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에 내 행복한 연주를 들려주고 싶단 말이야.

첫눈 오던 날

by 강진경

얼마 전 첫눈이 내리던 날. 첫눈이 함박눈이 되어 온 세상을 하얗게 만들던 날 있었던 일이다. 학원을 마치고 나오는 길, 밖에 눈이 내린다는 소식을 들은 소은이는 기뻐서 토끼처럼 깡충깡충 뛰었다.


"엄마! 눈이 온대! 우리 빨리 눈 보러 가자!"


건물을 나오자 제법 눈이 많이 내리고 바람도 세차게 불고 있었다. 소은이는 춥지도 않은지 모자도 쓰지 않고 내리는 눈을 맞으면서 기분이 좋아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입을 벌리고 눈을 받아먹기도 했다. 눈이 오는 게 저렇게도 좋을까.

천진난만한 아이를 보며 '역시 아이는 아이다.'라는 생각에 미소가 지어지면서도 귀가 떨어져 갈 것 같은 추위에 더는 견딜 수가 없어 발걸음을 재촉했다.


"소은아! 우리 집은 높으니까 빨리 우리 집에 올라가서 온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보자!"

"우와! 그래 엄마! 우리 빨리 올라가서 눈 오는 거 보자!"


성공이다! 일단 아이를 집으로 데려가는 일에 성공했다. 우리 집은 41층이라 경치가 좋으니 눈 내린 풍경도 예쁠 거라 생각했다. 따뜻한 집 안에서 눈 오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을 거란 내 기대와 달리 창문 밖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밖은 안개가 낀 듯 뿌얘서 마치 비행기에서 구름 위를 날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엄마, 밖이 안 보이는데?"

나는 아차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문제는 우리 집이 높아도 너무 높다는 데 있었다.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그런가 봐. 곧 그치면 괜찮아질 거야."


"응, 그럼 나 피아노 치고 있을 게!"

"그래, 피아노 치고 있자."

치아노를 치다 보면 눈이 오는 건 잊겠지 싶었건만 아이는 피아노를 치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거실 창문을 낑낑 대고 열기 시작했다.


"소은아, 뭐 해? 갑자기 추운데 창문을 왜 여는 거야? 얼른 닫아. 감기 걸려."


"힝, 엄마는 내 마음도 모르고. 온 세상에 내 행복한 연주를 들려주고 싶단 말이야. 지금 내가 얼마나 행복한데. 이렇게 창문을 열면 세상 사람들이 다 들을 거 아니야."


"아, 그랬구나. 온 세상에 소은이 연주를 들려주고 싶었구나. 알겠어."


창문을 열어 온 세상에 자신의 행복을 들려주고 싶다는 아이의 말이 뭉클했다. 이런 너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악기 교육은 음악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마음속 감정을 누군가와 나누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소은이는 이미 그 두 가지를 충분히 실천하고 있었다. 행복할 때면 자연스럽게 피아노 앞에 앉아 그 마음을 음악으로 풀어내고, 그 행복을 혼자만 간직하지 않고 세상에 전하고 싶어 한다. 아이의 그런 예쁜 마음이 음악을 타고 내게까지 전해져 나도 함께 행복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소은이에게 창문을 여는 것을 허락했고 아이는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아 유희열의 피아노 연주곡을 치기 시작했다. 찬바람이 집안으로 쌩쌩 들어왔지만 왠지 춥지 않았다.


"엄마, 우리 밖에 나가서 눈사람 만들자!"


결국 나는 아이와 다시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 밖은 아직도 눈이 많이 내리고 있었다.


"엄마, 우리 눈사람 만들자! 눈사람 어떻게 만들어야 해?"


"눈을 이렇게 뭉쳐서 굴리면 돼. 눈을 굴려서 작은 눈덩이를 만들고, 그 눈덩이를 또 굴려서 커다란 눈덩이를 굴리면 눈사람이 완성될 거야."


눈사람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모르던 아이에게 나는 눈사람을 만들어 주지 않았다. 옆에서 아이가 눈사람을 만들 수 있게 말로 설명만 해주었을 뿐. 아이는 아주 작은 눈덩이부터 굴리기 시작했다. 때론 땅바닥에 누워 천사날개를 만들기도 했다. 나에게도 누워보라고 졸라대는 바람에 나도 덩달아 눈 위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보는 색다른 경험을 했다. 함박눈이 쌓인 자라는 생각처럼 차갑지 않았고, 마치 이불에 누운 것처럼 폭신폭신했다. 누워서 보는 밤하늘은 까맣고 예뻤다.

그렇게 밤이 깊어질 때까지 우리는 지치지도 않고 눈밭에 있었다. 한 시간이 지났을까? 소은이는 마침내 자기만큼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어냈다.

완성된 눈사람을 바라보며, 여덟 살 아이의 끈기와 집념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내 힘으로 눈사람을 끝까지 만들어 본 적이 없었고, 아이가 혼자서 저만한 눈사람을 완성해 낼 거라고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 아이는 커서 뭐가 돼도 되겠구나!'

내 자식이지만, 대견했고 자랑스러웠다. 눈사람을 만드는 일이 그리 대단한 일인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 자신의 목표를 이뤄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눈사람은 결국 녹겠지만, 아이가 스스로 해냈다는 그 뿌듯함은 아마도 이 겨울보다 오래 남을 것이다.


처음엔 모양도 잡히지 않아 자꾸만 부서지던 작은 눈덩이가, 굴리고 또 굴리는 동안 결국 아이만큼 큰 눈사람이 되었듯 소은이의 하루하루의 작은 노력들 또한 그렇게 쌓여 언젠가는 스스로를 놀라게 할 만큼의 성장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 성장의 시간 속에서 부모가 해야 할 일은, 무언가를 대신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오늘처럼 아이 곁에 머물며 지켜보고 응원하는 일이 아닐까.

소복이 쌓인 흰 눈이 목화솜처럼 뭉게뭉게 피어오르던 날, 소은이와 나의 행복도 그렇게 천천히 쌓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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