 식당에서 외식을 자주 하는데 오늘은 남편이 회식을 하느라 소은이와 나 둘이서 저녁을 먹어야 했다.


날은 춥고, 식당에 가봤자 소은이는 워낙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니, 차라리 집에서 먹는 게 낫겠다 싶어

오랜만에 집에서 요리를 했다. 요리라고 해봤자 밑반찬을 꺼내고, 양념 불고기를 굽고, 주먹밥을 만들고, 사과를 곁들인 게 다이지만.


소은이와 나의 저녁 식사

워낙 아이가 입이 짧은 지라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웬일로 아이가 밥을 제법 먹는다. 주먹밥을 한 주먹 가져가서 먹고, 멸치도 먹고, 고기 속에 들어있는 양파도 먹는다. 갑자기 식성이 바뀐 것은 아닐 텐데, 엄마가 차려준 음식이라고 잘 먹는 건가 싶어 마음 한편이 짠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객관적으로 나는 요리에 소질도 흥미도 없건만, 소은이는 엄마가 요리를 잘한다고 서슴없이 말해주고, 가끔씩 내가 요리를 하면 맛있다고 말해준다. 그런 아이에게 늘 고마울 뿐.


아이는 나와는 달리 요리하는 게 재미있다고 한다. 그래서 어른이 되면 지금 단짝으로 지내는 가장 친한 여자 친구와 요리 유튜브를 하며 한 집에서 살 거란다. 피아니스트에 요리 유튜버라. 꿈의 스펙트럼이 다양해서 참 좋다.


저녁을 먹고, 내일 국어 시간에 있을 발표 준비를 위해 '동백 호빵'이란 책을 읽어주었다. 이번 발표의 주제는 친구들에게 자기가 소개하고 싶은 책의 줄거리와 인상 깊은 부분을 말해주고, 책의 표지를 그림으로 그리는 활동이었다. 소은이가 책 속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으로 뽑은 부분은 동물 친구들의 요리 장면이었다. 동백 꽃잎 속에 먹고 싶은 재료를 넣어 호빵을 만들고 배고픈 숲 속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는 장면인데 자기도 요리를 좋아하기 때문에 동물 친구들이 재미있을 것 같단다.

«동백호빵 독후활동지»

책의 표지를 정성껏 그리는 아이를 보면서 이 아이는 정말 나와는 전혀 다른 존재라는 걸 실감했다. 나는 요리를 좋아하지 않지만 아이는 요리를 좋아하고, 나는 미술에 소질이 없지만 아이는 손재주가 참 좋다. 그림 그리기는 물론이고, 만들기까지 척척 잘 해낸다. 내가 낳았지만 나와 다른 아이.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사실 아닌가. 아이는 내가 아니니까. 나와 다르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그런데 우리는 왜 자식은 부모를 당연히 닮는다고 생각할까?


아이가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이란 걸 인정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나는 국어교사이지만 아이는 국어에 흥미가 없을 수도 있고, 나는 공부하는 걸 좋아하지만 아이는 공부하는 게 싫을 수도 있는 거니까. 중요한 건 아이가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아이가 잘하는 걸 격려해 주고, 아이가 못하는 건 기다려주고, 응원해 주는 엄마의 자세 아닐까. 마치 아이가 엄마의 요리는 늘 맛있다고 말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얼마 전 아이가 학교 미술 대회 상상화 그리기 분야에서 우수상을 받아왔다. 아이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받은 상이라서 나에게도 감회가 새로웠다. 그림의 제목은 달나라 소풍인데 달에 토끼들이 소풍을 간 모습을 귀엽게 표현했다. 달에 당근 편의점이 있다는 상상력과 태양이 환히 웃고 있는 모습은 나도 웃음 짓게 만들었다.


<달나라 소풍>

솔직히 말하면, 수학이나 영어 경시대회에서 상을 받는 것보다 아이가 좋아하는 미술 분야에서 첫 상을 받은 일이 훨씬 더 기뻤다. 좋아하는 것을 잘 해낸다는 건, 그 자체로 이미 큰 행복이고, 그 행복한 경험이 아이를 더 성장시킬 테니 말이다.


요즘은 아이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한다. 소은이가 어떤 사람이 되든,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못하든, 그저 ‘너라서 좋다’고 말해줄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고. 부모가 잘하는 걸 아이가 닮길 기대하, 기대에 미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기보다는 아이는 부모와는 전혀 다른 존재하는 것을 인정하고, 아이 스스로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발견해 갈 수 있도록 옆에서 응원하고 뒤에서 도와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


어쩌면 부모의 역할은 아이의 인생에 거창한 지도를 그려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자신의 색깔로 마음껏 그림을 채워 나가도록 도화지를 마련해 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내가 칠하지 못한 색을 아이는 칠하고, 내가 보지 못한 것을 아이는 그린다. 그 다름이 이렇게나 멋진데, 굳이 아이가 나와 닮을 필요가 뭐가 있는가.

오늘도 나는 아이에게 배운다. 서로 다르다는 건 틀 게 아니라 축복이라는 걸. 그리고 언젠가 아이가 좋아하는 요리든, 그림이든, 혹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무언가든 마음껏 펼치며 살아갈 때 그 곁에서 ‘너라서 참 좋다’고 말해주는 따뜻한 엄마로 오래오래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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